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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그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16-01-29

 

 

기실 악마적인 발명이었다. 2000년대 중반 등장한 ‘된장녀’라는 호칭은 ‘한국형 악녀’의 환영을 꽤 구체적인 형상으로 빚어냈다. 그로부터 한참 동안, 한국 여자는 ‘분수에 넘치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명품 백을 들고 다니면서 정작 남성에게는 지갑 열 줄 모르는 ‘무개념’이라는 오명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 ‘된장녀’는 잡것 취급받기 싫으면 행동거지를 더욱 검소하고, 현명하고, 배려심 넘치게 교정해 타의 모범이 되라는 훈장질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여성을 향한 조롱은 마른 낙엽을 태우는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된장녀’는 더욱 활용 폭이 넓은 ‘XX녀’ 형태로 파생되어 여자들 가는 자리마다 낙인을 찍었고, 된장녀 운운 그만두라니 껍데기만 교묘하게 바꿔 입힌 ‘김치녀’가 한국 여성 일반을 ‘광역 저격’한다. 수년간 억압되어 온 분노는 ‘일베’의 무조건적 여성 혐오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마침내 폭발했다. ‘명예로운 여성상’을 획득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에도 일베의 눈에 비친 여성은 삼 일에 한 번 두드려 패는 북어일 따름. 그래서 2015년은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뜨겁게 인구에 오르내린 해가 됐다. ‘#나는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가 상반기 트위터를 휩쓸었고, 혐오에는 혐오로 대항한다는 ‘미러링(Mirroring)’ 전략으로 소매를 걷어 걷어붙인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도 등장했다.

 

에디터 | 나태양(tyna@jungle.co.kr)

 

피 터지는 일 년간의 싸움으로 여성의 살림살이가 조금은 나아졌으리라 기대한다면 갈 길이 아득히 멀다. 현재 우리가 밟고 선 영역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헬’인지 고통스럽게 확인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데이트 폭력과 리벤지 포르노가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면서 안전한 연인 관계에 대한 환상이 부서졌고, 날개 꺾인 ‘경단녀’ 혹은 비정한 ‘워킹맘’ 외에는 뾰족한 선택지가 없는 기혼녀의 삶은 출산에 대한 공포를 자아냈다. 유리 천장1), 직장 내 성희롱, 임금 불평등 문제는 여성이라는 천부적 상태가 일터에서 하자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매력있는 여성, 사려 깊은 아내, 자애로운 어머니, 효성 깊은 며느리,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 등 양립시킬 수 없는 이상적 롤(Role)들이 사방천지에서 삶을 구속한다. 슈퍼 우먼이 아니면 모로 가도 설교를 들을 운명이다.

 

1) 유리 천장(Glass Ceiling): 데이비드 카터(David Cotter)와 그의 동료들이 규정한 개념으로, 능력 및 자격과 관계없이 소수자(주로 여성)의 고위직 진입을 가로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고(unseen) 깨지지 않는(unbreakable)’ 장벽을 일컫는다.

 

앙시엥 레짐 풍자화

앙시엥 레짐 풍자화 (출처: www.fr.assassinscreed.wikia.com)

 

그래서 우리는 ‘X세대’도 ‘Y세대’도 아닌 ‘N포 세대’가 됐다. 인생에 필수 코스가 있다고 믿는 기성세대는 기함을 할 연애-결혼-출산 무용론은 현 청년세대를 관통하는 실용주의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렇다고 포기가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자가 스펙’이라고들 말하는 남성중심사회에서는 ‘골드 미스’ 되기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표적 ‘여초’ 집단인 미술계에서마저 최종 컨트롤 타워는 늘 남성이 지휘한다. 권위 있는 작가, 교수, 평론가, 컬렉터, 큐레이터 가운데 여성은 몇 명이나 되는지 꼽아보면 여성에게 내어줄 권세는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한 시절 치열하게 공부하던 수많은 여성 미술 학도들은 다 어디로 증발했을까?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너무나 우등하기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하는 것일까? 5%의 남성이 95%의 여성 그룹을 지배하는 피라미드형 계층구조는 프랑스 구제도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의 풍자화를 연상시킨다. 

 

'게릴라 걸즈' 활동 모습 (출처: '게릴라 걸즈' 페이스북)

 

불행이라 할지 다행이라 할지, 성 불평등이 한국 미술계만의 유별난 사정은 아니다. 여성 차별은 인류 일반의 뿌리 깊은 악습이라, 한국에 민주주의의 싹을 틔운 미국에서조차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한’ 역사는 채 100년이 되지 않은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을 가로막는 비가시적 진입 장벽’은 개념을 적당히 요약할 만한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늘 존재해온 현상이다. 그리고 그 한편엔 실체는 없지만 무엇보다 견고한 벽을 깨부수기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이 있다. 1985년 발족한 페미니스트 예술가 그룹 ‘게릴라 걸즈(Guerilla Girls)’는 명실상부 선봉을 담당했다. 

 

2015년 호주 NSW 갤러리에서 열렸던 게릴라 걸즈 전시 현장

2015년 호주 NSW 갤러리에서 열렸던 게릴라 걸즈 전시 현장 (출처: 사진: 나태양)

 

이들의 가슴에 불을 댕긴 사건은 198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한 기획전이었다. 최신 현대 미술의 주요 경향을 집약하겠다는 야심 찬 의도로 기획된 ‘회화와 조각 국제 통람(An International Survey of Painting and Sculpture)’에는 무려 169명의 작가가 초대됐는데, 그 규모에 걸맞지 않게 여성 작가는 겨우 13명만이 포함돼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노여운 와중에 결정적으로 뒤통수를 때린 것은 MoMA 큐레이터 키나스톤 맥샤인(Kynaston McShine)의 건방진 발언. “이 전시에 포함되지 못한 아티스트는 ‘그의(his)’ 커리어를 재고해봐야 한다”는 맥샤인의 입방정에 여성 아티스트들은 마침내 플래카드를 들고 MoMA 앞에 모여든다. 이 성난 시위는 ‘게릴라 걸즈’의 전신이 됐다.

 

여성 미술가가 되는 일의 장점(The Advantages of Being A Woman Artist):
성공에 대한 압박 없이 일함(Working without the pressure of success)
남성과 함께 전시에 나갈 필요가 없음(Not having to be in shows with men)
4개의 프리랜스 잡을 통해 미술계에서 해방될 수 있음(Having an escape from the art world in your 4 free-lance jobs)
80세가 넘으면 주목받을 수도 있음(Knowing your career might pick up after you’re eighty)
무슨 작업을 하든 여성적이라는 딱지를 보장 받음(Being reassured that whatever kind of are you make it will be will be labeled feminine)
종신 교수직에 발목 잡히지 않아도 됨(Not being stuck in a tenured teaching position)
내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 작업에서 발견함(Seeing your ideas live on in the work of others)
커리어와 모성 중에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짐(Having the opportunity to choose between career and motherhood) 
파트너가 젊은 여자를 찾아 날 차면 일할 시간이 더 많아짐(Having more time to work when your mate dumps you for someone younger)
미술사 개정판에 추가됨(Being included in revised versions of art history)
천재라는 호칭 때문에 당혹스러울 일이 없음(Not having to undergo the embarrassment of being called a genius)

여성 미술가가 되는 일의 장점(The Advantages of Being A Woman Artist): 

성공에 대한 압박 없이 일함(Working without the pressure of success) 

남성과 함께 전시에 나갈 필요가 없음(Not having to be in shows with men) 

4개의 프리랜스 잡을 통해 미술계에서 해방될 수 있음(Having an escape from the art world in your 4 free-lance jobs) 

80세가 넘으면 주목받을 수도 있음(Knowing your career might pick up after you’re eighty) 

무슨 작업을 하든 여성적이라는 딱지를 보장 받음(Being reassured that whatever kind of are you make it will be will be labeled feminine) 

종신 교수직에 발목 잡히지 않아도 됨(Not being stuck in a tenured teaching position) 

내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 작업에서 발견함(Seeing your ideas live on in the work of others) 

커리어와 모성 중에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짐(Having the opportunity to choose between career and motherhood) 

파트너가 젊은 여자를 찾아 날 차면 일할 시간이 더 많아짐(Having more time to work when your mate dumps you for someone younger) 

미술사 개정판에 추가됨(Being included in revised versions of art history) 

천재라는 호칭 때문에 당혹스러울 일이 없음(Not having to undergo the embarrassment of being called a genius) 

(출처: www.guerrillagirls.com)

“우리는 누구도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곳에 있다(We could be anyone; we are everywhere)”는 말처럼 ‘게릴라 걸즈’는 철저히 익명제로 운영되며 가입과 참여가 자유로워 총 규모도 알려진 바 없는 조직이다. 주특기는 미술계의 소수자 차별을 고발하는 반미학적 ‘찌라시’ 게릴라. 예술 작품보다는 선동적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전단은 ‘게릴라 걸즈’의 ’전투복’이라 할 수 있는 고릴라 가면2)만큼이나 어글리하다. 그들의 빈정대는 유머 감각은 미술관 화장실 벽에서 버스, 잡지, 옥외 광고까지 진출했고, 사회 불평등에 공헌한 자에게 불명예 어워드를 수여하거나 강연, 인터뷰, TV쇼 및 공공에 출몰하면서 승자의 미술사를 조롱한다. 

 

2) 이들은 좁은 예술계에서 신상이 공개될 경우 가해질 될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로빈 후드’나 ‘배트맨’, ‘원더 우먼’ 같은 응징자(avenger)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가면을 쓴다. ‘게릴라 걸즈’ 결성 초기, 맞춤법에 서툰 한 회원이 게릴라(guerrilla)를 고릴라(Gorilla)로 잘못 표기한 것이 고릴라 가면의 시초가 됐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 1989년 에디션(상), 2005년 에디션(중), 2012년 에디션(하)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 1989년 에디션(상), 2005년 에디션(중), 2012년 에디션(하) (출처: www.guerrillagirls.com)

 

슬픈 사실은 30년 전 선포된 페미니즘 운동이 현재까지도 너무도 유효한 콘텍스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히 센세이션이라 할 만했던 ‘게릴라 걸즈’의 대표작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를 보자. 이 포스터는 1989년 초판 이후 2005년과 2012년 현황에 맞게 업데이트되었는데, 약 15년 간 여성 누드 작품은 고작 9%가량 감소했을 뿐이고 그와 덩달아 현대미술 섹션을 차지하는 여성 예술가의 비중도 1% 줄어들었다. 뉴욕시 메이저 미술관에서 열린 연간 여성 아티스트 개인전 통계도 애처롭기만 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MoMA,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각각 1회씩의 솔로 전시를 사이좋게 추가했을 따름이다. 올해 ‘스티븐 콜베어의 더 레이트 나이트 쇼(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에 출연한 ‘게릴라 걸즈’ 멤버들은 “이것이 지난 30년간의 활동 결과”라며 자조하기도 했다.

 

뉴욕시 메이저 미술관에서 열린 연간 여성 아티스트 개인전 통계, 1985년(좌측)과 2015년(우측)

뉴욕시 메이저 미술관에서 열린 연간 여성 아티스트 개인전 통계, 1985년(좌측)과 2015년(우측) (출처: www.guerrillagirls.com)

 

성적 불평등이 이미 사회 각계각층의 고질병으로 뿌리내린 상황에서 특별히 예술계를 걸고 넘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술계야말로 자유와 전복의 정신이 물러서지 않는 마지막 방어선이 됐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 예술가들은 멋들어지게 미셸 푸코와 수전 손태그를 들먹이고는 권력 앞에서 한없이 얌전해지는 기득권층의 위선에 환멸을 느낀다. ‘게릴라 걸즈’가 수십 년 싸워 온 성과가 비난 여론을 의식한 적선 수준의 변화라면, 그만한 페미니즘 미술 운동의 역사가 부재한 한국 미술계의 사정은 모르긴 몰라도 더 열악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서 여성 미술가로서 벌이는 생존 레이스에 대한 증언을 듣기 위해 퍼포먼스 아티스트 듀오 양반김(김동희, 양진영)과 설치 미술가 김시하를 만나 봤다. 

 

김시하(좌측), 양반김 김동희(가운데), 양반김 양진영(우측)

김시하(좌측), 양반김 김동희(가운데), 양반김 양진영(우측)

 

영원한 대상(對象), 여성

양반김 김동희(이하 김): 미술계에서도 여성으로서 불편한 농담을 듣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지역 레지던시에서 “얘네 얼굴 보고 뽑았어~” 한다든지, 부를 때 대놓고 ‘언니, 언니’ 한다든지.

 

양반김 양진영(이하 양): 나이 지긋한 남자 작가들이 친하지도 않은데 뜬금없이 영화 보러 가자고도 한다(웃음). 그런 사람들은 여자 작가에게 ‘오늘은 속눈썹이 예쁘네~’ 하는 게 농담인 줄 알고 듣는 사람 기분 나쁠 거라는 생각을 못 한다. 자기 딴에는 칭찬이라고 그러는 거다. 그 상황에서 정색하면 쟤는 왜 과민반응이냐는 식으로 분위기가 몰린다.

 

김: 어느 날은 작가들 모이는 술자리에 나갔더니 처음 보는 남자 작가가 취해서는 우리더러 “양반김 여자 둘이서 나대지 마라”고 하더라(폭소). 평상시에는 굉장히 예의 바른 분이라고 들었는데.

 

김시하 작가(이하 시): 그 작가가 주사를 부린 거라 해도, 그런 생각이 무의식에 내재해있지 않고는 그런 말 못한다. 실례라는 걸 모를 수가 있나. 

 

김: 모 작가는 김시하 작가한테 연락하면 젊은 여자 둘이 딸려 나온다고 얘기하고 다닌다더라.

 

양: 충격이었다. 그 이후로 더 대외적인 사교 활동을 꺼리게 됐다. 친한 사람들이랑 놀면 놀았지. 


시: 양반김과 쓰던 작업실은 작가들 플랫폼 같은 느낌으로 남자건 여자건 항상 사람이 많았는데, 나중에는 남자들이 들락거렸다는 식으로 말이 와전되더라. 내 남편도 ‘너무 예쁜 애들이 와 있어서 그랬나 봐’ 하는데 그게 칭찬으로 들릴 거로 생각하나. 기분 나쁘다. 다 같은 작가인데 예쁘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고. 

 

양반김 김동희 작가(좌측), 양진영 작가(우측)

양반김 김동희 작가(좌측), 양진영 작가(우측)

 

양: 여성 작가는 그런 식으로 늘 평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더 고민이 많아진다. 작품 구상을 하다가도 여성성이 너무 부각되겠다 싶으면 피하게 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스는 빼자고 자기 검열을 하는 셈이다. 우리는 활동하면서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작품에 얼굴이 노출되는데 때로는 그것마저 빌미가 된다.

 

김: 단순히 여자 둘이 하는 작업에 얼굴이 나온다는 이유로 얼굴을 좀 더 내세워서 캐릭터화해 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미술계에 살짝 발 담그고 있는 남자들, 심지어는 작업하는 사람들조차 그런다. “낸시랭처럼 해봐” 라고. 그건 낸시랭 작업이고 우리 방향이 아닌데도.


시: 기본적으로 외모가 눈에 띄는 여성 작가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작업이 별로인 작가, 아니면 그냥 팝 아티스트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김: 여자 작가는 보통 학생들을 가르친다거나 권위가 좀 있어야 ‘꼰대’가 되는데 남자 작가는 그런 거 없다. 나이 들면 다 똑같다. 그나마 미술계라면 사회의 부조리를 조금은 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지탄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할 텐데, 여성 인권에 관해서는 전혀 자각이 없는 것 같다.  


양: 여성 작가는 옷을 입을 때도 알게 모르게 제약이 있다. 일례로 구두 신고 문래동에 나타나면 낯선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한 번은 약속 때문에 차려입고 나갔더니 ‘작가가 왜 그렇게 입고 다니느냐’고 하더라. 문래동에 그런 작가들 없다면서. 작가 유니폼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작업복에 아티스트라고 써서 다녀야 하나(웃음).  


김: 물론 성을 이용하는 여자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즐거워서 입는 옷이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예쁜 것도 아닌데 ‘또 남자들 있다고 저러고 왔다’는 소릴 듣는 거다. 중국에서는 원피스만 입어도 작가가 그렇게 입으면 안 된다는 식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아티스트 신분에 맞는 옷과 헤어스타일이 규정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양: 남자 작가들이 빼입었다고 잔소리 듣는 일 있나. 그냥 ‘너 오늘 멋있다’ 하고 말지. 그래서 더 웃긴다.


시: 그렇게 양반김을 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양반김이랑 친하고 싶어 하니 이율배반이다. 작가적 잣대와 남성적 잣대를 동시에 갖다 대는 거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양반김, <허세 예술가 담론>, 단채널영상, 00:42:04, 2012

양반김, <허세 예술가 담론>, 단채널영상, 00:42:04, 2012 (출처: ⓒ 양반김)

 

여성 출입 금지

양: 미술계에도 비즈니스가 존재한다. 어떤 남자 작가들 보면 접대도 하고 영업도 한다.


김: 좀 잘 나가는 작가들이나 전시를 연결해줄 것 같은 교수들 ‘라인’을 타는 거다. 겉으로 쿨한 척하면서 정말 잘 ‘비빈다’. 


시: 일부 몰지각한 작가들의 경우 일이나 돈 앞에서 신념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다. 작업이 정말 구린데도 “아유, 선생님 너무 좋아요” 하면서 같이 술 마시고, 그 선생은 기분 좋아지면 룸살롱 데려가고. 자기 돈 주고 가긴 힘든데 너무 행복한 거지. 한 번 갔다 오고 나면 뭔가 비밀을 공유한 것처럼 끈끈한 사이가 되는 거다. 그렇게 충성을 맹세한다.


김: 중국 레지던시에서 활동할 때 놀란 것 중 하나는 남성 작가들이 룸살롱을 너무 많이 가서였다. 조선족 여자 나오고 한국보다 좀 저렴하니까 신이 나서 가더라. 


양: 나도 룸살롱에 가본 적이 있다. 교수들이랑 술 마시다가 다른 과에 불려 가게 됐는데, 당시엔 내가 학생 신분이었으니 별로 신경이 안 쓰였던 모양이다. 반소매 티에 슬리퍼 신고 차에서 내렸는데 여자들 나오는 술집이더라(웃음). 보는 눈이 있으니 아마 자제를 했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너무나 낯선 풍경이 그들에게는 너무 평이한 문화라는 점이 충격이었다.  


김: 그래서 우리가 접대한다고 호스트바라도 가면 난리가 날 걸. 뉴스에 나올 거다.

 

김시하 작가

김시하 작가


시: 술 문화도 문제다. 작가가 전시를 하려면 어느 정도는 나서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결혼하고 육아하고 돈도 버느라 바쁜 나로선 그런 기회 자체가 적다. 전시에 합류해도 꼭 술자리가 있다. 다른 큐레이터랑 작가들은 술자리 통해서 미리 친해지니 주고받는 시너지가 생기는데, 가정이 있는 여자로선 가더라도 분위기 무르익기 전에 자리를 떠야 한다. 요새 큐레이터들도 연령대가 낮아져서 굳이 아줌마랑 술 마시려고 안 하고(웃음). 집에서 애들이 찾고 남편한테 전화 오고 하면 싫은 게 당연하다. 파리나 뉴욕처럼 인프라가 풍부한 지역은 몰라도 우리나라는 작업만으론 생존할 수 없는 구조다. 


양: 국내에선 공모전에 지원하려 해도 내정자가 있거나 면식 있는 작가를 뽑는 경우가 있으니까 여자들은 두 배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물론 눈에 너무 띄면 나댄다고 혼나니까 정숙하게(웃음). 예의도 바르면서 옷도 너무 예쁘게 입지 말고.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김: 여성 작가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소문이 확 퍼지니까 애초에 몸을 사리게 된다. 여자들이 남자가 하는 접대 방식으로 접근하면 성적인 걸 활용한다고 욕먹을 거다. 


양: 여성 작가가 미술계에서 살아남기엔 적이 너무 많다. 여자들마저 서로를 견제하니까.


김: 나는 남자고 여자고 웃을 때 사람을 살짝 치는 습관이 있는데, 모임에서 어떤 여자 작가가 “왜 작가님은 얘기할 때 이렇게 터치를 해요?” 하더라. 굳이 그런 얘기를 왜 할까 싶었다.


시: 일전에 작가들 모인 자리에서 작업 얘기하다 보니 나한테 좀 주목이 됐는데 한 여자분이 대뜸 “김시하 작가님은 아들이 찾지 않나? 전화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더라. 나한테 오는 사람들 관심을 쳐내고 싶었던 건데,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최악의 차별은 중국에서 다 받았다. 중국은 돈을 보고 사람이 모이는 시장이라 그렇다. 타지 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가뜩이나 돈까지 결부되니 사람들이 정말 치열하고 처절했다. 경쟁 상대가 될 만한 동료 작가가 있으면 쳐내야 하는데, 첫 번째 제거 대상이 여성이다. 남성끼리 연대하면서 여자는 결정적인 리그에 아예 끼워주지를 않는다. 양반김은 작가가 아니라 학생 취급했고 나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임을 부각시켰다. 어떤 작가는 내 전시 오프닝까지 와서 나를 ‘누구 엄마’라고 부르더라. 그래서 나도 반 농담으로 ‘누구 아빠’라고 부르다가 웬수 졌다(웃음). 


김: 내 일터에서까지 ‘누구 씨’가 아니라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셈이다.   


시: 하다못해 내 앞에서 넘어진 아들을 옆에 있던 후배가 일으켜주니까 작가들이 ‘저거 봐라, XX 엄마 작업한다, 뭐 한다 하면서 애 안 본다’고 욕하더라. 한 명이라도 빨리 쳐내고 자기가 잘 돼야 하니까, 한 명을 악녀로 몰아서 사장시키는 거다. 결국 당시에 전시고 뭐고 아무것도 못 했던 기억이 난다. 여성 작가는 그런 불필요한 과정들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양반김, <노란국물>, 퍼포먼스 설치, 성북동살구, 2014

양반김, <노란국물>, 퍼포먼스 설치, 성북동살구, 2014 (출처: ⓒ 양반김)

 

엄마의 전쟁

양: 요즘 흔히 ‘경단녀’라고들 하는데,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김: 출산으로 인해 당분간 작업이 중단되면 대부분 그렇게 작가 인생이 끊어진다.


시: 본인은 아이를 낳고 잠시 쉰다고 생각하는데, 휴식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관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이미 쉬는 게 익숙해져 버린 거다. 나는 일 년 쉬니까 작업 그만뒀다는 소리가 들리더라. 이제 귀찮아서 반박도 안 한다(웃음).


양: 아는 작가는 애가 둘인데 아이들 재우고 새벽에 작업하더라. 아침 6시에는 남편 출근 시키고. 정말 대단하다. 


김: (그 작가의 경우) 남편이 연애할 때는 미술 한다고 좋아하더니 결혼하고 나니까 단순 취미활동 취급한다더라. 돈을 못 벌어 오니까. 그래서 옥션도 나가고 더 독하게 한다고 했다.  

 

시: 나는 육아 때문에 작업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젠 애들 잘 때 자야 하니까 밤에 일할 수가 없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서 작업 시간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 자체가 확 준다. 조각에서 설치로 전향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조각이나 회화는 계속 손기술이 들어가야 하지만, 설치는 드로잉만 해 놓으면 구현할 수 있으니까. 

 

김시하, 〈Utopia〉, iron, table, chair, mix, 300x540x300cm, 2010

김시하, 〈Utopia〉, iron, table, chair, mix, 300x540x300cm, 2010 (출처: ⓒ 김시하)

 

양: 가사나 육아의 짐을 여자 혼자 짊어지게 하니 잘못이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엄마한테 자원봉사 형태로 재능과 시간을 기부하게 해서 예산을 줄인다고 들었다.


시: 한국이 특히 열악한 이유는 모든 게 엄마한테 달려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대부분 자기 일한다고 관심이 없고. 내가 아는 여성 작가들도 학교 관련 스케줄이 하루에 4~5개씩 있다. 아침에는 교통 봉사 하고, 점심에는 급식 퍼주고, 저녁에는 학부모 회의에 불려간다. 그래서 요즘은 이만 원씩 주고 사람을 사서 보내는 집도 있다더라. 엄마는 일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특히 작가는 몰입할 시간도 필요하고 외부 활동도 많은 직종이라 활동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여성 작가가 없다는 소리들을 한다.

더욱이 아직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남성들은 결혼했는데 왜 밥 안 해주느냐고 보채고, 지방이나 해외 출장 간다고 하면 돈도 안 되는 걸 왜 하고 있냐고 잔소리를 한다. 결혼하고 나서 작업 좀 하려고 하면 집안이 개판이라는 말 듣는다.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집이나 치우라고(웃음). 


김: 그래서 경제력이 중요한 거다. 눈치 안 보려면 돈 벌어야 한다. 


시: 결국 작가 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속하려면 집안에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나도 다 해봤는데 직장 생활이 그나마 낫더라. 돈 버는 게 제일 편하다. 돈만 벌면 되니까. 


양: 여자가 이런 말 하면 많은 남자가 ‘남자 사회생활은 다르다, 네가 여자여서 봐주니까 더 편하게 다니는 거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시: 어쨌건 월급 더 받잖아(웃음). 


김: 사실 남자는 결혼을 거리낄 이유가 크게 없지 않나. 부인이 밥 해주고 빨래해주고.


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아이를 낳은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는데, 작가들끼리 작업실 앞에 불을 피워놓고 모인 자리에서 남편이 아들을 딱 안고 나가더니 “결혼하니까 너무 좋다. 너희도 다 결혼해” 하더라. 그 뒤로 별이 막 초롱초롱하고 한 폭의 그림 같았다(웃음). 남편은 애를 보고 있으니까 너무 행복한 거다. 나는 그때 작업실에서 같이 지내던 동료 남자 작가들 빨래 해주고 있었는데. 


김: 남자들 입장에선 가만히 있었더니 나 닮은 내 핏줄이 나온 거잖아. 기쁘겠지. 

 

김시하, 〈꽃피는 젊은 예술(blooming young art)〉, 700x650x900, 2012

김시하, 〈꽃피는 젊은 예술(blooming young art)〉, 700x650x900, 2012 (출처: ⓒ 김시하)

 

한국의 페미니즘 미술

시: 일단은 작업에도 말들이 너무 많다. 쇠 쓰고 철 쓰는 남자 작가 작업을 남성적이라고 비판하지는 않는데, 여성 작가가 꽃이나 식물을 쓰면 여성적이라고, 장식적이라고 너무도 쉽게 폄하해 버린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너희만 이런 거 할 줄 알아?’라는 생각에 남성성이 강한 파이프 소재를 작업에 쓰기도 해 봤다. 막상 그 작품을 베이징에서 전시하고 나니까 “여자가 이런 작업을 하다니 대단하다”는 얘기가 들려오더라. 그게 무슨 소리냐. 작업을 작업으로 봐야지 왜 성별로 재단하는지 모르겠다. 여성 작가만 있고 작품은 없는 거다.


김: 모두 자기가 살아온 삶을 소스로 작업할 뿐인데, 여성 작가 작업에는 조금만 성향이 드러나도 바로 페미니스트 딱지가 붙는다.


양: 국내 페미니즘 작업 경향에도 어느 정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소재가 너무 직접적이라거나. 


김: 90%는 구리다. 여성성만 드러내는 게 페미니즘 미술은 아닌데, 여성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모티프 안에 표현이 머물러 있다. 물론 국내에 페미니스트라고 꼽을 만한 작가도 거의 없고. 


시: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작가들은 모조리 끌어모은 전시에 참여 제안을 받고도 거절한 적이 있다. 쉽게 말해 생리대나 브래지어 걸어놓고 페미니즘 전시라고 하는 건데, 딱 그 수준에서 멈춰버린 것 같다. 막상 페미니즘 전시라고 해서 가봐도 여자만 득실거린다. 루이스 부르주아 남편처럼 남성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는 거 아닌가. 페미니즘 전시가 여성만의 리그, 여성만의 잔치가 되어버리면 결국 그 작가들은 주류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아까 김 작가가 삶이 작업에 녹아난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도 여성 작가들이 한 번은 생각해볼 문제다. 출산하면 물론 작업이 바뀐다. 하지만 정말 바느질한 걸 내놓는다든가, 작품 속에 아이가 등장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뜨개질, 바느질이라도 집착적으로 에너지를 쏟으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는 건데 거기까지 도달을 못 하는 거다. 페미니즘이 예전 수준을 답보하는 이유다. 그래도 최근에는 새로운 조류의 페미니즘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더라. 작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지아’ 전시라든가.   

 

 

양반김, <옥상의 정치>, 현수막 퍼포먼스 설치, 문래동 옥상, 2014

양반김, <옥상의 정치>, 현수막 퍼포먼스 설치, 문래동 옥상, 2014 (출처: ⓒ 양반김)

 

버티기 게임

김: 그래도 미대를 나오면 졸업하고 1년 정도는 다들 작업을 한다. 일 년을 기점으로 길이 갈리는 것 같다. 취직을 선택하는 친구들도 있고.


양: 작업을 계속하는데도 공모에 떨어진다거나 하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싶어 접는 거다.


시: 막 결혼하고 나서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아직 열정이 있는 시기다. 그러다 한 5년 지나면 하나둘씩 사라진다. 모든 걸 다 겪고 난 내 나이쯤도 기점이더라. 미술계에서는 계속 젊은 피를 원하는 반면, 중견작가는 볼 장 다 봤다고 생각한다. 신선하지도 않고, 잘 될 거 같지도 않은데 괜히 대접해줘야 할 것 같은 거다. 다들 이맘때 전시가 딱 끊기더라. 공모나 레지던시에도 나이 제한이 있고, 젊은 세대들한테 자리를 내어줄 때도 왔으니까. 자기만의 브랜드라고 할 만한 스타일을 구축해놓지 않으면 힘들다. 


김: 작가보다 큐레이터 힘이 더 커서 그렇다. 늘 ‘신선함’에 치중하다 보니 이제는 전시를 가도 작업이 좋다기보다 아이디어가 좋다는 생각만 든다.


시: 사실 예술가는 40대부터가 비로소 뭔가를 만들어낼 시기라고 생각한다. 온갖 것을 다 버텨내고 이제 좀 해보려는데 갑자기 잘리는 거다. 그 나이에 아르바이트하기도 뭐하니 그냥 관두는 거지. 교수 아니면 답이 없다. 중국에 있다 들어오니 내 친구들은 다 교수 됐더라. 난 뭐 된 거다(웃음). 


양: 확실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면 그 나이쯤 작가들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


시: 이 나이에도 살아남은 작가들은 대부분 생계에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최근에 작업실 투어를 했는데 유명하지 않아도 작업실은 다들 괜찮더라. 달리 말하면 아등바등하던 작가들은 다 죽었다는 얘기다.


양: 아니면 연예인처럼 ‘스폰’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시: 전시에서 나오는 수입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보면 된다. 갤러리도 지금은 거의 못 파는 상황이라 다들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뽀대’ 나는 거 하나쯤 걸고 싶어하는 회장님한테 작품을 판다든가. 


김: 하지만 그런 식으로 가다 보면 작업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더라.


시: 회장님들이 그려달라는 대로 그리니까. 작업자로서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남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 면에서는 남녀 할 것 없다. 

 

김시하, 〈Visual Garden〉, 식물, 나비, 아크릴, 스텐, 130x70x200cm, 2014

김시하, 〈Visual Garden〉, 식물, 나비, 아크릴, 스텐, 130x70x200cm, 2014 (출처: ⓒ 김시하)


김: 남들은 양반김보고 싸워서 작업 안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더라. 심지어 레지던시 면접에서도 작업 얘기는 안 하고 둘이 언제까지 할 거며, 싸우면 어떡할 거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우리 같은 경우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둘이라 위안이 많이 되는 편이다.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도 풀어버리고.


양: 덕분에 이런저런 일을 당해도 응어리가 안 남는다. 둘이 다녀도 이런데, 혼자 작업하는 작가들은 정말 힘이 많이 들 거다.


시: 너무 많은 것과 싸워서 이겨내야 해서 많은 여성이 미술을 그만두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알던 미술은 정말 숭고한 건데, 내 인생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다른 이면에 염증을 느끼는 거다. 아무리 열심히 한들 작업을 알릴 수 있는 실질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면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 이런 말 하면 남자 작가들은 꼭 “우린 돈 버느라 힘들잖아” 하는데, 돈은 혼자 버나. 본인이 500만 원 벌어서 작업에 쓰고 뭐에 쓰는 동안 마누라는 200만 원 벌어서 생활한다. 우스갯소리지만 난 결혼 안 한 남자 동료 작가들에게는 결혼해야 인생 핀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 안 한 여자 작가한테는 절대 결혼 하지 말라고 한다. 인생 망한다고(웃음). 

결국 여성 작가로서보다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 자체가 힘들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도처에서 차별을 만드는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과 시스템, 구조적인 문제들이 미술계에도 적용될 뿐이다. 내 꿈은 루이스 부르주아나 쿠사마 야요이 같은 할머니 작가가 되는 것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차별이 더 있을지 여부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이 모든 것의 최전선에 위치한 존재라면 그 사고 방식 역시 걸맞게 진보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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