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1
[디자이너 토크 Designer’s talk]
북유럽 트렌드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북유럽의 가구 디자인이 담고 있는 간결하고 실용적인 언어는 세대를 뛰어넘어 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오브제’로 자리 잡고 있다. 케비닛 메이커(cabinet maker)라는 직업이 있고, 이를 위한 학교가 별도로 있을 정도로 이곳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분야로 인식된다.
북유럽에 수많은 가구 브랜드가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부분 그들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내세워 브랜딩을 한다. 차별화 없이는 수많은 가구 브랜드 사이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이야기. 필자가 만나본 북유럽인들은 대체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상당히 높았다. 디자인이나 예술 분야의 종사자가 아니어도 대부분 평균 이상의 눈을 가졌음을 본다.
이는 어려서부터 이뤄지는 예술에 대한 교육과, 주변의 역사 깊고 수준 높은 뮤지엄과 갤러리들, 그리고 집 안에 무심하게 놓인 일상 속의 디자인 오브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안목이 생겨나고 또 후대로 대물림된다. 이렇게 소비자의 안목이 기본 이상이니 가구 브랜드들도 긴장(?) 할 수밖에 없다. 그 눈높이에 맞추고자 정제된 디테일과 브랜드 스토리를 내세워 저마다의 제품들을 내놓는다. 자연스럽게 가구 산업 전체의 퀄리티 기준이 상향 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디자이너 토크는 덴마크의 가구 브랜드 몬타나(Montana)와 함께 했다. 첫인상은 상당히 모던하고 심플하며 현대적이다. 그리고 컬러풀하다. 기존 완제품 개념이 아닌 주거환경에 따라 사용자가 직접 선택하여 디자인할 수 있는 모듈러 시스템(Modular system) 시리즈가 주목받고 있다. 몬타나의 디자인 디렉터 요아킴 라슨(Joakim Lassen)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토크 세션을 함께 진행한 몬타나의 요아킴 라슨(Joakim Lassen)과 함께
이렇게 스튜디오에 초대해주어 고맙다. 소개를 부탁한다.
반갑다. 몬타나에서 디자인 디렉터를 맡고 있는 요아킴이라고 한다. 몬타나는 우리 가문의 5대째 내려오고 있는 가업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타계하신 아버지 피터 라슨(Peter J. Lassen)과 함께 몬타나를 이끌어왔다.
몬타나는 1982년 론칭했으며, 스페인어로 ‘여러 개의 중첩된 산악 지형’을 의미한다. 하나하나 쌓아가는 모듈러 시스템의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다. 당시 덴마크의 오래된 가구들은 대부분 상당히 사이즈가 컸다. 때문에 인테리어를 변경하거나 이사를 할 때는 이동이 힘들뿐더러 분해와 조립은 상상도 못했다. 우리는 북유럽 가구가 대중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가길 바랐다.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쉽게 변경도 가능하고, 취향에 따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신선한 개념의 가구를 제안하고자 했다(물론 북유럽의 감성은 그대로 담겨있는).
처음 제작한 라인업이 스토리지(storage)였다. 스토리지는 우리의 어느 공간에나 항상 존재하며 일상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가구의 개념’이다. 우리는 이 제품이 사용자 스스로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수납 품목은 모자, 신발, 가방부터 의류, 접시, 각종 전자제품까지 다양하지만 그들을 위해 개별적인 디자인을 별도로 제안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심플한 라인과 최적의 비례 값을 고려한 정사각형 모듈이 개발되었다. 단순한 사각형 같지만 섬세하게 라운딩 처리된 모서리와 안정적인 비례의 사이즈는 모듈러 시스템으로 활용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크기의 모듈 시스템이 조합 배치된 리빙룸 ⓒ Montana
몬타나의 12mm 모듈 시스템 시리즈 ⓒ Montana
모듈러 방식의 제품은 몬타나만의 아이코닉 한 제품이다.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당신의 방을 오롯이 당신만의 스타일로(Make a room for personality)’라는 슬로건 하에 모듈러 시스템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켰다. 이와 더불어 사용자가 직접 그들의 방이나 사무실을 몬나타 가구로 꾸밀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드로잉 프로그램(Drawing program - Made by you)은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스스로의 공간에 대한 디자이너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단지 그 열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소비자의 크리에이티브를 이끌어낸다. 바로 몬타나 모듈러 시스템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42가지 기본 모듈은 각각의 조합과 순열에 따라 다양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이 시스템은 이미 다음 버전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스토리지의 사용 환경에 따라 모바일앱과 연동한 자동 잠금장치라던지, 전동식 높낮이 가능 스토리지, 플러그나 콘센트가 내장된, 혹은 이동이 손쉽도록 바퀴가 부착된 스토리지 등의 아이디어가 구상 중이다. 그야말로 환경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의 한계는 없다.
몬타나의 색상은 그야말로 다양하고 화려하다. 매년 시즌별 컬러를 발표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몬타나의 가구 컬러는 그 자체가 디자인이라 할 만큼 아름답다. 특히 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컬러는 전속 컬러리스트가 개발하고 있다. 단순히 컬러만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의 연구와 텍스처의 개발까지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을 토대로 매년 몬타나 컬렉션의 테마가 발표되고 그에 맞는 컬러가 시리즈로 함께 출시된다. 따라서 해당 테마 안에 속한 컬러는 (어떤 색이든 완벽한 배색을 고려했기에) 누구나 과감히 컬러 조합을 할 수 있다.
과거 컬러 디자인의 대가였던 베르너 펜톤(Verner Panton)은 아버지와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그 시점에 나 역시도 컬러에 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그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컬러가 개성의 한 부분임을(Color is part of personality) 말이다.
TV 콘솔, 스피커, 오디오 등의 수납공간을 위한 시리즈 ⓒ Montana
몬타나 브랜드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인 덴마크 태생이지만 상당히 모던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다.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몬타나의 디자인 랭귀지는 심플하고 간결함을 추구한다. 동시에 대를 물려 쓸 만큼 클래식한 디자인이기도 하다. 물론 지루하지 않게 요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성장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본 몬타나의 가구는 굉장히 견고하며, 실용적이고 동시에 아름답다는 피드백이 주를 이룬다.
특히 가구를 사용하는 이들의 생활환경을 고려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보다 슬림 해지고 스마트해지는 TV나, 인공지능이 더해진 블루투스 스피커와 오디오 등 사용자를 둘러싼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품들과 함께 연출할 수 있는 모듈 디자인에 신경 쓰려 한다. 예를 들어, 비례미를 강조한 스마트 TV와 오디오에 몬타나 모듈이 더해지면 마치 설치 미술을 보듯 이상적인 공간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코펜하겐 중심부에 있는 몬타나의 쇼룸은 덴마크 디자인 축제 ‘3 Days of design’에서도 항상 주목받는 힙 플레이스로 알려져 있다.
쇼룸은 몬타나 브랜드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므로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인다. 단순히 제품을 진열해놓고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곳이 되길 바란다. 실제로 많은 고객들(관광객을 포함한)이 들러 인테리어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쇼룸인 동시에 서로 교감하는 공간인 셈이다.
다양한 시리즈의 시스템 가구를 선보이고 있는 몬타나 ⓒ Montana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 간의 혹은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활발하다. 몬타나는 어떤가?
얼마 전 야콥 젠슨(Jacob Jensen)과 협업한 사례에서 보인 시너지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할 예정이다.
전 세계 가구 시장에는 수많은 경쟁 브랜드가 있다. 특히 북유럽에서는 경쟁이 치열할 것 같다.
맞다. 겉으론 보이지 않지만 꽤나 격렬하다. 마치 미식축구 경기처럼(웃음). 하지만 이는 상당히 ‘건강한 경쟁’이다. 서로의 경쟁 덕분에 디자인의 퀄리티는 상향 조정된다. 우리 스스로도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준다. 때문에 더욱 특별한, 유니크(unique) 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 스토리를 통해 가치(value)를 더해주는 것이 중요한 열쇠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다른 회사와의 건강한 경쟁을 통해서 ‘특별한 것’을 얻게 된다고 믿는다.
북유럽의 디자이너로서 식을 줄 모르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열풍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본질에 집중하는 것 아닐까. 이곳 북유럽은 화려하거나 장식적인 무언가와는 거리가 멀다. 꾸미지 않고 내추럴하며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적다. 그만큼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에 더욱 집중한다는 이야기다. 덧붙이거나, 꾸미거나,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것은 결국 불필요한 것들이다. 본질은 뭐랄까, 메이크업을 지우면 드러나는 민낯과도 같달까. 아이러니하게도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보여주려면 더 많은 공력이 들어간다.
미래의 가구 브랜드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스스로의 아이디어에 대해 신뢰하며,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방법을 찾고 또 믿길 바란다. 다른 사람의 관점보다는 스스로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그것이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설루션이 될 것이다.
2019년 몬타나의 컬러 팔레트와 이미지 컷 ⓒ Montana
언어 만들기
디자이너로 일해오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잘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본듯한 디자인인데… OO 회사 디자인이랑 비슷하군. 독창적이고 유니크한 무언가가 없을까.’ 디자이너라면 수도 없이 듣게 되는 말이다. 그만큼 독창성을 갖고 다르게, 차별화되도록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한 일이 아니다.
‘디자인 언어(design language)’라 부르는 그 힘은 꽤나 강력하다. 예를 들어 ‘애플 Apple’ 사의 제품에 대해선 대부분 ‘깔끔하고 깨끗하며 차갑다. 얄미울 정로도 잘 정리되어 있고 군더더기가 없다’는 정도의 공통된 의견을 말할 것이다. 이 이미지는 단일 제품뿐 아니라 패키지, 매장 디스플레이, 직원의 유니폼, 웹사이트까지 모든 곳에 같은 맥락으로 보임으로 비로소 하나의 브랜드 언어를 확립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일관된 이야기를 할 때 그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바로 디자인 언어의 힘이다. 이는 회사의 이미지와 직결되고 수익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오늘날 수많은 브랜드들이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다.
이번 토크 세션을 함께한 덴마크의 가구 브랜드 몬타나는 자신들만의 디자인 언어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영리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특히 ‘Made by you’나 ‘Make a room for personality’ 등의 콘셉트로 소비자와 공감대를 만들어가며 그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브랜드로서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독창적 언어의 필요성은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연 ’나’라는 브랜드는 어떤 ‘언어’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남들과 별다를 것 없는 비슷비슷한 언어인지, 조금 다르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모습인지, 혹은 너무 독특해서 고된 일상인지. 아마 우리 각자의 이야기는 모두 천차만별일 것이다. 물론 그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다.
누가 달팽이를 보고 너무 느리다고 비난할 것이며, 토끼를 보고 너무 빠르다고 손가락질할 것인가. 모두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 즉 언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스스로의 언어를 만들고자 오늘도 고군분투하는지 모른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바람직한 투쟁이다. 그 과정 중에 이미 우리는 성장하고 있을 테니까.
글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 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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