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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광대가 말레이시아 저항의 아이콘이 된 사연

2020-06-29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의 집(La Casa De Papel)>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스릴 넘치는 전개로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8명의 범죄자와 교수라고 불리는 한 명의 천재가 모여 스페인 조폐국을 터는 이 드라마는 이야기 자체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단순히 돈이 목적이 아니라 부당함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라는 대의에 시청자들이 공감하면서 인기를 끌게 됐다. 

 

하지만 드라마의 인기와 별개로 화제가 된 것은 <종이의 집> 주인공들이 착용하는 달리 가면이었다. 스페인 예술가 달리의 얼굴을 한 이 가면은 전 세계 집회와 시위에 등장하며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됐다. 

 

파흐미 레자의 ‘광대 모습을 한 나집 전 총리’
예술가 달리를 형상화한 마스크가 저항의 상징으로 쓰였다면 말레이시아에서는 광대 얼굴을 정치부패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사용했다. 그동안에도 많은 말레이시아 예술가들이 정치인을 풍자해왔지만 광대 얼굴이 유명세를 치르게 된 것은 파흐미 레자(Fahmi Reza) 때문이다. 

 

2016년 파흐미 레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새하얀 얼굴에 새빨간 입술의 광대 분장을 한 나집 라작 전 총리의 이미지를 올렸다.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나집 전 총리는 2009년 국영투자회사 1MDB를 설립해 측근과 45억 달러(약 5조 4천700억 원)를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파흐미 레자는 부패한 정치인을 비난하기 위해 작품을 공개했고, 그는 1998년 커뮤니케이션 및 멀티미디어법을 어긴 혐의로 체포됐다. 

 

하지만 오히려 이 사건으로 파흐미 레자의 광대 그림은 화제를 모았고, 말레이시아인들은 광대재판(#clowntrial)이라는 해시태그를 공유하며 재판을 조롱하기에 이르렀다. 파흐미 레자가 혐의에서 벗어나면서 광대 모습을 한 정치인의 이미지가 포스터와 벽화, 티셔츠 등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광대 모습을 한 파흐미 레자 (사진출처: www.facebook.com/kuasasiswa)

 

 


광대의 얼굴을 한 나집 전 총리의 피규어 (사진출처: www.facebook.com/kuasasiswa)

 

 

‘우리는 모두 선동자다’
그래픽 디자이너 그룹 GRUPA는 나집 전 총리의 광대 이미지를 대중화 및 상품화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GRUPA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광대 얼굴을 한 나집 전 총리의 그림을 공유하며 ‘우리는 모두 선동자다’라는 의미의 해시태그(#KitaSemua Penghasut) 운동을 벌였다. 해시태그 운동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선동자다’라는 문구와 광대 얼굴을 한 나집 전 총리의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고 인증사진을 찍으면서 저항에 동참했다. 

 


티셔츠로 제작된 나집 전 총리의 광대 이미지 (사진출처: www.facebook.com/kitasemuapenghasut)

 

 

한때는 광대 이미지만으로 체포 혐의를 받았지만, 이제는 말레이시아 길거리에서도 광대 모습을 한 나집 전 총리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광대 이미지는 1MDB를 조사한 다큐멘터리 <The Kleptocrats>의 포스터에 등장하면서,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나집 라작 전 총리의 1MDB 스캔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The Kleptocrats>의 포스터 (사진출처: iwonder)

 

 

말레이시아 저항의 상징
말레이시아에서 광대 분장은 나집 전 총리만이 아니라 부패한 다른 정치가를 풍자하는 데에도 사용되면서 부패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고 있다. 2019년에는 림관응 재무부장관부터 마스즈리 마릭 교육부장관 등을 광대로 표현한 포스터가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에 배포됐으며, 포스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는 의미의 해시태그(#apasudahjadi)와 '일어나라, 말레이시아(Sedar Malaysia)‘라는 문구가 함께 적혀 있었다. 이러한 풍자는 맹목적으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측면도 있지만, 대중이 예술을 통해 사회참여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문화는 쉽게 변동되지 않는 보수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형성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예술계의 현실 참여는 바로 이러한 과정의 연속성 속에 놓여 있다.



말레이시아 정치인들을 광대로 풍자한 작품들 (사진출처: www.facebook.com/kuasasiswa)

 

 

글_ 홍성아 말레이시아 통신원(tjddk42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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