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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칼럼] 정당 현수막 난립이 만든 시각공해 - ‘도시가 숨을 쉬게 만들어야’

2026-01-29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를 앞두고 정당과 후보자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 설치를 제한·금지하는 취지의 방침을 밝혔다.

 

선거 시기에 거리 곳곳에 난립하는 정치 현수막이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고, 시민의 생활 환경을 침해한다는 판단에서다.
이 결정은 단순한 선거 관리 차원의 조치가 아니다. 오랫동안 방치돼 왔던 ‘정치 현수막 공해’ 문제를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첫 공식 선언에 가깝다.

 

그동안 정당 현수막은 ‘정치적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무제한 허용돼 왔다.
도시 공간을 차지하고, 시야를 가리고, 불쾌감을 유발해도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이 행정의 일관된 답변이었다.

 

이번 선관위의 발표는 그 관행에 처음으로 제동을 건 사례다. 도시가 정치의 광고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이, 비로소 제도 언어로 표현된 것이다.


<정당 현수막은 정치 메시지이기 이전에 ‘도시 시각물’이다>

 

정당 현수막은 흔히 정치 문제로만 다뤄진다.
그러나 이 현수막은 동시에 도시 공간에 삽입되는 거대한 그래픽 요소이기도 하다.
색상, 문장, 위치, 반복 밀도, 시야 점유율까지 모두 도시의 시각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다.

 

문제는 이 요소들이 아무런 디자인 기준 없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색채는 과도하게 자극적이고, 문구는 공격적이며, 배치는 무질서하다.
가로등과 신호등, 인도 펜스, 교차로 난간에 무작위로 걸린 현수막들은 도시를 하나의 통합된 시각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 다른 외침이 충돌하는 혼란스러운 게시판으로 만들어버린다.

 

도시는 정보의 총량이 아니라 정보의 질과 배열로 평가받는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정당 현수막 풍경은 명백한 시각공해다.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설계의 문제이며, 공공디자인의 실패다.


<시민이 겪는 피해는 ‘정치적 불쾌감’만이 아니다>

 

정당 현수막이 시민에게 주는 피해는 단순한 감정 문제를 넘어선다.

 

첫째, 시야 방해와 안전 문제다.
교차로와 횡단보도 주변에 설치된 현수막은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특히 어린이 보호구역과 노약자 이동 경로에 설치된 현수막은 사고 위험을 높인다.

 

둘째, 도시 이미지 훼손이다.
도시는 관광객과 외부 방문자에게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된다.
거리 풍경은 그 도시의 성격을 말해준다.
그러나 정치 현수막이 난무하는 도시는 정돈된 공공 이미지 대신 혼란과 소음의 인상을 남긴다.

 

셋째, 시각 피로의 누적이다.
매일 출퇴근길과 산책길, 학교 앞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강한 문구와 대비색의 현수막은 도시를 ‘쉬는 공간’이 아니라 ‘계속 읽어야 하는 공간’으로 만든다.
이는 장기적으로 도시 생활의 질을 떨어뜨린다.

 

이 모든 피해는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시민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용한다. 정당 현수막 문제는 정치 갈등이 아니라 도시 환경의 문제다.

 

 


 

정당 현수막 문제는 단순한 시각 공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공공공간을 정치가 사유화한 결과이며, 시민의 일상과 공간을 매번 정치 광고판으로 만드는 구조적 부조리다.

 

 

<정당만 예외로 둔 제도가 문제의 근원이다>

 

이 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당 현수막만이 광고물 규제에서 사실상 예외로 취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일반 상점의 현수막은 허가와 함께 규격과 위치 제한을 받는다. 기업 광고는 심의와 그에 따른 비용을 치른다. 하지만 정당 현수막은 ‘정치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무제한 설치가 가능했다.

 

그 결과, 정당은 도시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는 유일한 주체가 되었고, 도시는 정치 메시지의 실험장이 되었다.

 

이번 선관위의 결정은 이 구조에 균열을 낸 첫 사례다.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이유로 시작되었지만, 그 효과는 도시 환경 전반에 미칠 수 있다.


<이제 논의를 ‘금지’가 아니라 ‘디자인’으로 옮길 때다>

 

정당 현수막 문제는 단순히 “없애자”로 끝나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어디에 표현할 것인가다.

 

대안은 충분히 존재한다.

 

첫째, 지정 게시대 중심의 표현 방식이다.
무작위 부착이 아니라,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형식으로만 게시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방식을 공공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둘째, 도시미관 기준의 도입이다.
현수막의 색상, 크기, 밀도, 위치는 도시 디자인 기준 안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정치 메시지라고 해서 시각적 무질서를 허용할 이유는 없다.

 

셋째, 디지털 및 비물리적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정당의 메시지는 거리의 천조각이 아니라 온라인과 미디어, 공식 플랫폼을 통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물리적 공간 점유는 최소화해야 한다. 정보 전달은 비공간적 방식으로 옮기는 것이 시대 흐름에 맞다.


<정치가 도시를 존중할 때, 민주주의도 존중받는다>

 

도시는 늘 말을 하고 있다.
간판으로 말하고, 표지판으로 말하고, 벽과 거리의 풍경으로 말한다. 정당 현수막 역시 도시가 사용하는 언어 중 하나다.

 

문제는 지금 그 언어가 너무 크고, 너무 많고, 너무 무질서하다는 점이다.

 

이번 선관위의 결단은 그 언어를 다시 정돈할 수 있는 계기다. 정치가 도시를 점령하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스스로를 절제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을지를 지금 시험하고 있다.

 

도시는 정치의 확성기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그릇이 깨끗해야, 그 안의 말도 설득력을 가진다.

 

정당 현수막을 줄이는 일은 정치를 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도시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건강한 도시는 결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다.


<도시를 되찾고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일이 우선이다>

 

정당 현수막 문제는 단순한 시각 공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공공공간을 정치가 사유화한 결과이며, 시민의 일상과 공간을 매번 정치 광고판으로 만드는 구조적 부조리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정당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나부끼는 풍경을 ‘정치적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름으로 공공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

 

도시 공간은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공공 자산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 자유가 도시를 침식하고 시민을 억압하는 방식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도시를 정치의 광고판으로부터 되찾는 일,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공공성 회복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길은 이미 선관위의 이번 조치와 함께 우리 앞에 열려 있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jsw0224@gmail.com)
사진출처_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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