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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의지

2016-07-01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디자인이 저급해지는 상황을 참기 힘들어 미술공예운동을 일으켰다. 기계가 만든 공산품들은 딱딱하고 외형과 디자인이 어설프기 짝이 없었으나 사람의 손길이 직접 닿은 수공예품은 만들 때마다 약간씩 다를 수는 있어도 완성도가 높고 따스한 감성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윌리엄 모리스는 수공예품의 아름다움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미술공예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아마도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아닐까.

에디터 | 허영은(yeheo@jungle.co.kr)
자료제공 | 디뮤지엄(www.daelimmuseum.org/dmuseum)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의 포스터 (사진제공: 디뮤지엄)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의 포스터 (사진제공: 디뮤지엄)

 

영국의 디자인을 이야기해보자. 디자인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나라는 바우하우스가 싹튼 독일, 모더니즘 디자인의 대표주자 스위스, 그 뒤를 이은 미국 정도 일 것이다. 최근에는 북유럽이 대세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에 힘입어 역동적이고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영국이다.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조나단 아이브(Jonathan Ive),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등 분야를 불문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닌 현대 디자이너들 중 많은 수가 영국 출신이다.

디자이너의 이름만 봐도 현재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영국 디자인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말에 일어난 미술공예운동이 있다. 미술공예운동은 수공예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재조명했던 운동으로, 대량생산 사회에서 진정성 있고 예술적인 디자인의 필요성을 알렸다. 그래서일까 영국 디자인에는 공예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 담겨있다. 그리고 영국의 수많은 디자이너 중, 미술공예운동에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바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주목받는 토마스 헤더윅일 것이다.

그가 영국의 공예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말은 단지 수공예 가게를 운영했던 어머니의 영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반복적인 질의를 통해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이루어내려는 의지는 마치 한 작품의 완성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들이는 수공업자, 혹은 장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러닝 허브. 난양기술대학교, 싱가포르, 2015 (NTU Learning Hub; evening view of the Learning Hub from Nanyang Drive. image credit: Hufton + Crow)
싱가포르의 난양기술대학교 건물인

러닝 허브. 난양기술대학교, 싱가포르, 2015 (NTU Learning Hub; evening view of the Learning Hub from Nanyang Drive. image credit: Hufton + Crow) 싱가포르의 난양기술대학교 건물인 '러닝허브'는 타원형 구조의 교실과 중앙 정원 등 전통적인 위계질서를 무너뜨린, 보다 활기차고 수평적인 교육 공간을 제시한 건물이다.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진 헤더윅의 작품은 놀라움과 함께 공감을 이끌어낸다. 헤더윅을 포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어진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비평의 과정을 거쳐서 얻은 본질과 핵심을 찌르는 아이디어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현재 디뮤지엄의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전(展)에서 볼 수 있는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 건물인 ‘러닝 허브(Learning Hub)’와 영국 스톡턴(Stockton) 지역에 있는 ‘티사이드 발전소(Teeside Power station)’는 헤더윅 스튜디오만의 방식을 통해 학교와 발전소라는 공간의 본질을 찾아서 얻어낸 결과다. 또한 영국이 식물 종자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에서 착안하여 디자인한 상하이 엑스포의 ‘영국관(UK Pavilion)’은 ‘더 좋은 도시, 더 살기 좋은 삶(Better City, Better Life)’라는 엑스포의 주제에 맞게 영국의 친환경적인 모습을 강조한 건물이었다.
 

영국관. 상하이 엑스포, 중국, 2010 (UK Pavilion; exterior view of the pavilion. image Credit: Iwan Baan)

영국관. 상하이 엑스포, 중국, 2010 (UK Pavilion; exterior view of the pavilion. image Credit: Iwan Baan) '씨앗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건물은 전시관의 안과 밖을 관통하는 6만 개의 무수한 투명 막대로 이루어져 있다. 막대 끝부분에는 25만 개의 씨앗이 담겨있다.

 

그러나 주목받아야 할 헤더윅의 능력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힘이다.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의지’를 제일 중요한 것으로 꼽는 헤더윅은 수공예 가게를 운영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소재에 관심이 많았다. 이후 디자이너가 된 헤더윅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 가능하게 해줄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탐구한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의지까지 더해지자,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서 헤더윅은 가능한 기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저 멀리 중국까지 건너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익스트루전(Extrusions)’), 필요하다면 자신이 직접 설계와 시공을 모두 하는 것(‘에버리스트위스 아트센터의 스튜디오(Aberystwyth Arts Center’s Creative studios)’)도 주저하지 않는다.
 

익스트루전, 2009 (Extrusions; front view of Extrusions bench. image credit: Peter Mallet)
매끈한 좌석 부분과 비정형적인 좌석 부분이 공존하는 독특한 이 벤치는 고온 가열되어 물러진 금속을 금형 틀에 통과시키는 압출성형 기법을 사용하였다.

익스트루전, 2009 (Extrusions; front view of Extrusions bench. image credit: Peter Mallet) 매끈한 좌석 부분과 비정형적인 좌석 부분이 공존하는 독특한 이 벤치는 고온 가열되어 물러진 금속을 금형 틀에 통과시키는 압출성형 기법을 사용하였다.

 

헤더윅 스튜디오를 말할 때는 언제나 독창성, 창의성이라는 수식어가 꼬리처럼 붙어 다닌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중요한 진짜 이유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해내려는 의지이다. 수많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헤더윅은 귀걸이나 팔찌 등의 작은 공예품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도시에 있는 큰 건물에 불어넣고 싶어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가 주로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 역시 자신의 디자인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다.

결국, 실험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품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본질에 가까운 디자인,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그가 또 어떠한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변화시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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