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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아는 만큼 사랑한다? 사랑하는 만큼 알게 된다!

2006-08-07


암울했던 중세를 뒤로한 융성한 문화의 번성기인 르네상스 시대. 이 시기를 더욱 화려하게 꽃피웠던 인류의 몇 되지 않은 인물 가운데 하나인, 천재 발명가이자, 디자이너,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의 혁신적인 발상과 발현과정을 상세하게 만날 수 있는 진귀한 시간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da Vinci, The Innovator (원제LEONARDO DA VINCI, MENSCH-ERFINDER-GENE)’ 라는 타이틀로 개최되고 있는 전시가 바로 그것.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브라질의 상 파울로 등지에서 이미 커다란 반향 속에 진행된 이번 전시는 현재, 시카고와 서울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본 전시는 EMS GmbH가 주최하고, EMS Asia-pacific Corp이 주관하며, ㈜이노디자인,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 오스트리아 상공회의소, 한국디자인진흥원 후원으로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립과학기술관(Museo Nazionale della Scienza e della Techvica Leonardo da Vinci)의 철저한 고증으로 이탈리아 현지에서 제작 된 60여점 이상의 전시품들이 직접 공수되어 선보여지고 있다. 각 나라와 도시에 따라 개별 전시 컨셉트로 열리고 있는 전시회의 한국 전시설계는 최근 혁신적 디자이너로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대표가 맡아 진행하였으며, 이노디자인의 대표적 작품들도 이번 전시회에 함께 소개되고 있다. 김영세 대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야 말로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논리”와 “감성”을 모두 겸비한 디자이너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정의하며, 이번 전시가 ‘혁신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보다 확대시킴으로써 창조와 상상이 적용된 비즈니스 그리고 우리 미래 한국을 여는 또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레오나르도에 관한 광범위한 이야기를 이 작은 공간에 담아 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으나, 전시와 그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소개하고자 한다.


취재| 서채연 팀장 (cyseo@jungle.co.kr)
자료협조 및 참조•인용 | EMS ASIA PACIFIC CORP. & Book of INNOVATOR DAVINC

전시가 보여주고 있는 깊이만큼 다 빈치를 조명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역사적 명성에 기대어 기억하고 있는 교과서적인 다 빈치는 전시장에 없었다. 그의 흥미로운 일생과 혁신적이고 놀라운 그리고 경이롭기까지한 사고의 결과물들은 그대로 살아서 재현되고 있다. 전시를 주관하고 있는 EMS Pacific Asia Corp.는 전시장 곳곳에 안내원을 두어 관람객들에게 상세한 설명을 전하고 있다. 또한 각 코너에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 상세한 이론과 기술적 원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다 빈치가 발명했던 대부분의 기계들은 실제로 응용하기 보다는 이미지와 시각적인 측면에서 상상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려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현재 그의 수기 노트에 그림과 주석으로 남아있는데, 다 빈치의 수기 노트에는 발명뿐 아니라 해부학, 기체역학, 동물학, 철학을 비롯하여 그의 다양한 관심분야가 23권의 책으로 남겨져 있으며 이를 ‘코덱스’라 하고, 서울전시에서는 이를 전자 모니터에 그대로 재현 상세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가, 철학자, 화가, 생리학자, 파티플레너 등 다 빈치의 일생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수세기에 걸친 수십, 수백명의 삶을 통해서도 이루기 힘든 혁신적인 발상과 그것의 투철하고 성실한 실현 그리고 기록작업에 이르기까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설명이 과하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보여주고 있는 세계는 한 인간의 삶이 이뤄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전인(全人)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그는 마치 모두가 어둠 속에 잠들어 있을 때 너무 일찍 일어나버린 자와 같다 (그는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앞서가는(깨어있는) 사람이었다.”라는 설명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미술공학도’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게 한 다 빈치는 제한과 한정에 맞선 Uomo Universale, 즉 ‘만능인’으로 설명된다. 현대에서도 이를 압도할 만한 인물을 찾기는 힘들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동시대 성인들의 이야기와 함께 다 빈치의 철학적 명제는 그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적확한 언급일 것이다.


여기서 전인에 가까운 다 빈치의 출생과 성장과정이 궁금해진다. 그는 공증인 아버지와 농사꾼의 딸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귀족의 신분도 아니요, 그렇다고 일반적인 평민 출신 또한 아니다.
정식 교육도 받지 않았고,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인 조각가이자 금 세공인이며 화가였던 베로키오의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그는 그림을 다루게 된다. 키가 크고 건장한 외모의 소유자였음에도 무수한 예술가와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줬던 여성편력의 일화도 알려진 바가 없으며, 아이러니한 것은 다 빈치의 삶 전체에서 묻어나는 ‘사랑’이라는 테마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제로 ‘결혼’이라는 형식을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성애자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는 부분은 흥미로운 대목이기도 하다. 다시, 그의 연구와 업적으로 돌아가서 보자.

그의 인생철학 가운데 특히, “사랑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리고 “ 미술의 과학을 연구하고, 과학의 미술을 연구하라.”는 이야기는 지금의 이노베이터이자 디자이너인 사람들에게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나는 내가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을 안다. 거만한 사람들은 나를 박식하지 않다 할 것이다. 바보 같은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린 교육이 아닌 경험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교육을 했다는 것을..” 이렇듯, 다 빈치는 거의 모든 지식을 법정이나 대학 등에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소문을 통하여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인간의 경험을 디자인하고, 행동을 디자인하다’ 라는 오늘날의 디자인 방향성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끝없는 호기심과 사물에 대한 관찰, 관심과 고찰, 모든 대상에 대한 사랑은 그로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유도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무한의 상상과 욕망이 전인에 가까운 결과물들을 생성시키는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다 빈치는 약 6,000장에 이르는 종이에 100,000개가 넘는 양의 스케치를 남겼으며, 음악에 대한 흥미도 높았고, 결혼식과 피로연, 행진 등의 기획을 맡아 파티, 복장, 가면, 무대기기 세팅을 담당하는 당시의 이벤트 매니저인 apparatore라는 역할도 담당했다고 하니, 가히 이 역사적 인물의 활동영역의 한계를 가늠할 수 없을 따름이다.

특히 그의 발명품 가운데 볼베어링과 윔기어, 자전거, 낙하산 등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변형 없이 사용되고 있으며, 총이 장착된 배, 적의 군함을 뚫어 공격하게 디자인 된 잠수보트에 관한 스케치 등은 그의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증명해 주는 부분으로 언급되고 있다.
무엇보다 하늘을 비행하는 상상은 다 빈치가 일생을 통해 갈구하던 욕망으로 “예술적으로 제작한 커다란 날개에 압력만 가한다면 인간은 공기의 저항을 극복하고 날게 될 수 있다.” 고 말한 그는 나중에 인간의 무게와 힘에 관한 해부학적 오해를 깨닫고 새와 같이 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향후 발명한 비행기계들은 바람과 기류를 이용한 글라이딩의 원리를 따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인체에 관한 관심은 그를 해부학의 선두주자로 만들었으며, 미국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은 도시를 설계하는 건축가로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원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탱크에서 화학무기, 이동식 다리, 각종 기계와 포크레인, 물레방아, 풍차 등 노동자 사회계급을 위한 농업장비 개발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의 이야기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이 더 이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설명하는 대명사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에 그리고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음을 깨닫기에.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이 적다”라는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해 본다.
“아는 만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만큼 알게 된다” 라고.

나의 주요 클라이언트의 하나인 삼성전자의 디자인 회의에서의 일이다. 회의에 참석한 정보통신부문 이기태 사장이 임원들을 향해 갑작스런 질문을 던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떤 사람이었지?” 뜻밖의 질문에 참석한 임원들이 한 마디씩 했다. “건축가입니다” “화가입니다” “발명가입니다” “과학자입니다” 이어지는 답변에 계속 고개를 젓고 있던 이 사장은 결국 “다빈치는 디자이너였다”라고 정의를 내려주었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혹은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번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꼽았던 나는 평소 존경하는 CEO가 다 빈치를 디자이너로 명쾌히 정의 내리자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무엇보다도 삶의 필요를 바로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제품으로 만들고자 했던 디자이너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여러 방면에서 뚜렷한 천재성을 드러냈다는 면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미국 유학 시절 큰 아이를 가졌을 때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미국 이름을 “레오나르도”라고 지으려고 벼르고 있다가 여자아이가 태어나서 딸의 이름을 “레아”로 지은 일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알려 진대로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와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발명가로서 날아다니는 기계, 헬리콥터, 낙하산을 비롯해 오늘날 소방대에서 사용하는 접이식 사다리를 포함한 물건들을 이미 500여 년 전에 만들어 낼 계획을 하기도 했다. 몇 년 전인가는 그가 15세기에 스케치한 낙하산 설계도 그대로 캔버스 천으로 만든 낙하산을 메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상공에서 뛰어내려 비행에 성공한 사례가 많은 화제를 남기기도 했다. 나는 그 에피소드를 취재한 기사를 읽고 스크랩 해서 가슴에 품고 나닌다. 한편으로 그는 해부학과 식물학, 물리학의 스승이라고도 일컬어지며, 또한 자동화란 개념을 처음으로 창안한 선구자로서 노동력을 아끼고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는 무수한 기계류를 디자인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볼 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동시에 과학자였던 것이다.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흔히 과학자와 예술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오늘날의 일반적인 지식이 무색해진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와 같이 상반된(?) 분야에 시대를 앞서간 광기와 같은 천재성을 지닌 이를 납득하기 어려워지며, 그의 천재성은 미스테리 할 뿐, 절대 따라갈 수도 없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야 말로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논리”와 “감성”을 모두 겸비한 디자이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산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특히 디자이너는 500여년 전의 다 빈치가 상상 속에서 낙하산을 그려냈듯이 무궁무진한 상상으로 미래의 세계를 현실로 이끌어내는 주체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만으로 혹은 예술에 대한 뛰어난 테크닉만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그 동안의 디자이너란 날이 갈수록 진보하는 제품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실행해 왔다. 제품의 불필요한 구조를 과감하게 도려내고 제품의 기능이나 생산비용 측면에도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해왔다. 우수한 기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그 역할을 다했다고 인정 받아 왔지만 이제 디자인은 기술의 부가적인 요소로만 머물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인류를 위한 미래를 상상하고 그 안녕을 기원할 수 있는 제품과 환경을 디자인하고, 또 제시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 인간 신체와 심리를 알아야 하고, 앞으로 등장하게 될 마케팅 환경과 기술의 도래, 나아가 지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환경, 생태학에 관해서도 깊은 이해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

꿈을 현실에 가깝게 만들 수 있도록 창조적인 영감으로, 상상하고, 그리고 또 설계하는 이 예술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멀티플레이어형의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디지털 환경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걸쳐 적용되기 때문에 그러한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변화는 우리 삶의 커다란 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디자이너의 등장, 그로 인해 현실 세계에 그려질 미래의 모습이 나는 매우 궁금해진다.

혁신 즉, 이노베이션은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것이다. ‘무언가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 것’으로 승부를 내는 것, 그것은 바로 디자인 탄생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래 한국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방면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그가 그려낸 수많은 스케치는 오늘날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러 모습으로 불리워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최고의 디자이너, 이노베이터로 한국에 소개하며, 나는 앞으로 등장할 수많은 이노베이터를 꿈꾼다. 또한 혁신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보다 확대되어 창조와 상상이 적용된 비즈니스 그리고 우리 미래 한국을 여는 또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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