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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이 되살아난다 홍순태 사진展
기타 마감

2005-10-01 ~ 2005-10-20




   시 : 2005. 10. 1 (수)  - 10. 20 (목)
   소 : 김영섭사진화랑
문   의 : T_02.733.6331   F_02.733.6334  www.gallery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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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태 선생님은 기록을 한다는 것은 사진가의 사명감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록을 하되 단순한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창작적 자세로서 자신의 시각에 의해 대상들과의 만남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기록이라는 개념을 넘고자 하는 의식의 단계는 작가의 비판의 시각으로 발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홍순태 선생님의 사진은 한국사진사의 시대적 진행 과정 속에서 어떻게 창의적 변신을 이룩해 나갔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1960년대에 사단에 등단해서 그로부터 현재까지 30년 넘게 줄곧 사진계의 제일선에 서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60년대는 우리 사진사에서 사진이 사회 속에 제도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시기이다.
이전까지는 인맥이나 지연을 따라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던 군소집단들이 예총 산하의 전국을 망라한 통일된 하나의 공식단체로 출범을 하였을 때이다. 70년대는 50년대와 60년대를 걸쳐 사진계를 휩쓴 리얼리즘 사진과 맞서 영상사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시기였다.

대상에 대해 사진이 어떻게 반영해야하는가 하는 사실적인 사진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사진가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가 하는 심상적인 사진의 문제로 사진가들의 관심을 뒤바뀌게 되었다. 홍순태 선생님은 바로 이런 사진의 새로운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공모전사진에서 새로운 영상사진으로 앞장서 사진적인 변신을 했다.
이로써 홍순태 선생님은 60년대 공모전시대의 대표적인 신인으로 출발하여 70년대 새롭게 일어난 영상사진운동을 선도하는 중견자로서 변신하였다.



▷ 1868년 청계천



▷ 1969년 청계천

그렇게나 말 많던 청계천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어 10월 1일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 시점, 청계천 40년사에 맞추어 청계천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열게 되어 하늘을 날 듯한 기분이다.
60년대부터 찍기 시작한 청계천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더럽고 추하고 가난한 모습을 찍어서 무엇에 쓰느냐’고 말하곤 했다.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동경하던 시대, 사진가들의 핀잔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보잘 것 없고 쓸데없는 사진’들을 묵묵히 찍었고, 그 필름들은 연구실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언제 발표되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은 채...

우리시대 삶의 모습을 기록한다는 것은 사진가의 사명이다. 개천주변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터전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그러했고 8.15 해방 후에도 그러했다.
6.25사변 직후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청계천은 더욱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터전으로 자리 잡아갔다. 하지만 청계천은 삶의 터전으로 그리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다.
특히 가내공업이 성행하면서 세탁소, 염색공장 등 청계천을 오염시키는 요인은 늘어만 갔고, 움막집, 판잣집들이 즐비한 주택 환경은 시멘트 블록 집으로 개선되기도 했지만 위험스럽게 3층, 4층으로 높아져 갔다. 이러한 청계천에서 나는 60년대 초부터 청계천이 복개되고 고가도로가 완공 될 때까지 10여년을 청계천과 함께했다.
나는 청계천 주변 서민들의 애환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으며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삶의 참모습을 찍고 싶었다. 처음에는 거부 반응도 많았으나 그들과 공감하여 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나는 그 속에서 감정의 리얼리티를 끄집어내고자 노력했다.

좋은 사진은 결코 사진가 자신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사체가 되는 그 인물의 환경을 이해하고 그 인물과의 감정적 유대가 경의 없는 교감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심층적 리얼리즘의 사진이 만들어짐을 당시 나는 이미 느끼기 시작하였으며 철저하게 실천에 옮겨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우선 그들과의 거리감을 없애고자 노력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서도 담배를 항상 휴대하여 그들에게 권하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고 어린이들에게는 사탕과 과자를 주며 좋은 친구가 되 주려 노력했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나에게 그들은 묻곤 했다. 도대체 왜 이런 모습을 찍으려 하냐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모습을 찍어 후세의 젊은 세대들에게 선조들은 이렇게 어렵게 살며 노력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항상 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거창한 목적이라던가, 욕심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내가 살던 시대에 함께 살다간 이러한 서글픈 사연들도 있었음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의무감으로 기록했을 뿐이다.
이명박 시장의 추진력 넘치는 청계천 복원사업 덕분에 영원히 묻혀버리게 되는 줄로 여겼던 나의 청계천 사진들이 햇빛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공해와 복잡함으로 서울 오염의 원천이었던 청계천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은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크나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청계천의 주변 환경이 완전히 정리되고 맑은 물이 흘러 물고기들이 유영하게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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