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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규전
미술

무료

마감

2012-12-05 ~ 2012-12-18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gongartspace.com
- 꽃과 산에서 노닐다

한지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그 가치와 의미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미술평론)

작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속한 시공을 기록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때로는 담대한 시대적 담론을
담기도 하고
,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극히 개인적인 소소한 사연들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내용들이 축적되고 융합하여 특정한 시대의 형식과 내용을 통해
시대적 감성과 이상을 표출해내기 마련이다
.

그간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작가 차영규의 작업은 명징한 채색이 본령을 이루는 것이었다.
수용성 안료를 반복적으로 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은근하고 부드러우며 독특한 깊이를 지닌
채색의 심미는 그의 작업을 견인하는 핵심적인 가치였다
. 그것은 흔히 전통적이라는 말로
형용되는 회화 원칙에 충실한 색채심미이자 조형관의 발현이었다
. 이러한 작업으로 일관하던
작가의 작업은 최근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진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전혀 새로운 조형적 이상을
드러내고 있다
. 그것은 당연히 작가 개인의 작품에서의 변화를 드러내는 동시에 변화하는
시공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 사실 작가와 같이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굳건하게
구축된 자신의 조형세계를 일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야말로 파격적인 변화를 통해 그 면모를 일신하였다
. 그것은 변화하지 않음으로써 근본적인
 정체성을 견지하고
,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호흡한다는 역설적인 가치관의 실천을 통해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

작가의 새로운 변화는 한지라는 새로운 매재를 통해 촉발되고 구현된다.
작가에게 있어서 한지, 혹은 한지로 대변되는 독특한 물성은 단순한 재료와 형식이라는
소극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작업의 본질이자 내용을 이루는 핵심적인 가치로 이해되고
있음이 여실하다
. 형상을 그리고 색채를 칠한다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매체 자체의 가치를
확인하고 이의 신장과 확대를 통해 자신의 조형 이상을 구현하는 것은
일종의 조형에 가까운 것이다
. 한지가 지니고 있는 물성의 강한 개성을 수용하고
용인함으로써 또 다른 세계로의 출구를 확보한 작가의 심미 이상은 결국 그간 전통적인
채색작업을 통해 확보되었던 정체성에 대한 궁극적인 접근과 확인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그것은 어쩌면 그간 우리미술의 특질로 줄곧 회자되는 자연미, 천연성,
무기교적 분방함 등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한지라는 새로운 매재와의 조우는 작가의 작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표출되었다
. 둔탁하고 질박한 한지 특유의 물성과 작가의 정제된 감성이 결합한 비정형의
 자유롭고 분방한 화면들이 바로 그것이다
. 이는 단순히 재료와 표현이라는 말단적인 것에 의한
 변화라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작가의 조형관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작위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상황과 상태를 수용할 수 있음은 작가의
심미 영역이 그만큼 확장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더불어 이를 통하여 자신의 심미 이상을
 구현하고자 함은 바로 우리미술이 지니고 있는 정체성에 접근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 재료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개성과 작가의 조형 의지가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게 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작위와 무작위
,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의지를 반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거둬들임으로써 비로소 확보되는 또 다른 가치이자 조형의 묘미이다
.
그것은 작가로서의 인간과 자연으로서의 한지가 만나는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독특한 심미 가치이다.

한지와의 조우 이후 일변하였던 작가의 작업은 그 물성과 심미적 특질에의 경도를
여실히 드러내었었다
. 한지 특유의 물성을 십분 살린 작업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함을
 통해 기존의 작업들에서 견지되었던 형식과 내용에서 탈피한 새로운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
 
이에 더하여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또 다른 변화 양태를 통해 작가가 마주하고 있는
새로운 시공과 그의 사유를 표출해 내고 있다
. 이전의 작업들이 한지라는 물성과 그
수용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라면
, 이번 신작들은 매재와 작가와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통한
개별화가 두드러진다
. 한지 고유의 물성은 수용하되 명징한 원색들로 이루어진
강렬한 색채 표현을 통해 작가의 조형의지를 적극 개진하고 있는 신작들은 보다 감각적이고 보다
조형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 이는 작가가 이미 확보하고 있는 색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특유의
 감성이 반영된 것으로
, 한지로 대변되는 우리미술의 특질과 채색으로 상징되는 자기 정체성의
조화를 시도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늘의 21세기는 흔히 디지털 시대라 일컬어진다. 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 디지털 시대라는 기계문명의 절정에서 인간적인
아날로그적 가치는 오로지 예술에 의해서 존중되고 보존되게 될 것이다
. 작가가 정치하고
감성적인 채색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용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것은
바로 당시의 시대적 가치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 이제 새로운 문명 상황에서 작가가 제시되고
있는 새로운 조형들은 바로 새로운 문명 상황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성찰의 결과물인 셈이다
.
 
그것은 작가가 한지라는 새로운 매재를 통해 발견하고 확인한 자연이라는 또 다른 절대
가치와의 만남이며
, 이를 통해 아날로그적 가치를 포착하고 표출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시공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디지털 시대는
과거 문명과는 달리 선도적이고 독점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수평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질서에 의해 다양성과 차별성이 인정되는 시대이다
. 작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속한
시공과 개인의 사유를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면
, 작가는 바로 한지를 통해 촉발된 우리미술의
특질과 자신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정체성의 확인을 통해 자신이 속한 시공을 당당히 마주하고자
하는 것이다
. 작가의 과감한 변신과 추구의 내용, 그리고 그 구체적인 성과와 지향 등을
새로운 시대 상황과 연계해 보면 그 의미는 보다 극명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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