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8
지방 골목에 독립책방, 커뮤니티 카페, 로컬 스테이 하나쯤 들어서면 마치 마법처럼 상권이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 지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소상공인 지원 정책은 이 낭만적인 상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 끝은 차갑고 조용했다. 예쁜 간판과 감성 마케팅으로는 지속 가능한 상권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고 있다.
지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소상공인 지원 정책은 이 낭만적인 상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 끝은 차갑고 조용했다.
‘로컬크리에이터’라는 단어는 한때 정부 정책의 키워드가 되었다. 저층 주거단지에 카페, 베이커리, 독립서점, 코워킹스페이스를 넣고 ‘새로운 골목’이 태어났다고 포장하는 일은 너무도 손쉽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어땠는가. 수요 없는 외곽 주택가에 억지로 상업 공간을 조성하면서,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공공 실험’의 실험쥐가 되었다. 사업 종료와 동시에 철수하거나 매각, 전환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지속 가능성’은 구호에만 존재했고, 현장은 철저히 소외됐다.
이 구조의 심각성은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의 쓰임새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6조 원에 육박하는 이 기금은 단순한 정부 예산이 아니다. 코로나 시기 폐업 위기에 몰렸던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대출을 받아가며 버텨낸 피땀 어린 자산이다. 대출 원리금을 아직도 매달 갚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기금은 ‘국가의 시혜’가 아닌, 자신이 낸 몫이다. 그런데 지금 이 소중한 자금은 누구의 손에 쥐어지고 있는가?
중소벤처기업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글로컬 상권 조성사업’은 수십억 원의 보조금을 들여 지역마다 하나의 앵커기업을 지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본사를 둔 외부 기획사라는 점이다. 해당 지역과 아무런 연고도 없이 낙하산처럼 내려온 그들은, ‘지역상권 활성화’라는 명분 아래 기획서를 쓰고, 디자인을 입히고, 컨설팅을 판매한다. 정작 그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은 “이 회사는 누구인가?”, “이 사업은 왜 이렇게 정해졌는가?”를 묻지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로컬크리에이터’라는 단어는 한때 정부 정책의 키워드가 되었다. 저층 주거단지에 카페, 베이커리, 독립서점, 코워킹스페이스를 넣고 ‘새로운 골목’이 태어났다고 포장하는 일은 너무도 손쉽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 사이 모든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고, 소상공인진흥기금은 ‘보조금 사냥꾼’들이 설계한 파이프라인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이들은 제안서를 기가 막히게 쓴다. 공공기관의 니즈를 꿰뚫고, 슬로건은 감성적으로 포장하며, 지역 언론과의 유착도 조용히 마련해 둔다. 결국 그들은 ‘지역 상권의 구세주’처럼 등장하지만, 실상은 지역에 상주하지 않고, 주민과 실질적인 협의 구조도 없으며, 그들의 이름도, 책임도 남지 않은 채 사업은 조용히 종료된다.
그리고 남는 것은 유령이 된 공간, 무용지물이 된 간판, 텅 빈 골목이다. 보고서는 성공사례로 포장되어 올라가지만, 그 안에서 생계를 걸고 일하던 상인들은 여전히 월세와 대출 이자에 허덕이고 있다. 공공기금은, 애초부터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자각만 더 선명해질 뿐이다.
로컬은 유행이 아니다. 사람과 관계, 시간과 생계가 얽혀 있는 현실이다. 로컬크리에이터가 ‘만병통치약’이라는 환상은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부와 관계 당국에 단호히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만들었는가?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 돈은 누구의 것인가?
형식적 공모와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외부 기획사를 선정해놓고, 정작 지역의 상인은 의견을 제시할 자격조차 없는 구조. 이 모든 과정을 방치하거나 부추긴 책임은 명백하다. ‘사업비는 이미 정해졌고, 절차는 마쳤다’는 식의 행정 편의주의와 불투명한 선정 구조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특히 기금의 본래 목적을 외면하고, 서울과 수도권의 업체들이 지방 상권을 ‘기획하고 소비하는’ 구조를 허용한 점은 공공성 훼손을 넘어선 구조적 배신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유령이 된 공간, 무용지물이 된 간판, 텅 빈 골목이다. 보고서는 성공사례로 포장되어 올라가지만, 그 안에서 생계를 걸고 일하던 상인들은 여전히 월세와 대출 이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다.
공공 기금의 본질을 훼손한 구조적 범죄에 가깝다.
그리고 그 피해는 이름 없이 사라진 자영업자와 지역 주민의 몫이 되었다.
이제라도 새로운 정부는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핫한 키워드’를 중심에 둔 공모형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의 삶과 경제, 현실 시장의 작동 원리를 바탕으로 한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실적 채우기용 공모사업, 보여주기식 공간 리뉴얼, 외부 전문가 중심의 전시행정은 소상공인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업의 소모품’으로 만드는 행위다.
로컬은 유행이 아니다. 사람과 관계, 시간과 생계가 얽혀 있는 현실이다. 로컬크리에이터가 ‘만병통치약’이라는 환상은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공공의 자금이 진짜 공공을 향할 수 있도록, 진짜 삶의 자리에서 쓰이도록, 지금 당장 정책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서는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주권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될 진짜 책임이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jsw0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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