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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가치의 재발견 - 업사이클링 디자인

2018-08-21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 15]

 

온 지구가 뜨거운 여름을 지나고 있다. 40도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갱신하고 있는 한국의 소식도 들려온다. 이곳 북유럽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평균 25도였던 여름이 이제는 가볍게 30도를 넘어간다. ‘지구가 주는 경고’라는 식상한 문구가 이젠 우리 모두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 필자는 지도 한 장을 들고 숲속의 거인들을 찾아 나서는 특별한 여행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여행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번 연재는 이 숨겨진 보물을 찾는 여행 이야기이다.

 


언덕 위의 트린 / Hill top trine, Copenhagen

 

 

덴마크 코펜하겐 인근 숲속에는 거대한 나무 거인상들이 숨어 있다. 크기만 해도 4~10m에 이르며, 저마다 흥미로운 개성을 가지고 숲속 곳곳에 조용히 숨어있다. ‘보물 찾기’가 떠오르는 이유는 이 거인 조각상들을 찾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도가 조금 허술(?) 하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낡고 오래된 지도 같은 느낌이다. 거인상의 대략적인 위치만을 알려주고, 정확한 주소와 우편번호가 없기에 내비게이션으로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숨어있다. 이런 곳에 길이 있을까 하는 곳에, 나무가 너무 우거져 잘 보이지도 않는 길 끝에 어김없이 이 거인들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손에 꾸깃꾸깃한 지도 한 장을 들고 숲속을 찾아 헤매는 경험은 아주 특별했다. 필자도 아침 일찍 출발해 오후 늦게까지 코펜하겐 곳곳의 숲과 공원에 숨겨진 6개의 조각상을 모두 찾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내비게이션이나 핸드폰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아니 받지 못하고) 이 미션을 수행하는 경험은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필자에게 묘한 성취감까지 안겨주었다.

 


산속의 토마스 / Tomas on the mountain, Copenhagen

 


토마스 담보 공식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안내지도(thomasdambo.com)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한 토마스 담보(Tomas dambo)는 덴마크 출신의 디자이너이자 업사이클 아티스트(upcycling artist)다. 그의 작품은 날마다 버려지는 수많은 폐목재들로 만들어진다. 비록 쓸모없는 폐자재들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이 거인상들의 퀄리티와 디테일이 상당히 높음에 놀라게 된다. 

 

그가 말하는 프로젝트의 모티브인 ‘숲속에 사는 거인들의 이야기 - 트롤(Troll)’은 덴마크의 오래된 전설이다.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함으로써 인류에게 당면한 환경문제를 일깨우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덴마크의 이 거인 작품들은 무려 3년의 기간 동안 제작되었다 하니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지 짐작할만하다.

 

‘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좀 더 많이 자연 속으로 찾아오길 바란다’. 그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이다. ‘누군가의 쓰레기는 다른 이의 보물’이라는 말은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버려진 폐자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그의 작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것을 찾아낸다는 단순한 목적을 넘어서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으로 나와 그 속에 가리어진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많은, 아직은 쓸모 있는 것들이 무분별하게 버려지는지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필자도 이 거인상들을 찾아다니며 평소에는 지나쳤던 코펜하겐의 숨겨진 곳들을 발견하게 되는 흥미로운 경험을 덤으로 얻게 되었고, 일상 속에서 무심코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되었다. 날마다 버려지는 수많은 폐자재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가야 할 지구 환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그는 현재 업사이클링 분야에 대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버려진 것들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고 있는 이 업사이클링 프로젝트가 북유럽을 시작으로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업사이클링에 관한 강의, 학교 혹은 회사와 연계한 워크숍 진행, 업사이클링 아트 교육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 포천의 평강 식물원에서도 그의 프로젝트를 직접 볼 수 있다고 하니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친절한 테디 / Teddy Friendly, Hoje Taastrup

 


잠자는 루이스 / Sleeping Louis, Copenhagen

 


언덕 위의 트린 / Hill top trine, Copenhagen

 


꼬마 틸데 / Little tilde, Vallensbæk

 

다리 아래의 오스카 / Oscar under the bridge, Ishoj

 

 

버려진 것들에 숨결을 불어 넣다 - 스토리텔링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recycle)의 합성어인 업사이클링(Upcycling)이란 용어는 1994년 독일 디자이너 리너 필츠(Reiner Pilz)가 디자인 매거진 살보드(Salvod)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낡은 제품에 의미 있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단순히 버려진 제품을 재사용하는 리사이클링의 개념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바로 업사이클링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다. 특히 이곳 북유럽의 문화에서는 이 부분이 현명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본다. 이전 칼럼에 연재했던 북유럽의 플리마켓(flea market)에 관한 이야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 없어진 물건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의미의 물건이 되는 이 단순한 이론은 적어도 이곳 북유럽에서는 익숙해 보이기 때문이다. 힙한 브랜드로 가득한 대형 쇼핑몰에 세컨핸즈(second hands) 스토어, 즉 중고제품 상점이 정식으로 입점해 있는 것만 봐도 이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덴마크 출신 토마스 담보의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역시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 세계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버려진 폐자재를 사용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완성도가 돋보이며, 전설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도 한 장에 의지해 찾아간다는 특별한 경험이 담겨있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리라.

 

이와 같은 업사이클링의 성공사례는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Adidas)에서 출시한 울트라 부스트 팔리(Ultra boost parley)도 이 업사이클링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바다에 버려진 페트병을 수거해 압축한 뒤 제작된 신소재인 프라임 니트(Primeknit)를 활용해 만들어졌으며, 한 켤레당 11개의 페트병이 사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제품은 지구 환경을 함께 지켜내자는 현명한 마케팅 전략으로 고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스위스 브랜드인 프라이탁(Freitag) 역시 업사이클링 비즈니스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들은 트럭의 천막으로 사용되는 타폴린(Tarpaulin) 소재를 재활용해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제작하고 있다. 이 브랜드의 창업자인 프라이탁 형제는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이다. 이들은 리사이클링의 스토리를 브랜딩에 적용함과 동시에 감각적 디자인을 앞세워 연간 5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시장에서의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자동차의 안전벨트 소재는 가방의 끈으로 제작되고, 폐자전거의 타이어 등을 안감소재에 재활용함으로 완벽한 내구성까지 잡아내며 그 스토리를 완성하고 있다.
 

 

 

독일의 츠바잇신(Zweitsinn, www.facebook.com/Zweitsinn) 역시 폐가구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번째 용도’라는 의미인 이 브랜드는 독일 도르트문트 공대의 환경연구소의 주도하에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대부분의 폐가구들이 소각되어 버려지는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단순히 제품을 재활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독특한 디자인과 스토리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업사이클링의 무한한 가능성은 이미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제 단순히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한다는 의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떠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사용자에게 어떠한 가치를 전달하는지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사이클링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지켜낼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로 묵직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고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행위들.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혹은 하지 않는) 그 행위들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일상 속에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글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 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sangwoo.cho.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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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디자인이야기 #북유럽 #업사이클링 #환경 

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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