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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SF영화 속 탐나는 아이템, 바로 이게 필요했어

2009-10-27


발명은 상상에서 시작된다. 20세기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 나오는 ‘로봇공학 3원칙’이라는 발상이, 21세기 로봇공학도들에게 가장 먼저 숙지해야 할 기본 명제로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4명의 에디터가 SF영화에서 탐나는 제품들을 골랐다. 잘 읽고 이제 만들어 주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


화장의 제 1원소
<제 5원소> 의 샤넬 메이크업 머신

두말 할 필요 없는 완벽한 몸매와 아크로바틱한 격투 씬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밀라 요보비치와 머리 숱이 적어도 여전히 매력적인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제 5원소> . 영화 개봉 당시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프랑스 감독 <택시> 의 뤽 배송이라 이름의 터치를 거쳐 범상찮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무식하지 않고, 프랑스 영화처럼 난해하지 않은 뤽 배송식 SF영화. 영화의 주 무대는 2030년. 하지만 20년 후 그런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 이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희괴한 아이디어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영화가 아닐 수 없었다. 영화의 내용인 즉 슨 절대 악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내는 원소 중 마지막 다섯 번째 원소가 재구성된 릴루(밀라 요보비치), 그녀는 들녘의 산 짐승과 함께 살아온 듯 한 초 순수의 인물로 그려지며, 전직 요원 출신 비행 택시기사 코벤(브루스 윌리스)을 만나 지구를 지켜내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제 5원소가> 다른 SF영화와 분명히 다른 점은 머리에 파이프를 달고 나와 망측한 율동(흡사 통춤과 같았던)으로 노래를 부르던 플라바라구나라는 디바의 아찔한 아리아며, 벗겨지면 어쩌나 보는 사람을 새눈 뜨게 만들었던 장폴고띠에의 붕대패션(?)이라든지, 절대 색시 미남 DJ 루비의 쇄골이 돋보였던 호피무늬 쫄 점프수트, 보통의 SF영화가 기술적인 상상력을 표현의 목적으로 삼았다면 <제 5원소> 의 경우는 문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였던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단연 여심을 흔들었던 물건을 꼽으라면 에디터는 주저 없이 샤넬의 메이크업 머신을 꼽겠다. 지금도 <제 5원소> 를 떠올리면 밀라요보비치의 매끈한 몸매보다 메이크업 머신이 먼저 생각날 정도니까. <제 5원소> 에 등장했던 샤넬의 메이크업 머신은 고글처럼 생긴 기계를 눈에 장착하게 되면 수백 가지의 그라데이션 된 아이메이크업이 몇 초 사이에 눈에 프린팅되는 것이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그 머신이 다름 아닌 현재도 많은 여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샤넬의 브랜드였다는 점. 며칠 전 말도 안 되는 스모키 화장으로 사무실의 많은 사람의 입을 다물게 했던, 어디가 아프냐는 말을 수십 번 듣게 했던 그 ‘슴옥희’ 화장의 에디터 경우 달러 빚을 내서라도 구매하고 싶은 기가 막힌 물건이었다. 꼭 샤넬이 아니더라도 좋다. 밀라 요보비치처럼 예뻐지지 않아도 좋다. 아침 출근시간 마다 얼굴에 그렸다 지웠다 하는 수고를 반복하는 가련한 직장 여성의 노고를 아신다면, 밥한 숟갈이라도 더 먹고 나올 수 있도록 제발 어느 누군가가 개발해주길 간절하게 빌어본다. 에디터 심민영


행복한 쇼핑을 위하여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의 텔레포트 텔레비전

쇼핑은 정말 어렵다. 어떤 신발을 신고 가더라도 다리가 아픈 오프라인 쇼핑이나, 넘쳐나는 상품후기에 혼란스럽기만 한 온라인 쇼핑 모두 힘들기만 하다. 결국 머리를 쥐어 뜯으며 아무거나 사게 만들고, 덤으로 후회를 주는 이 쇼핑과정은 스트레스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화기를 집어 들고 있더라’ ‘마우스가 저 혼자 결제 버튼을 클릭하고 있더라’는 식의 지름신 강령기가 남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물건을 사야만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물건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싫기만 한 에디터는 자연스레 ‘나도 전용 쇼퍼(shopper)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찰리와 초콜릿 공장> 에서 ‘전용 쇼퍼’로 임명하고 싶은 물건을 만났다. 이른바 ‘텔레포트 텔레비전’. 광고 속에서 원하는 물건을 바로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요술 텔레비전이다. 영화 속에서는 개발 초기 단계여서, 또 윌리 웡카의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웡카 초콜릿만 구입할 수 있었지만 진심으로 상용화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또 미니멀리즘의 정수라 할 수 있을 만큼 깔끔한 디자인도 매력적이다. 최근 출시되는 평면 TV의 손가락이 베일 것 같은 날렵함에 불만이 있던 터라 꼭 영화 속 디자인 그대로 출시되었으면 한다(뭐니뭐니 해도 텔레비전 뒤통수는 둥글둥글해야 제 맛이다. 눈에 핏발이 서도록 텔레비전을 본 뒤 수고했다고 뒤통수를 쓰다듬어 줄 때의 그 온기라니! 다음부턴 조금만 보고 덜 고생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텔레비전 때문에 집안의 모든 가구를 흰색으로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구입할 의사가 있다. 사용화가 된다면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긴 하다. 광고 하단에 ‘매우 신뢰할 수 있을만한’ 상품 후기가 자막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리고 지름신의 방문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 달에 일정 금액 이상 쇼핑할 수 없도록 제어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기 바란다. 즐겁게 쇼핑하자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아무튼 배송비는 물론 택배 아저씨와의 신경전이 필요 없는 이 텔레비전과 함께라면 그토록 싫어하던 쇼핑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디터 정윤희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면
<터미네이터> 의 인터렉티브 콘텍트렌즈

사람을 만나면 동시에 나의 오른쪽 시야 위로 작은 창이 뜬다. [서울/80년생/여자/미혼/165㎝-48kg] 인사를 나누고 나면, 창은 다음 줄로 넘어간다. [O형/취미 십자수/브이 라인 외모]
SF영화에서 도통 가지고 싶을 걸 찾지 못하다, 고심한 끝에 <터미네이터2-심판의 날> 에 나온 콘텍트렌즈를 골랐다. 물론 보통의 콘텍트렌즈가 아니며 영화 속 렌즈와도 사뭇 다르다. 기실 영화 속 렌즈는 문을 여는 열쇠로 쓰였다. <미녀 삼총사> 에서 카메론 디아즈는 남의 각막을 그대로 본 따 만든 렌즈를 자신의 눈에 껴서 철통보안 시스템을 뚫었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의 톰 크루즈는 다른 사람의 눈알을 비닐 팩에 넣고 다니다가, 센서에 그 동공을 들이대서, 역시 감옥 문을 열었고 그 덕에 기밀을 빼낼 수 있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의 콘텍트렌즈는 열쇠가 아니라,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도어 뷰(door view) 다.
<터미네이터2-심판의 날> 에 나오는 렌즈는 사람의 기본적인 정보가 시야 위로 대화창처럼
뜬다. 지역, 나이, 성별, 혼인 여부, 키, 몸무게, 혈액형, 취미, 생김새. 거기다가 총을 몇 자루 가지고 있는지, 지금의 기분이 어떤지 까지 낱낱이 알려준다.
애인이 하는 말을 미심쩍어하려는 찰나, 살며시 터미네이터의 빨간 눈 렌즈를 낀 나를 상상해본다. 아마 아주 느리게 질문을 할 것이다. 뭐했어. 어디에서. 그래서. 좋았어? 점점 그의 아드레날린 수치가 올라가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보면서 ‘자식, 긴장하고 있어’ 라고 한껏 고자세를 유지할 것이다. 피해자로 살던 사람이 가해자가 되면 더 무서운 법이다. 한껏 놀리며, 사랑하냐 안 하냐 깐죽 대고 을러댈 것이다. 시야에 [He’s Lie]가 뜨면, 진정 사이보그 터미네이터 모델-101(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돼 심판을 내리는 것이니, 아! 간단명료한 제품, 탐나는도다. (165센치 키에 서울에 사는 80년생 O형 미혼 여성은 김태희다. 그래, 맞다. 눈으로 봐야 아는 법이다) 에디터 이안나


번쩍 하는 황홀한 순간
<맨인블랙> 의 기억 제거 장치

‘수트 발’ 제대로인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가 고글 형 선글라스를 끼고 하얗게 플래시를 터트리는, 그 황홀하게 번쩍이는 순간이 매혹적이리 만큼 가슴 시린 이유는 뭘까. 태생이 청승이고 생활이 궁상이라서? 아니다. 가을이니까, 계절이 기억을 데리고 오니까. 노래를 듣다가도 라면을 먹다가도 유리창을 열고 바닥을 쓸다가도 기습처럼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건 아직 생생한 추억 때문이다. 흔히들 이별의 처방전으로 ‘기억에서 지우기’를 작성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나. 인터넷 검색 창에 ‘맨인블랙 기억제거장치’라고 치면, “스미스 씨, 그 기계 좀 제발 나한테 넘겨달라”는 애원의 글이 여럿 검색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훗날 이 제품이 만들어진다면 누구에게 맡길까 생각해보다가, ‘카림 라시드’는 제일 먼저 제외시켜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만약 휴대하기 좋은 ‘콤팩트’ 사이즈에, 부드럽고 매끈한 ‘폴리카보나이트’ 소재, 깜찍한 ‘핫 핑크’ 컬러라면, 가히 재앙에 가까운 이런 상황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보자고 무릎을 꿇은 당신 앞에서 한때 당신의 애인이었던 인간이 립스틱과 마스카라, 기름종이로 뒤섞인 파우치 속에서 그 귀엽고 앙증맞은 기억 제거 장치를 꺼내 든다면, 그리고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게 새끼 손가락으로 지우기 버튼을 ‘틱’ 누르며 “흥, 이제 끝이 거든요” 라고 말한다면, 그 자리에서 혀 깨물지 않으면 다행이다.
‘올 블랙’이나 ‘미니멀리즘’도 좀 곤란할 것 같다. 이별이 ‘무심한 듯 시크’하다 못해 너무 ‘쿨’해서 눈물이 말라 붙다 쩍쩍 가슴이 갈라질 테니까. 지난 시간을 한번쯤 찬찬히 곱씹어볼 수 있도록, 다소 촌스럽더라도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디자인을 요청하는 바다. 무엇보다 버튼이 뻑뻑해서 누를까 말까 누를까 말까 수백 번 고민하게 만들어 달라. 적어도 땅을 치며 후회할 일은 없어야 하니까 말이다. 떠나는 길에 진달래 꽃 배웅은 못 받아도 새하얀 빛 무더기 머리 위에 쏟아진다면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식의 비장미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조명디자이너지만 ‘잉고 마우러’가 어떨까 한다. 그라면, 모자를 들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이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아니 하얗게 좋아했던 기억을 지울 수 있나. 에디터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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