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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대지미술의 부활

2016-06-24

 

 

 

파란 호수 위에 노란색 길이 반짝거린다. 가까이 가보니 길이 물결을 따라 출렁인다. 분명 호수 중간에 있는 작은 섬과 저 건너편 땅을 이어주지만 다리와 같은 튼튼한 건축물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길 위를 걸어본다. 바람과 물결에 따라 출렁이는 느낌이 고래 등 위를 걷는 듯하다.

에디터 | 허영은(yeheo@jungle.co.kr)
자료제공 | The Floating Piers(www.thefloatingpiers.com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에 위치한 이세오(Iseo) 호수에 노란색 길이 생겼다. 호수의 파란색과 대비를 이루어 저 멀리서도 한눈에 띄는 이 길은 대지미술의 대가인 크리스토(Christo)가 11년 만에 선보이는 야외 설치 작품인 <플로팅 피어스>(The Floating Piers)다.

작품 설계와 자금 확보, 협상 등 다른 미술 분야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대지미술은 준비기간에만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가 많다. <플로팅 피어스>역시 크리스토가 이제는 곁에 없는 부인 잔 클로드(Jeanne-Claude)와 함께 1970년부터 구상했던 작품이다. 원래는 남미 지역과 일본의 도쿄가 예상 후보였으나 불발되었고, 지난 2014년 봄에 크리스토와 프로젝트 팀이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돌아보던 중 현재의 이세오 호수가 낙찰되었다.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플로팅 피어스>는 술자노(Sulzano) 마을의 거리에서 시작하여 호수의 몬테 이솔라(Monte Isola)섬을 거쳐 건너편 페쉬에라 마라글리오(Peschiera Maraglio) 마을까지 이어진다. 국회의사당, 퐁네프 다리 등 무엇이든지 천으로 감싸는 패킹(Packing) 기법의 대가인 크리스토는 이번에도 역시 5.5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특수 제작된 천으로 감쌌다. 이전 작품과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호수에 고밀도의 폴리에스테르로 제작된 22만 개의 부두를 띄워 호수를 건널 수 있는 길을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다.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크리스토와 그의 작품이 인정받는 이유는 작품의 거대한 규모와 장기간에 걸친 준비과정인 것도 있지만, 결코 예술작품으로서 미학적인 부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예술은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작가의 정신에 맞게 <플로팅 피어스>역시 주변의 자연과 어울리는 색상과 광경을 방해하지 않는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이번 작품의 주가 되는 노란색의 천은 날씨 상태와 기온, 습도에 따라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색상이 바뀌도록 특수 제작되었고 소재 역시 부드러워 사람들이 길을 걸으면서 촉감까지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22개월 동안 제작과 설치가 진행된 <플로팅 피어스> 프로젝트는 작가와 기획자 외에도 엔지니어, 다이버, 운동선수들이 참여하여 이루어낸 작품이다. 다이버들은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부두가 흔들리지 않게 호수 바닥과 부두를 연결하는 판과 앵커를 설치해야 했으며 불가리아 출신의 운동선수들은 지상에서 그를 도왔다.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노란색 천을 설치하는데 동원되었다. 거기에 전시 기간 동안 안전요원과 진행요원들이 관람객들을 안내하여 작품의 마지막까지 도와줄 예정이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작품이 언제나 그랬듯이 예술은 어떤 한 명의 천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플로팅 피어스>는 보여주고 있다.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이제까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그 어떤 프로젝트도 쉬운 것은 없었지만 이번 작품은 물 위에 사람들이 다녀야 하는 작품이므로 무엇보다 안전성이 중요시되었다. 때문에 흑해에서 파도와 바람에 따른 부두의 안전성을 미리 실험했고, 호수 구간에 사용될 천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실험도 독일에서 진행되었다. 제작에서 설치에 이르는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대지미술의 작업 과정은 단순히 노동으로 치부되어서는 안되고, 모순되지만 '왜 예술은 노동이 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도 동시에 떠오른다.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The floating Piers © 2016 Christo (Photo by Wolfgang Volz)


작가를 비롯한 기획자, 설치팀의 22개월간의 노력은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나며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미술 작품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관객들은 단지 그 길을 걸으며 햇빛과 바람을 느끼고 물 위를 걷는다는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을 즐기면 그뿐이다. 크리스토 역시 <플로팅 피어스>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바람, 햇빛, 물 등 우리 세상을 이루는 물질들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단순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처럼 예술은 거창하게 어려운 것도 아니며,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그래서 <플로팅 피어스>도 24시간 무료 개방으로 16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시된다. 그리고 전시에 사용된 부두와 천은 산업용으로 재활용될 예정으로, 전작들처럼 그 어떤 것도 남겨지지 않는다.

긴 준비과정이 아까울 만큼 지속되는 시간이 짧기에 더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지던 크리스토의 전작들처럼 <플로팅 피어스>는 사람들에게 또 어떤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질까. <플로팅 피어스>는 올해 81세를 맞이한 아티스트의 변치 않는 예술에 대한 정신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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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ThefloatingP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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