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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정글 기획취재_ 을의 눈물, 에필로그] “침묵을 기록으로 바꾸다“ – 기획취재를 마무리하며

2025-09-28

이 시리즈는 거창한 폭로가 아니라, 현장에서 오래 묵은 한숨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첫 질문으로 출발했다. “디자인은 왜 여전히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가.” 1화의 프롤로그부터 7화의 ‘대표는 을 중의 을’까지, 계약 없는 시작, 기준 없는 심사, 무제한 수정, 책임 전가, 프리랜서의 무방비, 침묵의 내면화, 그리고 대표의 고립을 따라가며 업계의 비가시적 폭력을 드러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바꿀 언어와 제도도 비로소 잡힌다.

 

취재 내내 가장 크게 부딪힌 건 ‘선’이었다. 어디까지 협업의 불가피함이고 어디서부터 갑질인가. 우리는 세 가지 원칙으로 가늠했다.


① 기록 가능성(계약·이력·증빙이 있는가)
② 권력 비대칭(일방이 위험을 떠안는 구조인가)
③ 대가·책임의 명시성(문서로 분배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아니오”가 반복될 때, 그것을 구조 문제로 규정했다. 개인의 무례를 넘어서 제도의 결함으로 보려 했다.

 

시리즈가 남긴 가장 분명한 성과는 ‘언어’였다. “수정은 재작업이 아니라 재계약의 영역이다”, “심사위원도 평가받아야 한다”, “대표는 을 중의 을” 같은 문장들이 회의실과 메신저 창으로 옮겨 갔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기록은 변화 그 자체는 아니지만,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다. 몇몇 기관과 기업의 담당자들은 “안에서 바꾸고 싶었는데 외부 근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현장의 말이 제도 개선의 출발선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가 제안하는 최소한의 실천도 간단히 남긴다.


• 표준계약 의무화: 착수 전 서명, 수정의 정의·횟수·범위 명시, 범위 밖 재작업은 별도 계약.
• 심사 투명화: 위원 자격 공개, 이해충돌 신고, 평가지·총평 의무 제공, 사후 ‘역평가’ 반영.
• 피드백 문서화: ‘수정요청서’로 요구·근거·일정·비용을 기록, 말의 폭력을 기록의 절차로 대체.
• 프리랜서 안전망: 표준단가 가이드와 최소 착수금 권고, 분쟁조정 창구·사례 DB 구축.
• 디자인기업 대표들의 연대: 법무·회계 클리닉, 납기·원가 데이터의 집단 공유로 생존의 기준선 만들기.

 

<을의 눈물>은 여기서 쉼표를 찍는다. 그러나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제보와 사례, 적용기와 실패기를 모아 ‘개선의 매뉴얼’로 환원할 생각이다.

 

 

이 시리즈는 타인을 향한 지적이기만 하지 않다. 우리 역시 때로는 발주자였고, 무심코 “한 번만 더”를 말했던 당사자였다. 그래서 이 기록은 고발과 동시에 자기반성의 장부다. 업계를 지탱하는 주체들은 서로를 심판하는 명사가 아니라, 서로를 지지하는 동사여야 한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시리즈 기획취재를 총 7회로 마무리한다. 더 파고들 주제는 많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다음 폭로’보다 ‘적용과 확산’이라 판단했다. 각 조직이 표준계약을 도입하고, 심사 절차를 투명화하며, 수정요청서를 습관화하는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이름이 지워져도 남는 문장, 회의 시작 전 확인하는 체크리스트, “그건 관행이 아니라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그 모든 것이 업계를 지키는 가장 작은 안전망이다.

 

<을의 눈물>은 여기서 쉼표를 찍는다. 그러나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제보와 사례, 적용기와 실패기를 모아 ‘개선의 매뉴얼’로 환원할 생각이다. 침묵을 기록으로, 분노를 원칙으로, 원칙을 실천으로 바꾸는 일—이 모든 과정에 독자와 현장이 함께해 주길 바란다. 우리의 목적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디자인이 존중받고, 디자이너가 당당해지는 생태계. 그 미래를 위해 이번 일곱 차례의 기획취재를 마무리한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기획취재_ 정석원 편집주간 (jsw0224@gmail.com) / 최유진 편집장 (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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