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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정글 공간다큐] 물방울은 남고, 화가의 시간은 집이 되었다 — 평창동 ‘김창열 화가의 집’

2026-08-15

평창동에 있는 ‘김창열 화가의 집’을 찾았다.
북한산 자락의 경사진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짙은 회색 돌과 노출된 콘크리트, 길게 뻗은 수평 지붕으로 이루어진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입구에 세워진 ‘KIM TSCHANG-YEUL 김창열 화가의 집’이라는 조형 문자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미술관인지 여전히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인지 잠시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처음부터 미술관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이 가족과 함께 살며 30여 년 동안 작업했던 집이자, 수많은 물방울이 태어난 아틀리에다. 한 예술가의 사적인 삶과 창작의 흔적이 집 안에 그대로 남아 있고, 이제 그 흔적을 일반 시민과 나누는 공공문화공간이 되었다.

 

유명 화가의 작품을 모아놓은 또 하나의 미술관이 아니라, 작품이 태어난 장소 자체를 보존하고 공개했다는 점에서 이곳은 특별하다.

 

 

 

 

 

이곳은 처음부터 미술관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이 가족과 함께 살며 30여 년 동안 작업했던 집이자, 수많은 물방울이 태어난 아틀리에다. 한 예술가의 사적인 삶과 창작의 흔적이 집 안에 그대로 남아 있고, 이제 그 흔적을 일반 시민과 나누는 공공문화공간이 되었다.

 

 

<화가가 건축가에게 부탁해 만든 집>

 

이 집의 시작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기간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김창열은 서울에 머물며 작업할 집을 짓기 위해 건축가 우규승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1988년 완공된 건물은 대지 638.3㎡, 연면적 459.57㎡ 규모로 지하 2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7년 한 차례 증축됐지만, 구조와 재료를 비롯한 초기 모습은 비교적 온전히 보존됐다.

 

우규승은 88서울올림픽 선수촌아파트와 환기미술관,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기숙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을 설계한 건축가다. 재료의 성질을 억지로 감추지 않고 공간과 자연, 빛과 사람의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건축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평창동 집에도 그의 건축적 태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건물을 평평한 땅 위에 하나의 덩어리로 세우지 않고 북한산 자락의 경사를 따라 여러 층으로 나누었다.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따라 내려갈수록 일상의 공간에서 창작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외부에서는 지상과 지하의 경계가 쉽게 읽히지 않지만, 내부를 걷다 보면 집이 산의 경사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건축가가 만든 것은 단순한 주택과 화실의 결합이 아니었다. 가족의 생활과 화가의 고독, 바깥 풍경과 내면의 세계가 서로 닿으면서도 충돌하지 않도록 설계한 ‘삶과 작업의 지형’이었다.

 

 

 

 

 

 

 

 

 

 

 

 

 

 

김창열이 사용했던 기다란 책상 위에는 붓과 벼루, 먹, 물감, 찻잔과 확대경, 노트와 책이 놓여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운 서가에는 미술서뿐 아니라 동양철학과 한문, 불교와 도가 관련 책들이 꽂혀 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배운 서예와 천자문은 훗날 문자 위에 물방울을 그린 ‘회귀’ 연작으로 이어졌다. 서가와 책상은 물방울과 문자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오랜 독서와 사유, 반복적인 수행 끝에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동굴 같은 작업실’>

 

이 집의 중심은 가장 아래쪽인 지하 2층의 작업실이다.

 

높은 층고의 작업실에는 일반적인 창문이 거의 없다. 대신 원형 천창과 인접 공간을 통해 빛이 간접적으로 스며든다. 김창열은 작업실에 외부의 빛을 직접 들이지 않고 ‘동굴 같은 곳에서 내면의 빛에 의지해 작업한다’는 취지로 자신의 작업 방식을 설명한 적이 있다.

 

입구에서 계단을 거듭 내려가야 도착할 수 있는 이 작업실은 실제로 세상과 단절된 수행자의 방처럼 느껴진다. 그는 이곳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냈고, 작업실 옆 작은 방의 침대에서 잠시 쉬었다. 외부의 풍경과 소음을 차단한 공간에서 그는 오히려 가장 투명하고 빛나는 물방울을 그렸다.

 

어둠 속에서 빛을 그렸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 역설이 김창열의 예술세계와 닮았다. 그의 물방울은 화면 위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손으로 만질 수 없고, 금방 흘러내릴 것 같지만 영원히 멈춰 있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에서 출발했지만, 마침내 비움과 정화의 이미지가 되었다.

 

 

 

예술가의 집을 보존한다는 것은 낡은 건물 하나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한 시대의 창작 방식과 생활문화, 사람과 장소의 관계를 미래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여기에 작품과 책, 기록과 도구를 모으고 전시·교육·연구 프로그램을 더하면 집은 멈춰 있는 기념관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라키비움이 된다.

 

 

<작품보다 먼저 화가의 손을 만나는 곳>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문 곳은 전시실보다 작업실이었다.

 

김창열이 사용했던 기다란 책상 위에는 붓과 벼루, 먹, 물감, 찻잔과 확대경, 노트와 책이 놓여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운 서가에는 미술서뿐 아니라 동양철학과 한문, 불교와 도가 관련 책들이 꽂혀 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배운 서예와 천자문은 훗날 문자 위에 물방울을 그린 ‘회귀’ 연작으로 이어졌다. 서가와 책상은 물방울과 문자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오랜 독서와 사유, 반복적인 수행 끝에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사용하던 이젤과 물감 상자, 붓이 꽂힌 통, 작업 중이거나 보관을 기다리는 캔버스와 액자들이 쌓여 있다. 벽난로와 낡은 의자, 손때 묻은 도구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잘 정돈된 미술관 전시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창작 이전의 풍경’이다.

 

작품만 보면 우리는 완성된 결과와 마주한다. 하지만 작업실을 보면 그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반복, 작가의 습관과 생활 리듬을 상상하게 된다. 화가가 어느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고, 어떤 빛 아래에서 붓을 들었으며, 작업을 멈춘 뒤 어디에서 차를 마셨는지가 작품의 일부로 다가온다.

 

이것이 예술가의 집을 보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작품은 미술관으로 옮길 수 있지만, 작품이 태어난 장소의 공기와 빛, 동선과 시간까지 옮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물건을 새것처럼 정리하거나 과도하게 연출하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다. 겹겹이 세워진 액자와 캔버스, 물감이 묻은 작업 도구, 책상 위의 자잘한 물건들은 ‘전시품’이 되기 이전에 화가의 일상을 구성하던 사물이었다. 이 집은 그 사물들의 질서를 보존함으로써 김창열이라는 사람을 보여준다.

 

 

<사적인 집이 공공의 문화자산이 되기까지>

 

김창열은 생전에 자신의 작업실을 시민에게 공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 종로구와 작가·가족 측이 문화시설 조성을 위한 협약을 맺었고, 김창열이 2021년 세상을 떠난 뒤 종로구는 2022년 3월 자택을 매입했다.

 

2023년 5월 이 집은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제13호로 등록됐다. 한 예술가가 마지막까지 생활하며 작업했던 역사적 흔적, 우규승의 건축적 가치, 북한산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경관적 가치가 함께 인정된 결과다. 

 

우수건축자산은 건물을 과거의 상태로 박제하는 문화재 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가치 있는 건축을 보존하면서 오늘의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돕는 제도다. 그런 의미에서 ‘김창열 화가의 집’은 보존과 활용을 함께 실험하는 적절한 사례다.

 

2024년에는 공간의 정체성을 담은 MI 개발과 세부 설계가 진행됐고, 같은 해 12월 대수선 공사가 시작됐다. 공사에 앞서 건물 전체를 3차원으로 기록하고 가구와 물건의 위치까지 조사했다. 공공시설에 필요한 안전과 관람 기능을 보완하되, 작가가 생활하고 작업하던 공간의 원형을 최대한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2026년 3월 공간 조성을 마친 뒤 5월 28일 개관식을 열었고, 5월 29일부터 시민에게 공개됐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개인의 집이 6년에 걸친 협약과 매입, 건축자산 등록, 기록화와 복원 과정을 거쳐 공공의 집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붓이 놓인 책상과 빼곡한 서가, 어두운 작업실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 수십 년의 시간을 견딘 벽과 계단이었다. 화가는 떠났지만 그가 사유하고 창작하던 방식은 집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은 이제 한 개인의 소유를 넘어 모두의 문화적 기억이 되었다.

 

 

<제주에서 평창동으로 이어진 건축적 인연>

 

이 집을 공공문화공간으로 바꾸는 대수선 설계는 ‘플랫폼아키텍츠’의 최수연·홍재승 건축가가 맡았다. 두 건축가는 2016년 개관한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을 설계한 인연이 있다.

 

제주의 미술관이 김창열의 작품세계를 건축적으로 해석해 새로 지은 공간이라면, 평창동의 집은 이미 존재하는 화가의 삶을 읽고 보존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새 건축보다 더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건축가의 표현을 앞세우기보다 원래 건축과 화가의 흔적이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수선 이후 1층에는 두 개의 기획전시실이 마련됐고, 기존 생활공간이던 2층에는 매표소와 카페가 들어섰다. 지하 작업실은 생전 모습에 가깝게 복원됐다. 새로 필요한 기능은 더했지만 집의 핵심인 경사진 동선과 원형 천창, 작업실의 깊이와 빛은 유지했다.

 

특히 모든 물건을 새것처럼 정리하거나 과도하게 연출하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다. 겹겹이 세워진 액자와 캔버스, 물감이 묻은 작업 도구, 책상 위의 자잘한 물건들은 ‘전시품’이 되기 이전에 화가의 일상을 구성하던 사물이었다. 이 집은 그 사물들의 질서를 보존함으로써 김창열이라는 사람을 보여준다.

 

 

 

 

 

 

 

 

 

 

 

 

 

문화는 거대한 건축물을 새로 세우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사람과 공간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오래 살아 있게 만드는 일에서도 시작된다.

 

<개관전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

 

개관전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은 2026년 5월 29일부터 8월 23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김창열의 예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한지와 종이 작업에 주목한다. 회화 19점, 판화 4점, 드로잉 1점 등 모두 24점으로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변화를 보여준다. 대표 연작인 ‘물방울’과 ‘회귀’의 밑작업과 완성작,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종이 판화도 함께 소개한다.

 

종로구가 소장하고 관리하게 된 작품과 기록 자료는 2,600여 점에 이른다. 따라서 이곳의 역할은 한 차례의 기념 전시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면서, 작가의 책과 문서·사진·영상·생활 유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브이며, 연구와 교육, 휴식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창열 화가의 집’은 미술관이라기보다 라키비움에 가깝다. 라이브러리와 아카이브, 뮤지엄이 한 예술가의 집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창열은 생전에 자신의 작업실을 시민에게 공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예술가의 집은 또 하나의 작품이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예술가가 살았던 집과 작업실이 도시의 중요한 문화자산이 된 사례를 자주 만난다. 렘브란트의 집, 모네의 지베르니, 루벤스의 집, 마그리트의 집처럼 한 사람의 생활공간은 작품 못지않게 강력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람들은 그림만 보기 위해 그곳을 찾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가 바라본 창문과 걸었던 계단, 손때 묻은 책상과 정원을 통해 작품의 배경이 된 삶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다.

 

우리나라에도 화가와 조각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살고 작업했던 집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사라지거나, 부동산 가치에 밀려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작품은 수집하면서도 작품을 낳은 공간은 쉽게 허물어버린다.

 

예술가의 집을 보존한다는 것은 낡은 건물 하나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한 시대의 창작 방식과 생활문화, 사람과 장소의 관계를 미래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여기에 작품과 책, 기록과 도구를 모으고 전시·교육·연구 프로그램을 더하면 집은 멈춰 있는 기념관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라키비움이 된다. 

 

문화는 거대한 건축물을 새로 세우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사람과 공간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오래 살아 있게 만드는 일에서도 시작된다.

 

오늘 김창열의 작업실에서 본 것은 물방울 그림만이 아니었다.

 

붓이 놓인 책상과 빼곡한 서가, 어두운 작업실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 수십 년의 시간을 견딘 벽과 계단이었다. 화가는 떠났지만 그가 사유하고 창작하던 방식은 집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은 이제 한 개인의 소유를 넘어 모두의 문화적 기억이 되었다.

 

물방울은 캔버스에 남았고, 화가의 시간은 집이 되었다.

 

‘김창열 화가의 집’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예술가들이 남긴 삶의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하고, 다음 세대의 문화로 이어갈 것인가.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인(jsw0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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