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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영화 포스터 속 사진을 논하다

월간사진 | 2016-03-25

 

 

영화 포스터 속 사진은 ‘흡입력’과 ‘전달력’으로 영화 성공을 좌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을 중심으로 알아본 한국 영화 포스터의 오늘.

 

기사제공 | 월간사진

 

지난 해 말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덕후(오타쿠) 기질이 다분한 정봉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로또와 우표를 수집하고, 영화 포스터에 집착한다. 그런 그가 동생 정환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건넨 선물은 바로 자신이 아끼던 영화 〈블루 라군〉 포스터였다. 영화 포스터가 갖는 의미가 특별했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시대상을 반영한 장면이다. 

 

당시 발행되던 영화 전문 잡지는 영화 포스터를 부록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영화 포스터 수집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카페의 빈 벽면을 장식하는 주요 소품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영화 포스터에 목을 매는 사람은 흔치 않고, 영화 포스터를 벽면에 걸어 놓은 카페는 시대에 뒤처진 촌스러운 공간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 포스터는 건재하고, 존재 의미는 특별하다. 집안에서 TV나 인터넷을 통해 최신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영화 포스터에 이끌려 극장을 찾는다.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 한 장은 관객들의 뇌리에 오래오래 기억되고 그렇게 인식된 영화는 대중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영화 포스터의 기능은 명확하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영화의 매력을 대중에게 극적으로 전달할 것, 그래서 최종적으로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것. 기획자와 디자이너, 사진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좋은 영화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다.

 

 

영화 스틸 사진, 진일보하다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사진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제작된다. 정해진 콘셉트에 따라서 별도로 촬영하는 경우, 스틸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영화 속 중요 장면을 캡처 받아 사용하는 경우가 그 예다. 최근 영화 포스터 제작에 있어서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면, 스틸 이미지나 캡처 이미지를 활용한 포스터가 부쩍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검사외전〉, 〈신세계〉, 〈무뢰한〉 등을 제작한 ‘사나이픽쳐스’의 박혜경 마케팅 실장은 “최근에는 연출된 사진보다는 스틸사진을 영화 포스터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연출된 사진의 경우 아무리 자연스럽게 배우의 표정을 잡아내려고 해도 영화 촬영 중 배우의 감정을 고스란히 포착해낸 스틸사진에 비해 덜 자연스럽다. 결국 영화의 느낌, 촬영 현장 분위기를 최대한 보여주는 데 효과적인 스틸사진을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분위기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2004년부터 영화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동거동락하며 스틸사진가로 활동해 온 조원진의 답변에서 힌트를 얻을수 있다. 그는 “스틸 컷이 포스터로 사용된 지는 꽤 됐다. 내 작업의 경우 적어도 2006년부터 작품에 따라 스틸 컷이 포스터로 사용되어 왔다. 사실 영화계에서는 훨씬 이전부터 이 방식이 사용되고 있었다. 작품을 시작할 때 기획 단계부터 스틸사진을 꼭 포스터에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 하지는 않는다. 만약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작업할 뿐이다. 스틸 컷을 사용하는 것이 적합한지 아니면 스튜디오나 야외에서 연출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지는 전적으로 영화 성격이나 마케팅 콘셉트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또한 스틸사진의 장점에 대해서 그는 “현장에서 직접 촬영되다 보니 배우들의 감정 선이 매우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물론 연출되어 촬영된 사진과 비교했을 때 이미지 해상도나 감도 등 기술적인 부분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감성과 감정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영화에서는 스틸 컷을 포스터로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군도〉, 〈범죄와의 전쟁〉, 〈검사외전〉, 〈남과 여〉, 〈집으로 가는 길〉 등이 사진가 조원진이 스틸용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이용해 포스터를 완성한 결과물이다. 스틸 사진가가 한 작품을 위해 촬영하는 컷은 무려 2만~3만 컷에 이른다고 한다. 

 

계약은 보통 회 차로 이루어지는데 장편 영화 한 편의 경우 보통 50~60회, 대작의 경우 80~100회 정도다. 스틸 사진가는 메인 컷으로 사용할 수 없는 B컷을 제외하고 매 회 촬영한 이미지를 모두 마케팅 팀에 넘긴다. 

 

그 후 이 사진들의 운명은 마케팅팀과 포스터 디자이너의 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스틸 이미지가 포스터로 사용된 예는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전도연과 김남길 주연의 〈무뢰한〉, 현빈과 탕웨이 주연의 〈만추〉 등 수없이 많다. 

 

2월 초 개봉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검사외전〉은 영화 포스터를 염두에 두고 스틸사진과 연출된 사진을 동시에 진행했다. 경우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스타일의 포스터를 기획하고 최종적으로 어떤 것이 영화 홍보에 더 도움이 될지 막판에 결정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도 사진가 조원진이 촬영한 스틸사진을 메인 포스터로 사용하고 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래야 영화도 뜬다

 

영화 포스터에서 스틸사진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연출된 사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경우 여전히 연출된 사진이 주를 이룬다. 또한 영화가 대작으로 제작되는 경우에도 연출된 사진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시각 디자인 전문회사 ‘꽃피는 봄이 오면’의 신미경 실장에 따르면, 영화 포스터는 영화가 개봉되기 5~6개월 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고 내부적으로 포스터 콘셉트 회의를 거쳐서 제작사, 배급사, 홍보사가 함께 전체적인 포스터 콘셉트를 공유한다. 

 

포스터 시안이 결정되면 사진가, 메이크업, 헤어, 아트팀 등 촬영 팀을 꾸려서 포스터 촬영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선택이 바로 사진가 선정이다. 어떤 사진가와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확연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영화 포스터 제작에 활발하게 참여한 사진가는 김중만, 오형근, 구본창 등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작가들. 그들의 활약 덕분에 한국 영화 포스터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최근 영화 포스터 촬영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진가는 누가 있을까. 

 

〈히말라야〉, 〈국제시장〉, 〈타짜-신의 손〉, 〈더 테러 라이브〉, 〈배우는 배우다〉는 패션 사진가로 활동 중인 이전호의 작품이다. 그리고 〈스물〉, 〈7번방의 선물〉, 〈건축학개론〉, 〈써니〉, 〈관상〉, 〈동주〉는 사진가 조선희가 촬영했다, 그런가 하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호우시절〉 등은 사진가 조남룡이 제작에 참여했다. 

 


 

얼마 전 관객들이 황정민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히말라야〉 포스터를 이용해서 인증샷을 찍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독특한 사회적 이슈를 끌어낸 〈히말라야〉의 포스터 디자인을 맡은 신미경 실장은 최근 연출 포스터 사진 촬영 경향에 대해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하던 시절에는 포스터 컨셉트를 잘 담아내느냐 하는 것이 온전히 사진가에게 달려 있었다. 현상, 인화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결과물이 디자이너에게 전달되기까지 적어도 2주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최근 포스터 촬영 현장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졌다. 디지털 카메라 덕분에 피드백도 결정도 빨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촬영현장에서 결과물을 바로 확인하고, 원하는 스타일로 수정도 하고, 즉시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사진가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진 에이전시 테오의 백인선 차장도 영화 포스터 촬영 현장의 변화에 대해 “인공광을 사용해서 배우의 표정이나 몸짓의 콘트라스트를 강렬하게 표현했던 것이 과거의 경향이었다면, 요즘은 자연스러운 느낌과 톤앤매너가 선호되는 추세다. 설사 포스터 제작을 위해 연출을 해서 따로 촬영을 진행하더라도 본편 영화 현장과 비슷한 분위기로 만든다. 조명팀이 붙어서 스트로보 조명 대신 HMI 조명을 사용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배우에게도 최대한 영화 촬영할 때와 같은 자연스러운 표정과 포즈를 요구한다. 대중이 가짜를 골라내는 선구안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좋은 영화 포스터의 기준

 

영상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캡처 받아 사용하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따로 스틸 사진가를 둘 수 없거나 연출된 포스터 사진을 따로 촬영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독립영화에서 주로 사용된다. 

 

‘프로파간다’의 최지웅 실장은 그동안 대형 기획사의 상업영화부터 소규모 독립영화까지 다양한 영화 포스터 디자인에 참여해왔다. 그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포스터의 차이에 대해서 “상업영화 포스터를 보면 대개 배우의 얼굴을 중심으로 커다란 카피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 반면, 독립영화는 디자인적인 면에서 훨씬 자유롭다. 유명 스타가 없기 때문에 배우의 얼굴보다는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서 디자인하는 편이다. 또한 상업영화는 투자사, 제작사 등 선택에 참여하는 회사가 많다. 그러다보니 의견 수렴 과정에서 좀 더 안전한 이미지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누구 얼굴이 먼저, 그리고 더 크게 나오는가에 예민한 배우들의 기 싸움까지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최지웅 실장이 작업한 독립영화 중 〈그들이 죽었다〉, 〈콩나물〉, 〈산다〉 등이 영화 속 한 장면을 캡처한 경우다. 감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느낌이 잘 표현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빛나는’의 박시영 실장의 작업에서도 영화 속 장면을 캡처해 사용한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2015년 한국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 계약직 노동자들의 아픈 현실을 담은 영화 〈카트〉 등이 그것. 

 

박시영 실장은 캡처 장면을 영화 포스터로 사용했을 때의 장점에 대해 “영화 본편의 컷은 영화가 갖고 있는 감정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의도적으로 스토리나 감정적인 부분을 따로 재현하는 것보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감성이 포스터를 통해 그대로 전달된다”고 말한다. 

 

국내용 포스터와 해외용 포스터에 사용되는 이미지와 디자인을 달리 하는 것도 최근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다. ‘꽃피는 봄이오면’ 신경 실장에 따르면 “국내용 포스터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1차적 사명이다. 그러다보니 존재감 있는 비주얼이어야 하고, 없던 호기심까지 불러일으키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인지도 높은 배우들의 얼굴을 포스터 전면에 내세워 마케팅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해외용 포스터는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이미지화해서 포스터로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스틸컷을 사용하거나 아예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서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도 한다”며 그 차이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좋은 영화 포스터의 기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포스터 디자이너와 홍보 담당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프로파간다’의 최지웅 실장은 김기덕 감독과 함께 작업한 〈비몽〉 포스터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실제 영화 속 내용과 포스터가 전달하는 이미지가 상반된 까닭에 관람객들로부터 ‘배신감을 느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디자인적으로는 만족도가 높았다. 

 

〈히말라야〉의 마케팅을 담당한 ‘흥미진진’의 지혜민 실장은 〈거인〉의 티저 포스터를 꼽았다. 그 이유에 대해 “국내 영화로는 드물게 흑백사진을 메인 이미지로 사용했다. 마치 추락하듯 허공에 떠 있는 소년의 모습은 주인공의 위태로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절망을 먹고 자라다’라는 카피까지 더해져 주인공이 처한 사연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고 말했다. 

 

박시영 실장은 2014년 발표된 임권택 감독의 〈화장〉을 추천했다. 영화가 갖고 있는 독특한 정서와 질감이 한 장의 사진 속에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사실 영화 포스터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념〉처럼 영화감독 임흥순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하거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처럼 아트용 영화 포스터를 따로 작업해 전시장에서 소개하는 등 다양하다. 

 

영화 포스터 속 사진의 힘은 무한하다. 그 안에 담긴 이미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을 줄 안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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