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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삶의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

사카구치 교헤, 심보선, 박활민 외 12명 | 2013-11-05


사람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는 다르다.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인 집은 어떤 사람에게는 ‘투자 가치가 높은 상품’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는 곳으로 인식한다. 이렇듯 삶의 가치관과 주거 형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데 비해, 우리에게 주어진 집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이마저도 경제적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주어진 공간 안에서 삶의 모습을 결정해야 할까? <99%를 위한 주거>는 각자의 공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 공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공간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북노마드

<99%를 위한 주거>는 건축가, 시인, 사회학자, 사회운동가, 디자인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저마다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람과 공동체가 늘 함께 한다.

사카구치 교헤는 건물을 짓지 않지만, 건축에 대해 ‘늘’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건축의 경험을 나눠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건축가다. 그의 ‘움직이는 집’ 프로젝트는 노숙인들의 집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집을 지어 보면서, 집과 공간을 인식하는 태도가 변화했음을 보여줬다. 삶 디자이너 박활민은 집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바꿔 나감으로써, 삶에 일어난 작은 변화들을 담담하게 설명한다. 라카통&바살의 리노베이션은 건물 자체를 보존하되 기존의 공간을 개선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한 건축을 선보인다. 이는 개발 논리에 따라 건물을 짓고 허무는 과정을 반복하는 한국의 많은 건축물 사례와는 다른 모습이다. 사회학자이자 영화감독인 조은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공간이 도시 빈민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사당동과 최근 용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소유와 사유의 개념으로만 공간을 개념화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1인 가구의 증가 등 주거 형태의 변화도 집을 둘러싼 새로운 흐름이기도 하다. 한국구술사 연구소의 정민우는 이와 함께 등장한 고시원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주거 형태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삭막한 도시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 주거를 겨냥한 주거 상품의 양립은 우리 사회가 처한 양극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상품이 아닌 사회적 대안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인 주거의 대안으로 등장한 쉐어 주거에 대해서는 한국에 앞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일본 현지의 부동산 운영자 키타가와 다이스케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새로운 공간의 형태에 맞는 건축이 필요하며, 쉐어 주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소통 역시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다. 삶의 모습들을 상상하는 이들의 태도를 통해 우리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택 협동조합’에 대한 토론은 그래서 흥미롭다. ‘주택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수많은 질문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질문들을 통해, 삶의 공간에 대한 자신의 고민에서 한 차례 나아갈 수 있게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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