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8
상하이에 도착했다. 어라운드트립이 주관하는 건축캠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스물다섯 명 남짓한 일행과 함께 시작된 첫 일정은 1000 Trees 공간 관람과 헤더윅 스튜디오 방문이었다.
그동안 세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유명 건축물을 찾아다니는 것은 나의 오래된 취미였다. 좋은 건물을 보고, 사진을 찍고, 그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는 일. 그러나 이번 경험은 분명히 달랐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으로 건축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1000 Trees’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것은 건물이라기보다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기둥 위에 얹힌 거대한 화분들, 그리고 그 위에 자라는 나무들. 반복되는 구조가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서 이 건물은 스스로를 설명한다. “나는 건물이 아니라 숲이다.” 도시 속에 자연을 끌어온 것이 아니라, 건물 자체를 자연처럼 작동하도록 만든 설계다.
이 프로젝트를 설계한 토마스 헤더윅은 건축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경험으로 다루는 디자이너다. 그의 작업은 늘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곧 형태가 된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독특해 보이지만 결코 장식적이지 않다. 오히려 매우 논리적이고 집요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기둥이었다. 대부분의 건축에서 기둥은 감춰지는 존재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전면에 등장한다. 구조는 장식이 되고, 장식은 다시 건물의 정체성이 된다. 동일한 모듈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은 곧 이 건물의 브랜드가 된다. 건축이 어떻게 도시의 아이덴티티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헤더윅 스튜디오 내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이었다. 화려하기보다는 실험실에 가까운 공간. 벽면을 따라 정리된 수많은 모형과 프로토타입, 아이디어의 흔적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건축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곳에서는 숨기지 않는다.
직원들의 작업 공간 역시 완성된 오피스라기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업 현장에 가까웠다. 노출된 천장, 길게 뻗은 조명, 자유롭게 배치된 테이블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 건축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직접 엿본 느낌이었다.
1000 Trees의 내부 공간은 외부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외관이 숲이라면, 내부는 전시에 가깝다. 벽면을 따라 구성된 박스형 구조는 단순한 인테리어를 넘어 하나의 큐레이션 장치처럼 작동한다. 빛이 스며드는 방식, 공간이 나뉘는 리듬, 그 안에 놓인 오브제들까지 모두가 의도된 연출이다. 이곳에서는 쇼핑이나 이동조차 하나의 경험이 된다. 건축이 콘텐츠가 되는 순간이다.
이번 일정에서 특히 의미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 건축가 김문덕 교수의 설명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저 독특한 형태로 보였던 것들이, 설명과 함께 하나의 논리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왜 이런 구조가 선택되었는지, 왜 이런 형태가 필요한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그제야 건축은 ‘보이는 것’에서 ‘읽히는 것’으로 바뀐다.
그동안의 여행이 좋은 건축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면, 이번 상하이 건축캠프는 건축을 이해하는 경험이었다. 같은 공간을 보더라도, 누군가의 설명과 맥락이 더해지면 전혀 다른 차원의 감각이 열린다. 헤더윅의 건축은 특히 그렇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독특하지만, 그 안에는 도시와 인간에 대한 질문이 깊이 숨어 있다.
도시는 점점 비슷해지고, 건물은 점점 익명화된다. 그런 시대에 헤더윅은 묻는다. 왜 우리는 건축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건물로 답한다.
이번 상하이에서의 첫 경험은 분명했다.
“건축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얼굴이며, 경험의 무대이고,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는 하나의 언어다.”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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