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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칼럼] 민주주의에도 UX가 필요하다 – 선거공보물은 왜 이렇게 불친절한가

2026-05-27

이 많은 공보물 가운데 어떤 것이 시장 후보 것인지, 어떤 것이 구청장 후보 것인지, 어떤 것이 시의원인지, 구의원인지, 교육감 것인지 한눈에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한데 섞이기라도 하면 더 난감하다. 깨알 같은 글씨를 일일이 들여다보며 분류 작업부터 해야 한다.

 

 

선거철이 되면 우편함이 갑자기 묵직해진다.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광역비례대표, 기초비례대표, 교육감. 여기에 국회의원 보궐선거라도 겹치면 한 유권자가 받아보는 선거공보물은 30장을 훌쩍 넘는다.

 

식탁 위에 펼쳐놓으면 마치 잡지 더미 같다.

 

문제는 양이 아니다.
문제는 정보 구조다.

 

이 많은 공보물 가운데 어떤 것이 시장 후보 것인지, 어떤 것이 구청장 후보 것인지, 어떤 것이 시의원인지, 구의원인지, 교육감 것인지 한눈에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한데 섞이기라도 하면 더 난감하다. 깨알 같은 글씨를 일일이 들여다보며 분류 작업부터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축제라기보다, 정보 분류 노동에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공정성은 철저한데, 사용성은 왜 빠졌을까>

 

선거는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공보물의 크기, 종이 재질, 면수, 인쇄 방식, 기재 내용까지 매우 엄격하게 규정한다. 후보 간 자본력 경쟁을 막고 공정한 룰 안에서 경쟁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이는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빠져 있는 것이 있다.
유권자의 사용 경험(UX: User Experience)이다.

 

후보자 입장에서는 공보물이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는 홍보물이다.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수십 장의 비슷비슷한 인쇄물 속에서 자신이 실제 투표해야 할 후보 정보를 찾아야 하는 복잡한 정보 탐색물이 된다.

 

이건 전형적인 정보디자인 실패다.
개별 후보의 디자인은 존재하지만, 전체 시스템 디자인은 부재하다.

 

쉽게 말해 책은 잘 만들었는데 도서관의 분류 체계가 없는 셈이다.

 

<지방선거는 왜 더 복잡한가>

 

대통령선거는 비교적 단순하다. 선택지가 명확하고 후보 수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지방선거는 다르다.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비례대표, 교육감…. 선거 종류가 많고 구조도 복잡하다.

 

광역단체장 정도는 언론 노출이 많아 익숙하다. 하지만 구청장 후보, 시의원 후보, 구의원 후보, 비례대표 후보, 교육감 후보까지 모두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투표소에 들어가서도 “내가 찍으려던 사람이 몇 번이었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투표용지가 여러 장이면 혼란은 더 커진다.

 

기억을 더듬거나, 감으로 찍거나, 최악의 경우 ‘묻지마 투표’가 벌어진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가 이렇게 불친절한 시스템 속에서 소비되어도 괜찮은가.

 

<첫 번째 제안: 공보물에 ‘선거 종류 식별 박스’를 만들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공보물의 즉시 식별성이다.
모든 선거공보물의 좌측 상단 또는 우측 상단에 선관위가 정한 통일 규격의 식별 박스를 만들고, 그 안에 해당 선거의 명칭을 큰 글씨로 넣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서울특별시장선거]
[강남구청장선거]
[서울시의회의원선거]
[강남구의회의원선거]
[비례대표 서울시의회의원선거]
[비례대표 강남구의회의원선거]
[서울시교육감선거]

 

지금도 관련 정보는 공보물 어딘가에 적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정보가 존재하는 것과, 정보가 쉽게 인지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건 디자인 장식이 아니다.
정보 구조 설계다.
마치 도서관 책등에 붙은 분류 라벨처럼, 유권자가 공보물을 보는 순간 “이게 무엇인지” 즉시 알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색상이나 도형으로 구분하자는 아이디어도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색은 정당의 상징색과 겹칠 수 있고, 특정 도형은 후보자의 시각 아이덴티티와 충돌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공정한 방법은 통일된 위치, 통일된 규격, 통일된 정보 표기다.
공공디자인의 핵심은 ‘장식‘이 아니라 ‘기능‘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제안: 투표소 입구에 선거공보물을 다시 비치하자>

 

더 현실적인 제안도 있다.
투표 당일, 선관위가 공식 발송한 선거공보물을 유권자가 참고할 수 있는 방식이 가능한지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유권자가 투표소에서 받는 것은 오직 투표용지뿐이다.
후보 설명도 없고, 공약 안내도 없고, 참고 자료도 없다.
오직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유권자가 수십 장의 공보물을 완벽히 숙지하고 투표장에 가는 것은 어렵다. 특히 고령층이나 정보 접근이 어려운 유권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럴 바엔 각 세대에 이미 공식 발송한 선거공보물을 선거 종류별로 구분해 투표소 입구에 비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홍보물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이미 법적 절차에 따라 유권자에게 배포된 공식 자료를 다시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정성 문제도 상대적으로 적다.
오히려 이는 유권자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할 권리만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권리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도 사용자 친화적이어야 한다>

 

디자인은 흔히 ‘예쁘게 꾸미는 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공공디자인의 본질은 사람의 행동을 더 쉽게, 더 정확하게 만드는 시스템 설계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선거공보 시스템은 아직 덜 디자인되어 있다.
‘공정성‘은 충분히 고민했지만, ‘사용성‘은 부족하다.

 

민주주의의 절차가 공정한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시민이 그 절차를 쉽게 이해하고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공보물 귀퉁이의 작은 식별 박스 하나.
투표소 입구의 정리된 공보물 한 세트.

 

거창한 제도 개혁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디자인이 유권자의 한 표를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

 

이제 민주주의도 ‘사용자 경험’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글_ 정석원 편집인
사진자료_ X4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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