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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칼럼] ‘마일리지‘에서 ‘마눌리지‘로_ 생활 속 포인트 제도의 새로운 발견

2025-10-02

얼마 전 SNS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마눌리지’. 한국원자력연구원 주한규 원장이 쓴 페이스북 글에서였다. 비 오는 날 동호회 주행이 취소되자, “오늘은 마눌리지나 적립하라”는 회장의 권고에 따라 아내와 저녁 식사를 했다는 짧은 글. 며칠 후 아내 생일을 앞두고 미리 축하 저녁을 함께하며 ‘마눌리지’가 상승했다는 유쾌한 표현이었다.

 

‘마눌리지’란 말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선다. 우리가 익히 아는 ‘마일리지’ 제도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관계 속에서의 배려와 보상을 재치 있게 풀어낸 언어유희다. 마일리지가 고객 충성도 프로그램이라면, 마눌리지는 ‘배우자 충성도 프로그램’이라 할 만하다. 일상의 관계 유지가 때로는 노동보다 더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현대사회에서, 이 단어는 소소한 진실을 담고 있다.


마일리지? 마눌리지?

 

마일리지는 원래 항공사에서 시작됐다. 이용 거리를 쌓아두었다가 보상으로 돌려받는 제도다. 지금은 금융, 유통, 통신, 문화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사용되는 ‘고객 보상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본질은 단순하다. “이용하면 쌓인다. 쌓인 만큼 혜택이 돌아온다.”

 

이 단순한 공식이 부부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어떨까? 함께 식사를 하고, 기념일을 챙기고,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나누는 것이 ‘마눌리지 적립’이다. 평소에 적립한 만큼 위기 상황에서 혜택을 얻는다. 대형사고(?)를 쳤을 때도, 평소 충실히 적립된 마눌리지가 있다면 면죄부가 주어진다.

 

결국 ‘마눌리지‘는 관계의 지속성을 위한 ‘보상 시스템’이다. 우리가 금융과 유통에서 소비자 충성도를 관리하듯, 가정이라는 더 치열한 현장에서도 충성도를 관리해야 한다는 역설적 메시지를 던진다.


디자인 관점에서 본 ‘마눌리지’

 

디자인은 언제나 ‘이용자 경험(UX)’을 중심에 둔다. 좋은 서비스 디자인은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족을 제공한다. ‘마눌리지‘가 바로 이런 UX의 ‘가정‘ 버전이다.

 

가령, 집안일을 나눠 하는 작은 행동도 마눌리지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일, 아이를 픽업하는 일, 또는 아내가 좋아하는 카페를 우연히 들러주는 일. 이러한 ‘디테일’이 쌓여 신뢰와 애정을 강화한다. 디자인적으로 본다면, 마눌리지는 ‘관계 유지의 사용자 경험’을 높이는 장치다.

 

더 나아가, ‘마눌리지‘는 단순히 부부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 친구, 동료 간에도 확장될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에 긍정적인 경험을 남기는 모든 행위는 ‘관계 마일리지’이자 ‘관계 자산’이다.

 

‘마눌리지‘는 단순히 부부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 친구, 동료 간에도 확장될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에 긍정적인 경험을 남기는 모든 행위는 ‘관계 마일리지’이자 ‘관계 자산’이다.

 


‘마눌리지‘의 사회적 함의

 

‘마눌리지‘라는 단어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재미있는 신조어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를 은유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위기 속에 있다. 결혼과 가정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부부 관계의 균열도 늘어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제도적 지원과 함께 ‘관계 관리의 언어’다. 마눌리지는 바로 그 언어다.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적립’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전달한다.

 

또한 이는 기업 차원에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기업이 고객과의 관계를 포인트로 관리하듯, 개인도 인간관계를 ‘보상적 구조’로 관리할 수 있다. 물론 사랑과 정을 숫자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쌓아두는 것’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마일리지’를 ‘마눌리지’로 쓰자

 

이쯤 되면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하게 된다. “내 삶의 ‘마눌리지‘는 얼마나 적립되어 있을까?”
마일리지는 쌓아도 기한이 지나면 소멸되곤 한다. ‘마눌리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과거에 적립을 많이 했어도, 지금 당장 신경 쓰지 않으면 금세 잔고가 바닥난다. 관계란 늘 현재 진행형의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적 관점에서 ‘마눌리지’는 단순한 농담을 넘어 관계 지속성을 위한 실질적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나아가 사회적 자본의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다. 기업의 포인트 제도가 고객 충성도를 높이듯, 일상의 ‘마눌리지‘는 관계의 충성도를 높인다.


관계를 디자인하는 지혜

 

‘마일리지’가 생활 곳곳에 파고든 것처럼, ‘마눌리지’ 역시 우리 일상에 파고들 자격이 충분하다. 매일 쌓이는 일상의 작은 배려와 즐거운 경험이 결국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경험을 구조화하는 행위다. ‘마눌리지‘는 바로 그 구조화의 좋은 은유다. “오늘 하루, 나는 ‘마눌리지‘를 얼마나 적립했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농담 같지만, 관계를 지속하는 데 꼭 필요한 자기 점검이다.

 

그러니 이제는 ‘마일리지’를 소비에만 쓰지 말고, ‘마눌리지’ 적립에도 활용하자. 그것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관계 디자인이자, 지속 가능한 사랑의 경영 방식일 것이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jsw0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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