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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slightly out of focus” 카파의 신화를 확인하다.

2007-04-17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는 실감나는 전쟁 장면 연출로 유명하다. 비록 모두 조작된 영화 속 가상 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 옆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듯한 연출에, 영화를 보는 이들은 섬뜩해하며 몸서리를 쳤다.
로버트 카파의 사진은 생동감 넘치는 사실성으로 각광받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의 전쟁 장면조차 인위적이라고 평가하게끔 만든다. 생과 사를 가르는 전쟁 상황을 담은 사진의 미세한 떨림, “slightly out of focus”. 그의 작품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은 그, 카파의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보게 만든다. 상업주의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긴박감과 절박함. 카파의 사진 작품은 늘 목숨을 담보로 얻어낸 순간들의 포착이었고, 그렇게 때문에 그의 사진들은 세상에 대한 세인들의 시각을 바꿔놓을 만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취재 | 남궁경 기자 ( knamkung@jungle.co.kr)

세계 최고의 사진작가 그룹인 매그넘의 창시자, 투철한 기자정신을 의미하는 ‘카파이즘’이라는 용어의 주인공인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작품 140여 점이 한국을 찾았다. 2007년 3월 29일부터 5월 26일까지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포토저널리즘의 신화 <로버트카파> ”전이 열리는 것.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던 포토저널리즘 매체 ‘라이프지’의 폐간소식과 비슷한 시기에 맞물린 이번 전시회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회환과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정밀 위성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쉽게 확산되는 이 시기에 여전히 포토저널리즘은 유효한가. 로버트 카파전은 이 질문에 대한 이성적인 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해도, 포토저널리즘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정성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41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고 간 로버트 카파는 20세기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며 이 시기에 대한 불멸의 사진작품들을 남겼다. 스페인 내전 중에 ‘병사의 죽음’을 촬영하여 일약 유명한 존재로 등장한 카파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미국, 영국, 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최전선에서 전쟁의 역사와 상처를 담았다.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촬영을 하다가 지뢰를 밟아 생을 마감했다. 작품을 통해 사실성, 현장성, 직접성이라는 사진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다.”는 말을 남기는 등 포토저널리즘의 방향을 제시했다.

매그넘이 제공한 작품들로 이루어지는 이번 전시는 20세기 가장 대표적 전쟁 기록 사진으로 평가되는 “쓰러지는 병사”를 비롯, 세계역사적 상황을 리얼하게 담아낸 작품들을 통해 보도사진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대규모 특별전이다. 방대한 사진 중에서도 엄선된 약 140점이 네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전시된다.


카파가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촬영한 ‘병사의 죽음’ 사진이었다. 카파는 참호에서 뛰쳐나와 총을 든 채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공화군의 병사, 페데리코 갈시아의 죽음을 촬영했다. 카파의 ‘병사의 죽음’은 뷰 지에 실렸고 ‘그의 머리에 총알이 관통하여 쓰러지는 순간의 공화군의 한 병사’라는 설명으로 라이프 지에 소개되었다. 공화주의 희생의 강한 상징이 된 비극적인 죽음의 사진은 너무나 생생하여 전쟁사진 가운데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와 함께 스페인내전을 다룬 불후의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카파는 포토저널리즘의 길을 숙명으로 받아들였으며, 아프리카, 이탈리아, 노르망디 상륙작전, 파리해방과 수많은 전쟁사진을 촬영했다. 전쟁이 미화되는 것을 공격하고 경계해온 카파지만 정작 자신은 전쟁 없이 살 수 없었다. 그는 ‘삶과 죽음이 반반씩이라면 나는 다시 낙하산을 뛰어내려 사진을 찍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카파이즘의 신화로 남은 전쟁사진 ‘D-day’,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성공할지도 실패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카파는 빗발치는 폭탄 속에서 떨 수밖에 없는 전율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미세한 떨림으로 포커스가 나간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은 전쟁의 복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프 지는 이 작품에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Slightly out of focus)” 라는 설명을 달았고, 이 말은 카파이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구로 기억되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와 시니컬한 미소로 보는 여성마다 마음을 빼앗겼다는 로버트 카파. 카파는 은막의 여왕 잉그리드 버그먼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당대 최고의 문인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과 깊은 친분을 나눴으며 파블로 피카소와 게리 쿠퍼와도 친분이 있었다. 카파가 찍은 이들의 사진은 카파의 또 다른 면, 자유로운 영혼과 로맨티스트로서의 면목을 엿보게 한다.
그러나 카파의 죽음은 그 어떤 최후보다도 장엄하고 비극적이었다. 카파에게는 다섯 번째 전쟁이었던 인도차이나전쟁에서 그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나가서 논에 있는 소대를 촬영했다. 그것이 그가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다. 그는 다른 각도에서 군인들을 찍으려고 도랑의 풀이 있는 경사를 기어오르다가 대인 지뢰를 밟았다. 로버트 카파는 한 손에 카메라를 꼭 쥐고 있었다. 그는 왼쪽 다리가 잘려나가고 흉부가 파열된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사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쟁을 진정으로 증오했던 종군 사진가, 카파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다가 탱크에 치어 죽음을 맞은 애인, 게르타처럼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았다. 한 여인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총각사진가, 카파는 불혹의 나이에 대인지뢰를 밟아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인도차이나전쟁에서 순직한 첫 번째 미국인 포토저널리스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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