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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놀이Ⅱ
패션 마감

2004-07-23 ~ 2004-08-22


놀이로 접근하는 현대미술

-행사명:미술과 놀이Ⅱ
-장소: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2,3,4전시실
-문의:580-1515 / 1517 
-참여작가:
강효명, 권여현, 김동유, 김지혜, 노미리, 류재하,  박병춘, 박용우, 변시재,
안광준, 안두진, 양승수, 이기일,  이동재,  이석영, 이 송,  이용덕, 이한수,
이형주, 임 택, 조채옥, 최소영, 추은영

현대미술에 대한 몇 가지 편견
우리가 현대미술에 대해 말할 때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선입견이 있다.
우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관점이다. 사실 모든 예술 장르에 ‘현대’라는 용어가 붙을 경우, 관객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전통미술에서 조차 미술가들은 대상 그 너머를 표현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현대미술이야 오죽하겠는가. 더욱이 요즈음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미술을 바라볼 때, 일반 관객들은 일말의 당혹감마저 느끼기도 한다.

둘째, 타 예술 장르에 비해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 같은 경우는 작품이해가 잘 안되기 때문에 나오는 자연스런 결과다. 대체로 미술은 시각적인 문제로 국한된다. 그래서 음악이나 영화 같은 주변 장르에 비해 흥미가 분명 덜한 편이다. 그래서 매니아가 아닌 이상 일반관객들이 현대미술을 즐겨 찾는 경우란 흔치않다.

셋째,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실제로 현대미술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전 정보나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요즈음 같이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이 같은 지식을 간파하고 전시장을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에 따라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관람객들은 미술에 대한 부담감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현대미술은 어렵다고 하는 편견을 갖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즐거운 미술, 체험하는 미술
그렇다면 과연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선입견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여기에 대한 답을 기획자는 <미술과 놀이>에서 찾고자 한다. 이 전시는 읽어내기 쉽고, 재미있으며,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미술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물론 미술의 속성상 재미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이 제작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를 대중 친화적인 방향으로 채택한 것은 미술의 대중화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대중 친화적인 측면에서 이 전시가 선택한 주제가 놀이(유희)라는 것인데, 곧 미술 속에서 발견되는 놀이적 요소에 이 전시의 초점이 맞추어진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유희라든가 놀이라고 부르는 것은 학습하지 않아도 습득하게 되는 본능적인 행위다. 그리고 주어진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며, 특별한 목적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 그 자체에 뜻을 두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놀이적 요소를 통하여 육체적, 정신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나아가 보다 긍정적인 정서를 지닌 인간형으로 성장시키는 일에도 한 몫을 한다. 이러한 놀이행위는 특히 오늘날처럼 긴장된 일상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놀이가 가지는 요소는 미술의 문제로 연계된다. 왜냐하면 미술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술가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시류에 더 민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가들은 좁게는 개인사에 국한되기도 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사회와 세계에 대하여 폭넓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이러한 눈이야말로 자신의 작업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 된다.

미술가들의 놀이에 대한 해석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보여주는 미술방식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즉, 미술작품 속에서 일상을 반영하는 놀이적인 요소, 미술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 후기 산업사회가 생산한 매체가 주는 흥미유발 작업 등으로 구분된다. 물론 미술이 이렇게 엄격히 구분될 수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든지 간에 이 전시는 밝고 유쾌하며, 즐거운 미술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다. 이 전시를 보면서 눈치 빠른 관람객들은 놀이와 유희성이라는 것이 무한정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즉, ‘미술관은 놀이터’식의 무제한적인 놀이의 공간으로 유도한 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인식 과정이 지루하거나 곤경에 처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인이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전시, 현대미술의 또 다른 접근으로써의 도약이 가능한 전시로 만들어진다.

우리 일상에 반영된 놀이

여기서는 대체로 적극적인 소통도구로써의 미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작품의 시작에서는 작가개인이 동기를 부여하지만 그 의미나 경험은 관람자가 누려야 할 몫으로 남겨진다. 특히 작가, 관객 모두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실제 전시공간에서 드러내고 재구성 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분야다.
참여작가 변시재는 어린 시절, 혼자서 놀아야만 했던 자신의 과거 경험을 스스럼없이 이야기 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홀로이기 때문에 풀어야 할 자신에 대한 위안의 방편으로써의 놀이 행위를 담았다. 강효명은 전시장에 창고 하나를 만들었다. 창고 안팎에서 관객이 낙서를 하거나 삶의 지혜가 되는 경구를 읽고서,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업이다. 이 작가들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현대사회가 양산한 제반 문제에 대한 자기치유적 관점이 강하게 베어있다. 곧 자본주의의 그늘 속에 숨겨진 상처 난 인간정서의 문제를 다루는데, 작품을 통하여 처방, 요양, 회복을 논의하는 자리가 된다.

미술이 주는 시각적 유희
미술이 가지는 대표적인 관심사가 바로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다. 따라서 여기서는 꿈과 상상, 인간과 우주에 대한 아름다운 관계가 중심이 된다. 이용덕은 어린이의 유영하는 모습을 통하여 정서적 유희성을 느끼게 한다. 이와 함께 시각적 환영을 보여주는 부조작품은 망막의 착시현상을 통한 시지각적 관계를 즐길 수 있다. 부언하자면 석고 내부에 묘사된 대상이 우리 눈에는 마치 석고 표면에 그려진 것처럼 착시효과를 준다. 그의 작업은 시각적 유희성을 가진 대표적인 경우다.
김순희는 스틸재료로 만든 구(求)형태의 크고 작은 구조물을 설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우주의 반점처럼 느끼게 한다. 그의 작업은 관객들로 하여금 우주공간 속에서 천체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김지혜의 도자설치와 이어진다. 김지혜는 일종의 조명설치작업을 보여주는데, 따뜻한 빛의 유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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