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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 새겨진 한국 역사, ‘주미대한제국공사관’

2018-09-10

무더운 더위가 물러간 뒤, 야외 산책이 더없이 즐거운 요즘. 미국의 정치 1번지, 워싱턴 D.C.도 부쩍 백팩, 운동화 차림에 한 손에는 지도를 든 가을 손님들이 눈에 띄고 있다. 지난 5월 문을 연 '주미대한제국공사관(Old Korean Legation)'은 역사적, 정치적 의미가 남달라 워싱턴 D.C.의 새로운 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복원을 마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113년 만에 태극기 게양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재위 1863∼1907)은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강대국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고, 1년 치 왕실 자금의 절반에 달하는 25,000달러(약  2,800만 원)를 들여 미국 워싱턴 D.C.의 한 건물을 매입한다. 그곳이 1889년부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뺏길 때까지 외교활동의 무대로 사용된 대한제국공사관이다.   


이후 공사관의 운명은 기구하게 꼬인다. 국권을 앗아간 일제에 의해 단돈 5달러(약 5,500원)에 강제 매입됐다가 광복된 후에도 오랫동안 소유권을 되찾지 못하고 여러 번 건물주가 바뀐 끝에 2012년, 우리 정부가 재매입에 성공한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은 워싱턴 D.C.에 소재한 19세기 외국공관 중 내외부 원형을 모두 간직한 유일한 건물로 평가된다. 공사관으로 사용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6년 동안 실측조사와 보수 복원 공사를 거쳤고, 마침내 올해 5월 22일 박물관 형태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을사늑약으로 문을 닫은 지 113년 만이다. 

 
1888년, 초대 주미 특명전권공사 박정양 일행(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 사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현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국내외에서 새롭게 발굴된 19세기 말~20세기 초 사진과 문서 자료들을 근거로 공사관 운영 당시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1층은 공사관 전체에서 가장 공적인 성격의 공간에 해당한다. 즉 외부의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 기능의 ‘객당(客堂)’과 사교장 기능의 ‘식당(食堂)’이 이러한 1층 공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특히 고종의 어진(御眞)과 황태자의 예진(睿眞)을 모시고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임금의 탄신일 등 의미 있는 날에 맞춰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망궐례를(望闕禮)를 올리던 ‘정당(正堂)’은 미국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공사관원들에게 가장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현재 ‘객당’과 ‘식당’, ‘중앙홀’의 모습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The Columbian Exposition of 1893)를 기념해 당시 공사관 내부를 촬영한 사진자료를 근거로 복원 재현했다.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매입된 이후 이 건물은 2차 세계대전 기간 아프리카계 군인들의 휴양 시설, 화물운수노조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다 1977년부터는 젠킨스 씨 부부가 개인 건물로 매입해 가정집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백여 년 전 인테리어를 2018년으로 가지고 오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 벽지는 당시 사진을 분석해 새롭게 프린트했고, 가구 역시 최대한 비슷한 모양의 유럽 가구를 공수했다. 욕실의  비누는 당시 사용됐던 제품을 그대로 복제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1층 입구 모습

 

 

객당의 가구나 벽지, 카펫, 커튼, 장식물 등 실내 인테리어는 1890년대 당시 미국 사회에서 유행했던 빅토리안 양식으로 조성됐다. 그리고 화조도를 수놓은 병풍, 자수를 놓아 만든 태극기 모양의 쿠션 등 한국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소품도 제작했다. 


공사관의 식당은 단순한 음식을 먹는 장소만의 기능이 아니라, 현지에서 활발한 외교활동에 따른 사교의 장이었다. 실제로 공사관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무렵, 미국 현지 신문과 잡지에는 조선과 대한제국 공관원들의 활발한 외교활동에 관한 많은 기사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곳에서는 각국의 외교 사절들과 미국의 행정 관료들은 물론, 미국 대통령 부인 프랜시스 클리블랜드(Frances F. Cleveland)도 초대해 사교모임을 이어갔다.
 
1층 객당 모습
 


1층 객당에 비치된 태극기 문양 소품

 
1층 정당

 
1층 식당

 


19세기 빅토리안 양식 재현
공사 부부가 함께 생활하는 침실과 화장실은 공사관에서 유일한 사적 공간이었다. 이곳에 대한 사진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규장각 문헌에 공사관 각 방에 배치된 물품 목록 문서가 발견돼 이를 토대로 복원이 이뤄졌다. 인테리어는 1층 객당, 식당, 정당과 마찬가지로 빅토리안 양식의 침대와 화장대, 거울, 책상 등을 비치했다. 


공사가 각종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 공간에는 1890년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한 책상과 의자, 벽난로 위 자명종, 독서대 등 업무에 필요한 집기와 가구들을 비치했다. 전형적인 양식 가구들 위에 붓과 벼루, 먹, 한지 등 한국적인 소재가 어우러진 점이 독특하다. 이 공간은 로건 서클 등 외부 경관을 직접 내려 볼 수 있는 테라스와도 연결되어 있다. 


자료실에 해당하는 서재는 공사관에 근무하던 공관원들이 국내외에서 직접 수집한 각종 도서들을 한데 모아놓고 열람하던 공간이다. 국내에서 가져간 조선 후기 반닫이와 빅토리안 양식 가구를 한 공간에 뒀다. 서가의 책들은 양장본 고서적들과 조선시대 서책류들이 함께 비치되어 있다.


특히 공사 침실 건너편에 위치한 공관원들의 사무공간은 초창기 대미외교업무의 전초기지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상징성이 크다. 국내에서 가져 간 문방구류들은 물론, 19세기 후반 미국 현지에서 출판된 업무용 영어사전, 1892년 당시 워싱턴 관공서 위치, 각국 공사관 개설 현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워싱턴 D.C. 옛 지도 등이 함께 전시해 당시 사무소 모습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2층 침실

 


2층 공사 집무실
 

2층 서재에 비치된 반닫이

 


2층 공관원 사무공간에 비치된 타자기

 

 

과거와 현재의 혼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130년 전과 똑같이 복원하면서 유일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 있다. 바로 야외정원이다. 원래는 미국식 정원과 주차장으로 쓰였던 곳이지만 한국 전통정원으로 조성했다.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과 같은 아담한 담장을 세우고 꽃담은 붉은 벽돌을 쌓아 전통 기와를 올렸으며, 흙으로 구워 빚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 사군자를 담장 한복판에 새겨 넣어 정원 공간의 기품을 더했다.

 

정원 바닥에는 불규칙한 모양의 박석을 무심한 듯 깔아 전통 담장과 조화를 이룬다. 정원 중앙에는 창덕궁 후원에 세워진 불로문(不老門)과 똑같은 문을 세웠다. 불로문은 널따란 화강암 돌판을 'ㄷ'자로 깎아 만든 것으로, 선조들은 이곳을 통과하면 '늙지 않는다' 믿고 현실세계의 무병장수와 건강한 삶을 염원했다. 미국 워싱턴 D.C. 한복판에 수놓인 사군자는 서양 국가 중 최초로 외교협정을 맺은 조선과 미국의 소중한 우정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돌담에 새겨진 대나무

 
돌담에 새겨진 사군자

 
중앙정원의 불로문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한국과 미국의 역사를 동시에 공유한 뜻깊은 장소이다. 고종의 자강외교 의지를 보여준 한미우호의 요람이자, 서양 근대문물을 조선에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더불어 일제강점기 재미 한인들이 국권 회복의 결의를 다지던 독립의 상징이었다. 이제 대한민국 역사의 한 부분이 된 워싱턴 D.C. 옛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만나보자. 

 

개관시간  10:00AM~5:00 PM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요금  무료
주소  1500, 13th ST NW, Washington D.C. 20005 U.S.A.

 

글_ 이소영 워싱턴 통신원
사진 출처_ www.oldkoreanleg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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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한제국공사관 #워싱턴 

이소영 통신원
워싱턴 D.C.에 거주하며 여러 매체에 인문, 문화, 예술 칼럼을 쓰고 있다. 실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다 쉽고 재미있는 소식으로 디자인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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