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리뷰

[디자인정글 이슈] 한글과 세종, 그리고 변기가 만나다 — 한글날 100주년 특별기획전 《한글과 세종, 그리고 변기 전》 추진

2026-08-08

세종대왕과 한글, 그리고 변기.
좀처럼 한 문장 안에서 만나기 어려운 세 가지 소재가 하나의 전시에서 만난다.

 

오는 2026년 10월 9일 한글날, 충북 음성 바스엑스포에서는 한글날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한글과 세종, 그리고 변기 전》이 개막될 예정이다.

 

내년 한글날까지 1년간 이어질 이번 전시는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을 문자와 역사에 한정하지 않고, 생활디자인과 위생문화, 다문화 소통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실험적인 디자인·문화 프로젝트다.

 

전시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세종은 세상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고, 우리는 사람을 위해 디자인을 생각한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한글’과 ‘변기’의 만남은 단순한 말장난이나 유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한글이 백성의 소통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였다면, 변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신체적 불편을 해결하는 생활도구다. 전시는 이 두 대상의 공통점을 ‘사람을 위한 디자인’에서 찾는다.

 

한글은 생각과 소통의 불편을 해결한 디자인이고, 변기는 신체와 생활의 불편을 해결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내년 한글날까지 1년간 이어질 이번 전시는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을 문자와 역사에 한정하지 않고, 생활디자인과 위생문화, 다문화 소통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실험적인 디자인·문화 프로젝트다.

 

 

<한글을 문자 아닌 ‘사용자 경험 디자인’으로 바라보다>

 

훈민정음은 오랫동안 문자학과 언어학의 영역에서 설명돼 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훈민정음을 오늘날의 디자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본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한글의 구조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발음기관의 형태를 본뜬 자음, 하늘·땅·사람의 원리를 담은 모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소리를 확장하는 체계는 단순히 아름다운 조형을 넘어 사용성과 확장성을 고려한 문자 시스템이다.

 

전시는 이를 근거로 세종대왕을 ‘최고의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로 해석한다.
세종은 글자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백성이 쉽게 배우고, 자신의 뜻을 표현하고, 일상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문자체계를 설계했다.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면 정보 접근성과 소통의 평등을 실현한 공공디자인에 가깝다.
이번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인 ‘세종은 최고의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였다’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 목적, 28자의 구성과 제자 원리, 발음기관을 본뜬 자음, 천·지·인의 철학을 담은 모음 등을 디자인 관점에서 소개한다.

 

한글을 단순히 과학적인 문자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자의 불편을 발견하고 해결한 사회적 디자인으로 재조명하는 것이다.

 

<훈민정음 언해본을 패러디한 ‘한글변기 서문’>

 

전시장 입구에는 훈민정음 언해본의 형식을 차용한 대형 족자가 설치된다.
족자에는 이번 전시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글변기 서문’이 게시될 예정이다.

 

“우리나라 변기가 서양과 달라 수세식과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용변하고 싶어도 불편을 호소하며 시원하게 누지 못하는 사람이 많도다.
내 이를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가지 한글변기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히고 날마다 쓰메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훈민정음 언해 서문의 구조와 어투를 빌려 변기와 생활의 문제를 연결한 패러디다.

 

‘나랏말싸미’로 시작하는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이 백성의 언어적 불편을 해결하는 데 있었다면, 이 패러디 서문은 인간의 가장 일상적이고 신체적인 불편을 해결하는 디자인의 필요성을 유머러스하게 제기한다.

 

다만 전시는 이 문구가 훈민정음의 역사적 가치를 희화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힐 예정이다.

 

족자 하단에는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과 세종의 애민정신을 오늘날의 생활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한 패러디 작품이라는 설명이 함께 표기된다.

 

이 서문은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와 음성 지역 외국인 주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언어로도 번역해 게시된다.

 

전시의 패러디가 한국인만 이해하는 언어유희에 머물지 않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함께 읽고 웃으며 의미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요강은 오늘날 우스갯소리나 옛 생활도구 정도로 인식되지만, 과거 한국인의 주거환경과 생활방식에 맞춰 발전한 대표적인 생활디자인이었다.

 

 

<스물여덟 글자가 스물여덟 개의 변기 디자인으로>

 

전시의 핵심 콘텐츠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음 17자와 모음 11자를 모티프로 한 28종의 ‘한글변기’다.

 

현대 한글에서 사용되는 기본 자음뿐 아니라 옛이응, 반시옷, 여린히읗, 아래아 등 현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옛 자모까지 포함한다.

 

전시는 한글 자모의 형태를 단순히 변기 외형에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 글자가 가진 조형적 특징과 상징을 변기의 기능과 연결한다.

 

예를 들어 ㄱ은 모서리 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코너형 변기, ㄴ은 어린이와 노약자를 위한 낮은 변기, ㅁ은 안정감과 공간 효율을 강조한 사각형 변기로 해석된다.

 

ㅅ은 물의 흐름과 배수를 상징하는 절수형 변기, ㅇ은 인체의 곡선과 편안함을 고려한 원형 변기, ㅎ은 공기 순환과 탈취 기능을 결합한 변기로 제안된다.

 

아래아 (ㆍ)는 물 한 방울의 형태와 의미를 살려 최소한의 물을 사용하는 친환경 변기로 디자인한다.

 

이처럼 한글변기는 자모의 외형을 장식적으로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의 형태와 의미를 기능으로 전환하는 디자인 실험이다.

 

28종 전체를 실물로 제작하기보다는 대표 디자인은 모형이나 시제품으로 구현하고, 나머지는 렌더링 이미지, 그래픽, 영상, AI 콘텐츠 등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각 작품의 명칭과 설명은 다국어로 제공해 외국인 관람객도 한글 자모의 형태와 발음, 디자인 기능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전시는 한글 자모의 형태를 단순히 변기 외형에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 글자가 가진 조형적 특징과 상징을 변기의 기능과 연결한다.

 

 

<‘요강‘을 한국의 생활디자인 유산으로 바라보다>

 

전시의 세 번째 섹션은 한국의 전통 변기인 ‘요강‘에 주목한다.

 

요강은 오늘날 우스갯소리나 옛 생활도구 정도로 인식되지만, 과거 한국인의 주거환경과 생활방식에 맞춰 발전한 대표적인 생활디자인이었다.

 

전통가옥의 측간은 대체로 집 밖에 있었고, 온돌 중심의 실내생활에서는 밤이나 겨울철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요강은 이러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방 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동식 위생도구였다. 어린이와 노약자, 환자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널리 사용됐다.

 

재료와 형태도 다양했다.
백자와 청화백자, 놋쇠, 질그릇 등 사용자의 신분과 경제력, 지역과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요강이 만들어졌다. 왕실과 양반가에서 사용한 요강은 실용적인 기능뿐 아니라 도자기와 금속공예의 미감까지 담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요강의 어원과 유래, 조선시대의 측간문화, 온돌방과 이동식 변기의 관계, 백자·놋쇠·질그릇 요강, 배설물의 수거와 농업적 활용 등을 소개한다.

 

요강을 단순히 낡고 불결한 과거의 물건이 아니라, 당시의 주거환경과 생활습관에 최적화된 한국형 생활디자인으로 다시 바라보자는 취지다.

 

전시에서는 인공지능과 결합한 건강관리 변기, 배설물을 분석해 질병 가능성을 확인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변기, 물을 적게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변기를 소개한다.

 

 

<변기는 한 사회의 문화와 기술을 보여준다>

 

변기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그 형태와 사용법은 모두 같지 않다.

 

세계의 변기문화는 각 지역의 기후와 주거형태, 종교와 위생관념, 물의 공급방식, 신체습관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왔다.

 

전시에서는 한국의 요강과 함께 중국의 야호와 마통, 일본의 오마루, 유럽의 체임버 포트, 아시아 각 지역의 전통 화장실 문화를 소개한다.

 

현대 수세식 변기의 등장과 보급, 좌식 변기와 양변기의 차이, 욕실과 화장실 공간의 변화, 변기의 산업화와 제품디자인도 함께 다룬다.

 

변기는 단순히 배설물을 처리하는 도구가 아니다.
한 사회의 기술 수준과 주거문화, 계급구조, 신체관, 위생관념을 보여주는 문화적 산물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음성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경험한 화장실과 위생문화를 직접 소개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세계의 변기문화를 먼 나라의 이색적인 풍습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음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생활문화로 제시한다.

 

외국인 주민들의 사진과 그림, 글, 영상, 인터뷰 자료는 전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수집해 ‘음성 세계 화장실 생활문화 아카이브’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욕실과 위생산업을 상징하는 타일 위에 다양한 국적의 주민 이름을 한글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음성 바스엑스포의 장소성과 전시의 다문화적 의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왜 서울이나 세종이 아니라 음성인가>

 

이번 특별전에서 변기만큼 중요한 주제는 개최지인 음성이다.

 

현재 음성 지역에는 약 4,000개의 공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약 2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와 그 가족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다.

 

공장과 산업단지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
시장과 학교, 병원과 약국, 공공기관, 거리와 주거지에서도 다양한 국적의 주민들이 한글을 통해 한국 사회와 관계를 맺는다.

 

이런 점에서 음성은 단순히 한글 관련 전시가 열리는 지방도시가 아니다.
한글이 실제 생활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소통도구로 작동하는 현장이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글은 문학이나 문화의 대상이기 전에 안전수칙을 이해하고, 작업 지시를 확인하고, 병원에서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며, 자녀의 학교생활을 돕기 위해 필요한 생활문자다.

 

따라서 한글의 세계화는 해외 대학에 한글학과를 만들거나 외국 도시에서 한글 행사를 여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곁에서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외국인 주민들이 한글을 쉽고 즐겁게 배우고, 자신의 이름과 생각, 문화를 한글로 표현하도록 돕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서울이나 세종이 아니라 음성에서 출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성은 산업과 농촌, 한국인과 외국인, 전통과 미래가 동시에 만나는 지역이다.

 

전시 주최측은 음성을 ‘한글의 세계적 확산을 실험하는 생활문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한다.

 

전시를 관통하는 문장도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한글의 세계화는 음성에서, 생활 속에서, 이웃과의 소통에서 시작된다.”

 

<외국인 주민에게 한글은 ‘세계의 생활문자’가 될 수 있을까>

 

전시의 다섯 번째 섹션은 ‘한글은 세계의 생활문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공간에서는 음성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들에게 한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명한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안전 관련 한글, 병원과 약국에서 필요한 표현, 시장과 대중교통에서 접하는 문자, 재난과 비상상황에서 필요한 안내, 자녀의 학교생활에서 만나는 한글 등이 주요 콘텐츠가 된다.

 

외국인 주민이 처음 배운 한글, 한글로 쓴 자신의 이름과 고향,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글의 형태와 아름다움도 전시된다.

 

외국인 노동자와 가족들의 인터뷰, 사진, 손글씨, 영상 등을 통해 한글이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기 위한 실질적인 도구라는 점을 보여준다.

 

전시는 한글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외국인 주민이 자신의 모국어와 한글을 함께 활용해 새로운 글자와 디자인을 만들고, 자신의 문화와 생활을 한국인에게 소개하는 상호교류의 장으로 구성한다.

 

한글이 세계문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언어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만나는 매개가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변기의 미래는 건강과 환경, 인간의 존엄에 있다>

 

마지막 섹션은 변기의 미래를 다룬다.
미래의 변기는 단순히 물을 내려 배설물을 처리하는 도구를 넘어 건강정보를 수집하고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시에서는 인공지능과 결합한 건강관리 변기, 배설물을 분석해 질병 가능성을 확인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변기, 물을 적게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변기를 소개한다.

 

노인을 위한 안전·보조 기능 변기, 어린이를 위한 성장형 변기, 장애인을 위한 유니버설디자인 변기, 공공화장실의 감염 예방 디자인도 주요 주제다.

 

산업도시 음성의 특성을 반영해 공장과 산업현장을 위한 안전·위생 화장실도 다룬다.
서로 다른 국적의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산업현장에서는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픽토그램과 다국어 안내, 작업복을 입은 상태에서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설계, 위생과 안전을 고려한 관리시스템이 중요하다.

 

이 밖에도 재난지역과 개발도상국을 위한 이동식 변기, 우주선과 우주기지의 화장실, 배설물을 자원과 에너지로 전환하는 순환형 화장실 등이 소개된다.

 

전시는 미래의 변기가 건강과 환경, 안전과 존엄을 지키는 중요한 생활 인프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줄 예정이다.

 

<전시를 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 참여형 프로그램>

 

《한글과 세종, 그리고 변기 전》은 관람형 전시뿐 아니라 어린이와 가족, 외국인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나만의 한글변기’에서는 관람객이 한글 자음과 모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변기를 직접 디자인한다.

 

자모의 형태를 고르고, 변기를 스케치한 뒤, 작품의 이름과 기능을 정해 설명문을 작성한다. 외국인 관람객은 자신의 이름에 들어 있는 한글 자모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스물여덟 개 한글변기 스탬프’는 전시장 곳곳의 28개 자모 디자인을 찾아 도장을 완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각 스탬프에는 자모의 소리와 형태를 여러 언어로 안내해 어린이와 외국인이 놀이를 통해 한글을 익힐 수 있도록 한다.

 

‘AI 한글변기 디자인’에서는 관람객이 원하는 한글 자모와 기능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새로운 변기 이미지를 생성한다.

 

예를 들어 ‘ㅁ을 활용해 노인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미래형 변기를 디자인하라’거나 ‘아래아를 활용해 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변기를 디자인하라’는 방식이다.

 

‘훈민정음 생활디자인 공방’에서는 변기에 한정하지 않고 의자와 우산, 식기, 가구, 안내표지판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한글의 형태와 철학으로 다시 디자인한다.

 

 

 

 

 

 

유머와 패러디에서 출발한 이번 전시가 한글과 변기의 낯선 만남을 넘어, 음성을 한글 세계화와 다문화 생활디자인의 새로운 실험도시로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_ 음성 바스엑스포)

 

 

<타일에 새기는 음성 사람들의 한글 이름>

 

이번 전시에서 주목되는 참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는 ‘내 이름을 한글로’다.

 

음성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가족들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고, 그 의미와 발음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는 모국어로 표기된 이름과 한글 이름을 나란히 기록하고, 이를 한글 타이포그래피 작품으로 만든다.

 

완성된 이름은 타일에 인쇄하거나 직접 표현해 ‘음성 사람들의 한글 이름’ 벽에 설치할 예정이다.

 

욕실과 위생산업을 상징하는 타일 위에 다양한 국적의 주민 이름을 한글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음성 바스엑스포의 장소성과 전시의 다문화적 의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한 사람의 이름을 한글로 정확하게 불러주는 것은 가장 작지만 구체적인 존중의 표현이다.

 

전시는 거대한 담론으로서의 한글 세계화보다, 이웃의 이름을 한글로 읽고 불러주는 일에서 세계화의 출발점을 찾는다.

 

<공장·병원·시장·화장실에서 배우는 생활한글>

 

‘음성 다문화 한글교실’은 외국인 주민과 가족이 일상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안전 관련 한글, 병원과 약국에서 필요한 표현, 시장과 교통수단에서 사용하는 말, 공공화장실과 위생시설의 안내문 등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가족 한글교실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는 한글을 문법과 받아쓰기 중심으로 가르치는 전통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실제 생활과 안전을 위한 소통도구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세종이 백성이 날마다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한글을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한글교육 역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결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시장 전체가 한 권의 현대판 훈민정음>

 

전시 연출은 훈민정음의 전통적 이미지와 현대 욕실문화의 시각언어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전시장 입구에는 훈민정음 언해본을 연상시키는 대형 족자를 설치하고, 한지와 백자, 목재를 활용한 전통 공간을 조성한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흰색 타일과 금속, 거울 등 현대 욕실의 재료를 적용한다.

 

한글 자모 형태의 전시대와 그래픽, 28개 한글변기 모형과 렌더링 이미지, 실제 요강과 세계 변기 관련 유물, 외국인 주민들의 인터뷰와 생활 기록, 여러 나라의 언어와 한글을 결합한 그래픽이 전시된다.

 

미래 변기 공간에서는 영상과 그래픽, AI 콘텐츠를 활용한다.

 

전시장 전체는 한 권의 현대판 훈민정음처럼 구성된다.
프롤로그에서 생활의 불편을 제기하고, 스물여덟 개의 한글변기라는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한 뒤, 한국과 세계의 변기문화를 지나 음성의 다문화 현실과 미래의 생활디자인으로 나아간다.

 

전시 안내문은 쉬운 한국어를 기본으로 하고, 영어와 음성 지역 외국인 주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언어를 병기한다.
전시의 내용뿐 아니라 전시를 전달하는 방법 자체가 세종의 사용자 중심 정신을 실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유머로 시작하지만 인간의 존엄으로 향하는 전시>

 

《한글과 세종, 그리고 변기 전》은 제목만 보면 다소 가볍고 유쾌한 전시로 보인다.
그러나 전시가 궁극적으로 다루는 것은 인간의 생활과 존엄이다.

 

언어를 알지 못해 자신의 뜻을 표현하지 못하는 일, 화장실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일, 문화와 신체조건의 차이 때문에 일상에서 불편을 겪는 일은 모두 인간의 존엄과 관계된 문제다.

 

한글은 누구나 말하고 기록할 권리를 확장한 디자인이었다.
좋은 변기는 누구나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용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이다.
두 디자인 모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전시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세종은 글자를 만들었다. 그 글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었다.
오늘 우리의 디자인도 사람을 향해야 한다.
한국인과 외국인,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위한 디자인은 시대를 넘어 이어진다>

 

《한글과 세종, 그리고 변기 전》은 단순히 변기에 관한 전시가 아니다.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과 존엄, 소통과 공존을 위한 디자인에 관한 전시다.

 

한글이 세상을 바꾸었듯이, 좋은 디자인은 우리의 일상을 바꾼다.
그리고 한글의 세계화는 먼 나라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음성에서, 이웃의 이름을 한글로 불러주는 일에서 시작된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면, 음성은 세계의 이웃과 한글을 나누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한글날 100주년을 맞는 오늘, 세종의 정신을 가장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유머와 패러디에서 출발한 이번 전시가 한글과 변기의 낯선 만남을 넘어, 음성을 한글 세계화와 다문화 생활디자인의 새로운 실험도시로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_ 정석원 편집인(jsw0224@gmail.com)
그림_ 세종이야기미술관

 

facebook twitter

#한글과세종그리고변기 #한글날백주년 #세종대왕 #훈민정음 #한글디자인 #음성바스엑스포 #한글변기 #유니버설디자인 #디자인정글이슈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