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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ing 4. 함성호 _ 불만카페
기타 마감

2007-01-09 ~ 2007-02-09


# INCARNATION; 당신의 건축에 불만 있습니다
# INTERFERENCE; 당신의 시에 불만 있습니다


전시기간: 2007.1. 9.tue- 2007.2.9.fri
관람시간: 월-토 09:30am~09:00 pm
전시문의: 테이크아웃드로잉_서울 강남구 삼성동 35-11 선진빌딩-1
Tel. 02_540_0175 / www.takeoutdrawing.com  / takeoutdrawing@hanmail.net


#오프닝: ‘살아보니 이렇더라’
2007.1.16. 화. 오후 5시
맥주와 불만을 위한 안주가 준비되어있습니다.


#HYBRID; 탈장르와 장르의 혼합 세미나
2007. 1. 17. 수. 오후 5시 30분
부산의 INDIGO서원의 학생들과 장르를 뛰어넘어 활동하는 시인들 강정, 성기완, 심보선, 함성호와의 만남을 통해 이 시대의 혼종성에 대해 토론.


#카덴짜
2007. 2.9 .금. 오후 5시
즉흥 콘서트와 시낭송, 이미지 카페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펼쳐진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이영유 시인의 유고 시집 낭송회가 후배시인들의 낭송으로 펼쳐진다.

작가 소개_ 함성호
시인이자 건축비평가이며 그 자신 독특하고 섬세한 건축가이기도 한 함성호는 시와 건축을 통해 모더니즘의 문법을 극복하고 근 현대 예술의 다양한 표정들, 그리고 이 압도적인 위용의 현대를 구축한 인간의 꿈과 열병을 탐색하고 있다.


만족하지 못하는 삶 때문에 인간은 종교와 신화를 창조했다. 그리고 다시 신과 인간 스스로의 삶에 저항하기 위해 예술을 만들어냈다. ‘불만(不滿)’이라는 단어는 만족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는 운명을 예시한다. 그래서 모든 예술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운명과 인간 삶의 보편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도를 거부하지만, 이 운명의 힘에 복종한다.
20세기에 나타난 모든 전위는 예술 바깥을 지향하면서 나타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그것이 지향하는 예술 바깥에 의해서 철저히 소외 당하고 만다. 그 소외 속에서 예술은 마치 호리병 속에 갇힌 거인처럼 끝없이 자의적인 해석을 수행해 나간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현대예술이 빠진 자기함정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예술은 소외를 자청하며(호리병 속에 든 거인처럼) 소외 당할 수밖에 없다(누가 자신을 해꼬지하려는 거인을 병 속에서 꺼내 주겠는가?). 그 대상이 자가당착의 그물에 걸린 예술가이든 대중이든 나는 그 소외의 주체로부터 이번 전시를 시작하려고 한다. “당신은 무엇이 불만인가?” 이 질문을 통해 나는 예술을 호리병이라는 타클리드(Taquelid: 맹신)의 벽에서 이즈티하드(Ijtihad; 다각적 추론)의 문으로 데려다 놓고 싶다.

# INCARNATION; 당신의 건축에 불만 있습니다
  ―내가 설계한 9채의 건물은 7채가 지어지고 2채가 공사 중에 있다. 이미 몇 년 간 내가 설계한 건물에서 직접 살아 본 건축주들이 내 설계 작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 자리는 아주 단순한 만큼 가장 신랄한 비평의 자리가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내가 그린 설계도에서 직접 살아 본 건축주들의 체험보다 정확한 비평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건축주들은 내가 그린 설계도에 자신의 불만과 개선을 적고 그리며 원래의 설계도에 자신의 의견으로 덮씌워 나간다.
  제목의 앞에 놓인 Incarnation은 육화란 뜻으로 내 건축방법의 중요한 테마이다. 이것은 말에 육체를 입힌다는 뜻으로 ‘육화’로 번역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언어로 집을 짓는다. 내가 설계한 집은 내 말이 현실에 구체성을 띠고 나타난 결과이다. 그리고 그 뒤의 ‘당신의 건축에 불만 있습니다.’는 그 말과 말의 몸 입음 간의 불화 혹은, 거부반응이 될 것이다.


# INTERFERENCE; 당신의 시에 불만 있습니다.
건축과 달리 시는 자의적인 사고의 전개이거나 직관이다. 그러나 내가 시를 쓰고 발표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나 혼자 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젠가부터 시를 쓰며 작은 활자나 괄호로 시적 화자 외에 다른 화자를 끼워 넣는 작업을 해 왔다. 그것은 근대적인 세계관으로서의 일직선적인 사고를 극복해 보려는 나름대로의 시도였다. 스스로 그것을 ‘시적 간섭’으로 불렀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것을 확장해 보고자 한다. 내 스스로의 ‘분열적 간섭’에서 독자들의 간섭을 끌어내고자 하는 의도이다.
독자들은 전시 된 내 시에 자의적인 해석과 틈입을 통해 시의 문구를 바꾸거나 동양화적인 화제를 통해 시에 직접 비평을 가한다.                      


#카덴짜
1. 즉흥 콘서트와 시 낭송, 이미지 카페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펼쳐진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이영유 시인의 유고 시집 낭송회가 후배시인들의 낭송으로 펼쳐진다.  


2.
HYBRID; 탈쟝르와 쟝르의 혼합 세미나
이 순서는 앞의 두 전시 사이에 간주곡 형식으로 삽입되는 작은 세미나이다. 부산의 INDIGO서원의 학생들과 장르를 뛰어넘어 활동하는 시인들의 만남을 통해 이 시대의 혼종성에 대해 토론한다.


3.
경부운하는 과연 타당한가?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 공사가 끝날 즈음 경부운하 구상을 발표했다. 낙동강과 한강을 조령에서 잇는 운하 구상은 1995년 세종대 이사장인 주명건에 의해서 처음 제기 되었다. 그 후 일 년 후 초선 의원이었던 이명박에 의해 이 구상은 실질적인 움직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가장 어려운 구간을 성공적으로 완공시킨 주역인 이명박 시장이고 보면 대운하 건설에 엔지니어로서의 본능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하 구상의 발제자와 그 실현자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들의 전력부터가 나는 상당히 거북스럽다. 경부운하 구상의 발제자인 주명건 전 세종대 이사장은 비리와 횡령으로 세종대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세종대 설립자인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패륜아로 규정 할 정도였으니 그 도덕성은 재고의 여지조차 없다. 그리고 이명박 시장은 개발독제 시절 그 단맛으로 자신의 야망을 펼쳤고, 급기야는 서울 시장이 되어 청계천을 복원한답시고 청계천을 거대한 어항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이다. 이 두 구시대의 전형들이 모여 경부운하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웠으니 계획의 타당성을 들여다보기 이전에 거부감부터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계획 입안자들의 전력을 들춰 계획 자체를 판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전시에서는 경부운하는 과연 타당한가? 라는 문제에 맞춰 물길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내 생각을 주.이 두 사람들의 입장과 비교하고, 강화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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