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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예술의 팔할은 바람: 2010 테오 얀센 전

2010-07-06


네덜란드에서 온 백발의 예술가가 거대한 바다생물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키네틱 아트의 거장으로 꼽히는 테오 얀센의 전시가 열리는 것. 물리학자가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 먹은 것은 해변가에서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던 파이프 조각이었다. 버려진 파이프 조각에 바람으로 생명을 불어 넣은 테오 얀센과 그의 창조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세계 최대 규모로 열리는 ‘2010 테오 얀센 전’은 약 130일간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시관 및 과학 조각공원에서 개최된다. 최초의 작품인 아니마리스 불가리스(Animaris Vulgaris)를 비롯하여 BMW 광고에 등장했던 아니마리스 오르디스(Animaris Ordis), 그리고 최신작인 아니마리스 우메루스(Animaris Umerus) 등 총 16개의 작품이 전시된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수식을 감안하면 16점의 작품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숫자일 수 있으나, 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소규모의 전시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생명체들의 크기 또한 최대 규모에 한 몫하고 있다는 사실.

네덜란드 헤이그의 해변마을, 스헤베닝겐에서 태어난 테오 얀센은 물리학을 전공하고 화가의 길을 걷는다. 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키네틱 아트에 빠지게 된 것은 해변가에서 플라스틱 파이프를 가지고 놀던 어린아이들을 발견하면서부터. 천진한 아이들의 놀이를 보고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바로 버려진 플라스틱 조각으로 생명체를 만드는데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작품이 아니마리스 불가리스다. 버려진 파이프를 스카치테이프로 이어 붙여 만든 최초의 생명체는 전시장 입구에서 화석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최초의 생명체로부터 진화를 거듭한 이 작품, 아니 동물들은 바람을 먹이 삼아 1~2년 가량을 살다 화석이 된다. 이 해변생물들이 바람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었던 데에는 네덜란드의 지형적 특성이 있었다. 해수면보다 낮은 지면으로 인해 언제나 강풍이 부는 네덜란드의 해변가에서는 한 생명이 움직이기에는 바람의 힘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유일한 ‘먹이’인 바람을 저장할 수 있는 빈 페트병과 버려진 플라스틱 파이프(네덜란드의 가정집에서 전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생산량도 폐기물도 많다고. 2년 전부터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한다)로 만든 골격과 근육으로 이뤄진 이 동물들은 단순한 키네틱 아트를 넘어선 과학이며,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또한 버려진 파이프를 이용하는 친환경적인 작업을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9년 7월,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얀센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해일이나 태풍 등 천재지변이 닥칠 때를 제외하곤 늘 네덜란드 바닷가에 방치되듯 놓여져 있다는 ‘아니마리스’들은 바람으로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지하고 거닐며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움직임만큼 아름다운 예술이 또 있을까.



>>BMW광고. 출연한 동물은 ‘아니마리스 오르디스(animaris ordis)’
출처 www.youtube.com/watch?v=wcr7u2tunoy&feature=related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거대한 생명체들이 해변을 거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경이롭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강 둔치 대신 실내에서 열리게 돼, 아니마리스들의 움직임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총 6회에 걸쳐 진행되는 간단한 시연을 통해 어떻게 바람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작품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행사들이 준비돼 있다.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여름, 얀센의 아니마리스에게서 바람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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