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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칼럼] 네팔의 ‘민트색 집’이 디자이너에게 던지는 질문 — ‘보이는 것을 디자인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디자인할 것인가’

2026-08-31

얼마 전 네팔 대홍수 영상을 보다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거대한 흙탕물이 마을을 덮치고 집과 자동차, 온갖 것들을 휩쓸어가는데 그 한가운데 민트색 2층집 한 채가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더 가슴 졸이게 만든 것은 그 집 2층 발코니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도망갈 곳도 없이 가족들은 사방을 휩쓰는 물살을 바라보고 있었고, 영상을 보는 필자도 제발 저 집만은 버텨주기를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보게 됐다.

 

다행히 집은 버텼고 가족들도 살아남은 것으로 보도됐다. 홍수가 지나간 뒤의 모습은 더욱 놀라웠다. 주변은 진흙과 잔해로 뒤덮이고 많은 건물이 무너졌는데 ‘민트색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이 집은 어떻게 지었기에 저 엄청난 홍수를 견뎠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아직 이 집이 살아남은 정확한 구조적 이유가 공식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영상만 보고 특정 공법이나 구조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장면은 디자이너에게 꽤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디자인하고 있는가?

 

<재난 앞에서 드러나는 ‘보이지 않는 디자인’>

 

우리는 건물을 볼 때 가장 먼저 외관을 본다. 색과 형태를 보고, 간판을 보고, 인테리어와 가구를 본다. 공간 디자이너 역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공간의 콘셉트와 동선, 재료, 색채, 조명, 사인 등을 고민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홍수와 지진, 화재 같은 재난이 닥치는 순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때 건물을 지키는 것은 멋진 외관이나 세련된 인테리어가 아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기초와 기둥, 보와 접합부, 재료와 시공의 품질 같은 것들이 건물의 운명을 좌우한다. 

 

자연재해인 홍수와 같은 상황에서는 물의 높이뿐 아니라 빠른 물살과 진흙, 바위와 잔해가 건물을 때리는 충격, 기초 주변의 토사를 파내는 세굴(洗掘) 등 여러 힘이 동시에 작용한다.

 

네팔의 ‘민트색 집’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단순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보이는 디자인’보다 ‘보이지 않는 구조’가 먼저라는 사실이다.

 

 

얼마 전 네팔 대홍수 영상을 보다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거대한 흙탕물이 마을을 덮치고 집과 자동차, 온갖 것들을 휩쓸어가는데 그 한가운데 민트색 2층집 한 채가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사진 출처: SNS)

 

 

<기초와 뼈대는 ‘디자이너의 일’이 아닌가?>

 

물론 기초와 구조는 기본적으로 건축가와 구조기술자 등 전문가의 영역이다. 디자이너가 구조기술자의 일을 대신해서도 안 되고, 전문지식 없이 구조적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디자이너가 자신의 전문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러한 문제를 외면해도 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공간·전시·환경·공공디자인처럼 다양한 분야가 얽힌 프로젝트에서 디자이너가 총괄 기획이나 디자인 디렉팅을 맡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총괄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직접 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뜻이다.

 

구조는 구조기술자에게, 전기는 전기 전문가에게, 소방은 소방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재료와 시공 역시 각각의 전문가와 협업해야 한다. 이때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전문가의 일을 대신하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답이 최종 디자인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끝까지 확인하는 능력이다.

 

 

 

 

 

더 가슴 졸이게 만든 것은 그 집 2층 발코니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도망갈 곳도 없이 가족들은 사방을 휩쓰는 물살을 바라보고 있었고, 영상을 보는 필자도 제발 저 집만은 버텨주기를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보게 됐다. (사진 출처: SNS)

 

 

<디자인 총괄은 ‘예쁜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 디자인 현장에서 ‘디자인 총괄’이라는 말을 조금 더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총괄 디자이너가 색을 결정하고 형태를 승인하며 최종 시안을 고르는 사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구조는 안전한지, 선택한 재료는 해당 환경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지, 폭우가 쏟아지면 물은 어디로 빠지는지, 사람들이 몰렸을 때 동선에는 문제가 없는지, 화재나 정전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몇 년 뒤에도 유지·보수가 가능한지까지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답을 디자이너가 직접 계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질문이 필요한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은 총괄 디자이너의 중요한 역량이다. 좋은 협업은 각자의 전문영역에 선을 긋고 ‘여기까지가 내 일’이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전문영역이 만나는 경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질문하고 연결하며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행히 집은 버텼고 가족들도 살아남은 것으로 보도됐다. 홍수가 지나간 뒤의 모습은 더욱 놀라웠다. 주변은 진흙과 잔해로 뒤덮이고 많은 건물이 무너졌는데 ‘민트색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이 집은 어떻게 지었기에 저 엄청난 홍수를 견뎠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SNS)

 

 

<디자인은 표면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이 이야기는 건축과 공간 디자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브랜드 디자인도 멋진 로고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의 철학과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브랜드는 오래가기 어렵다.

 

제품 디자인 역시 아름다운 외형을 갖췄더라도 사용성이 나쁘거나 안전하지 않다면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공공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멋진 시설물을 설치했지만 몇 년 뒤 관리할 예산도, 고장 났을 때 수리할 시스템도 없다면 그것은 완성된 디자인이 아니다.

 

결국 디자인은 겉모습을 만드는 일을 넘어 보이지 않는 구조와 시스템까지 살피는 일이어야 한다. 필자는 디자이너에게 이런 ‘엑스레이(X-ray)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난 색과 형태를 보는 눈을 넘어 그 안에 무엇이 있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버틸 것인지까지 들여다보는 눈이다.

 

네팔의 ‘민트색 집’이 왜 살아남았는지는 앞으로 전문가들의 보다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기초와 구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입지와 지형, 시공의 품질과 여러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사진 출처: SNS)

 

 

<네팔 ‘민트색 집’이 디자이너에게 남긴 교훈>

 

네팔의 ‘민트색 집’이 왜 살아남았는지는 앞으로 전문가들의 보다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기초와 구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입지와 지형, 시공의 품질과 여러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상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건물의 색과 형태라면, 위기의 순간 한 가족의 생명을 지켜준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무언가였다는 사실만큼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필자는 디자이너들에게 ‘겉만 디자인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보이는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기초와 뼈대를 직접 설계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설계하는 전문가와 대화할 줄 알아야 하고, 구조와 안전을 직접 계산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디자이너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좋은 디자이너는 보이는 것을 잘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더 좋은 디자이너‘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네팔의 ‘민트색 집‘ 한 채가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지금 겉을 디자인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안의 기초와 뼈대까지 보고 있는가?’

 

글_ 정석원 편집인(jsw0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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