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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토리⨉디자인] 2020년 우리는 왜 다시 후드티를 입나

2020-05-30

누가 뭐라 해도 후드티(Hoodie)는 이제 가장 트렌디한 머스트해브 아이템(must-have item)으로, 옷장에 한두 장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현대 패션의 한 가운데로 들어온 패션 품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막대한 글로벌 공급망과 매출 타격에도 불구하고 패션업계의 전반은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이 주류 패션 시장을 이끄는 가장 큰 성장 동력 역할이 될 전망이다. 이 같은 트렌드 속에서 미국 후드티의 원조 제조사 챔피언(Champion)은 작고 독특한 헤리티지 브랜드를 선호하는 MZ 세대 소비자들의 취향에 힘입어 스트리트웨어 유행과 함께 제2의 황금기를 맞고 있고, 헤리티지 브랜드 필라(FILA)는 지난 2016~18년 사이 후드티 매출이 200% 이상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왼쪽) 후드티, 드디어 럭셔리 하이패션 대열에 진입하다! 베트멍(Vetements)의 Ready To Wear Fall/Winter 2016 컬렉션. Photo: Gio Staiano (오른쪽)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구찌를 위해 디자인한 ‘크루즈(Cruise)’ 컬렉션 중에서. 2017년. Courtesy: Gucci Historical Archive. Photo: Johannes Schwartz

 


후드티는 이제 과거 어두운 골목길 부랑아들의 제복이나 집에서 뒹굴 때나 입는 홈 라운지웨어라는 오명을 털고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준비 중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사회봉쇄와 재택근무의 일상화에 힘입어서 시크한 외출복 겸 캐주얼 업무 복장으로 탈바꿈하며, 한때 하위 청년문화에서 출발한 ‘컬트(cult)’ 의류에서 오늘날 일-생활-여가를 가로지르며 애용되는 전천후 의류이자 명품 패션의 영감적 원천으로 변신하고 있다.

 


유럽 중세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후드 모자가 달린 웃옷을 입었다. 렘브란트의 회화 작품 <프란체스코회 수도승복을 입은 화가의 아들 티투스>, 1660년. Courtesy: Rijksmuseum

 

프랑스 화가 플뢰리 프랑소아 리샤르(Fleury François Richard)의 회화 작품 <빨간 두건(Le Petit Chaperon Rouge)>, 1820년 경. Courtesy: Louvre

 

 

그러한 후드티가 어떤 곳에서는 MZ 세대 젊은이들은 물론 청춘의 활기와 청년문화를 통해 청춘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 중장년 소비자들 사이에서 각광받는 인기 아이템 취급을 받는 사이, 또 다른 곳에서는 도덕적 해이와 공황의 상징이란 이유로 착용이 금지되거나 더 나아가 언론에 의해 사회 불평등, 일탈, 범죄의 표상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논란의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학생들이 후드티를 입고 등하교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미국 일부 주에서도 그 악명 높은 2012년 트레이본 마틴 사건 이후로 공공장소에서 후드티와 마스크 착용이 금지됐다. 후드티가 깡패집단, 폭력, 범죄를 연상시켜 보는 이에게 불필요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유발한다는 것이 이유다.

 

Aitor Throup ‘Ganesh Hoody - 축구장 훌리건이 힌두신이 될 때’ 2008년. Raf Simons, Autumn/Winter 2004. Courtesy: David Casavant Archive. Photo Johannes Schwartz

 

사회 비주류 이방인을 위한 비상 주거 및 의복으로서의 후드티 콘셉트. 2인조 설치미술가의 난민을 위한 의복 프로젝트. Lucy + Jorge Orta - Refuge Wear Intervention, London East End 1998. Photo: John Akehurst

 

 

그러고 보니 후드티가 탄생한지는 벌써 약 한 세기가 가까이 됐다. 그리고 그 출발은 지극히 건전하고 기능적인 용도와 의도에서 비롯됐다. 1920년대에 미국의 의류 제조업체 챔피언(Champion, 전신: 니코보코 니팅 컴퍼니)은 일반 스웨트셔츠에 동일 소재의 모자를 단 후드티(hooded sweatshirt) 디자인을 처음 개발했다. 상체는 물론 머리까지 감쌀 수 있어 체온 보존력이 좋은 후드티는 얼마 가지 않아 밤 시간이나 야외 작업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즐겨 입는 작업복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그런 이유로 후드티는 고된 작업과 노동자와 동일시됐다. 이어서 스포츠 의류업체인 러셀 애슬레틱(Russel Atheletics) 사가 운동선수들이 연습하거나 휴식할 때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착용감이 편안한 저지 원단을 이용해 만든 스포츠 후드티가 상업적 성공을 이뤘다.

 

런던에서 트레이닝하는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모습. Photo: Daily Mail

 

 

이에 힙입어 투지의 스포츠맨, 각고의 노력, 승리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후드티와 결부되어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대중문화에서 그 같은 대표적인 예는 영화 <록키>에 잘 나타나 있다. 투지의 권투선수 주인공 록키 발보아가 매일 아침 조깅하고, 도축장 고기를 샌드백 삼아 펀칭 훈련을 하고 챔피언이 될 승리의 그날을 꿈꾸며 오르내리던 그 유명한 필라델피아 미술관 입구 ‘록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입었던 회색 운동복도 다름 아닌 후드티였다.

 

후드티 또는 ‘후디(hoodie)’가 주류 인기 패션 아이템으로 우뚝 서기까지, 지난 약 한 세기를 거치며 시대와 배경에 따라 다양한 기능과 사회문화적 표상이 됐다. 후드티가 유독 젊은이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려온 의류 품목이란 점에 착안해 볼 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관심 많은 주제들-예를 들어, 대중음악, 주변 문화, 전통과 보수에 대한 저항심과 반항-과 성장 통과의례 문화와 필히 결부된다.

 

미국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거리 낙서화가 리스키(Risky)의 모습. Photo: Rob Yaskovic

 


사회문제가 많고 높은 범죄율로 악명 높던 미국의 대도시 도심 빈민 지역에서 폭발적 예술적 창조력과 반항적 청년문화가 만나 낙서화 운동(Graffiti movement)이 잉태했다. 일반인들의 이목, 특 히 경찰관들의 단속을 피해서 야심한 밤 시간을 틈타 도심 공공건물, 토목시설, 교통시설, 지하철과 버스 등에 낙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 대중 관객의 이목 집중과 공공시설 훼손이라는 아슬아슬한 ‘이탈적 창조’사이를 오가며 활동했던 거리의 ‘작가(writers)’ 혹은 낙서화가들은 후드티를 즐겨 입었다. 추운 밤과 새벽 시간에 작업하는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후드만 눌러쓰면 단속 경찰이 쉽게 알아볼 수 없도록 얼굴을 가릴 수 있다.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 스웨터 드레스 Sweater dress, c.1990. Collection of the Modemuseum Hasselt. Bag Carrier Cap, 1900-1940. Collection of the Museum Rotterdam. Cream-coloured hood, 1950-1970. Collection of the Museum Rotterdam. The Hoodie, 2019. Photo: Johannes Schwartz 

 

현대 패션계의 ‘어둠의 신’으로 불리며 코스풍 글래머 스포츠 웨어에서 컬트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릭 오웬스(Rick Owens)의 ‘마스토돈(Mastodon)’ Autumn/Winter 2016 컬렉션 중. Photo: Johannes Schwartz

 

 

1980년대가 되자 도시 부랑아와 이민계 청년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힙합 음악이 주류 대중음악 시장으로 본격 집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힙합 뮤지션과 브레이크 댄서들이 즐겨 잆었던 스웨트셔츠와 후드티도 함께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카테고리를 형성하며 주류 패션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후드티는 청소년과 젊은 소비자들을 물론 여성들도 널리 입는 시크한 새 패션 유행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로 약 20여 년 지속된 경제 호황, 중산층 및 초부유층 소비층 증가, 럭셔리 취향 가속화로 후드티의 인기는 한동안 사그라들었다. 힙합 팬, 범죄 집단, 도시 부랑아, 또 공포영화나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부정적 이미지. 미국에서는 후드티 차림을 했단 이유로 총격을 당한 트레이본 마틴 사건으로 후드티는 지나치게 정치화됐던 것이 사실이다.

 

데반 시모야마(Devan Shimoyama)의 트레이본 마틴의 생일을 제목으로 한 ‘February II’ 후디 디자인. 2019년. Photo: Johannes Schwartz

 

 

 

2008~9년 국제금융위기, 노동시장 불안정, 높은 물가와 경제 저성장을 목격하며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소비자에게 후드티는 왠지 모를 포근함과 위안을 준다. 예컨대 챔피온 스웨트셔츠가 자랑하는 리버스 위브(Reverse Weave®) 원단처럼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원단 후드티는 입는 자의 몸과 머리를 차가운 바깥세상으로부터 감싸준다. 머리에 후드를 뒤집어쓰는 순간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외부세상과 잠시 단절하고 나만의 보호막 속으로 도피할 수 있다. 도처의 감시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로부터 일거수일투족 관찰 당하는 감시 문화와 안면인식 기술이라는 갑갑한 현실 속 현대인에게 후드티는 다소나마 ‘익명’을 행사할 권리와 자유를 뜻하기도 한다.

 


(왼쪽) 뉴욕 근대미술관(MoMA)의 디자인 전시회 ‘Items: Is Fashion Modern?’(2017년 10월 1일~2018년 1월 28일)에서 현대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일상 속의 ‘소박하지만 위대한 패션 아이템’으로 채택됐다. (오른쪽) 후드를 쓰고 있는 한 바깥세상의 혼돈과 감시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후드티. 미국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흑인 사진예술가 존 에드먼즈(John Edmonds)의 <무제(후드 13번) Untitled (Hood 13)>, 2018년

 

 

21세기가 막을 연지 20년이 지난 지금, 1990년대에 대한 레트로 트렌드와 무의식 깊이 잠자고 있던 자유의 욕망을 타고 다시 한번 후드티가 패션계를 강타하고 있다. 세상만사가 디지털화된 지금 21세기 환경 속에서 후드티는 어떤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24시간 유비쿼터스 감시 문화, 안면인식 기술, 남녀 간 의류의 성별과 복장 규칙 파괴가 현대 디지털 사회 속에서 중대한 쟁점을 영감 삼아 세계적 창조계-패션 디자이너, 미술가, 사진가, 영화감독 등-는 후드티를 급진적인 문화적 표상으로 해석하고 실험적 디자인 제시에 한창이다. “예술이 인생을 모방하 보다는 인생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영국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던가. 21세기 소비자들은 예술적 해석과 개입이 가미된, 한결 창조적이고 파격적인 후드티 디자인이 출시될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모델 아둣 아케시(Adut Akech)가 입은 발렌시아가 후디 디자인. <i-D’> 매거진 2018년 가을 Earthwise Issue 특별호. Photo: Campbell Addy. Styling: Alastair McKimm

 


글_ 박진아 객원편집위원(jina@jinapark.net)
일부 자료 제공: 네덜란드 로텔담의 뉴인스티튜트(Het Nieuwe Instituut) 박물관의 ‘후디(The Hoodie)’전, 2019. 12. 1~ 20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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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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