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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포착하는 선

성립 | 2016-10-04

 

 

하얀 종이 위에 이리저리 휘갈긴 검은색 선으로만 표현된 아주 단순한 오브제들. 화려한 그림들이 난무하는 현 상황 속에서 극도로 절제된 성립의 그림은 확실히 눈에 띈다.
 

강강술래의 마지막 동작, 2016

강강술래의 마지막 동작, 2016


점, 선, 면 그리고 흑과 백. 미술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지만 이것으로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사람들이 작가 성립의 그림에 끌리는 이유는 이 어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단순하지만 모든 것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쫓긴 듯이 대충 휘갈긴 선으로 표현된 사람들은 앉아있거나 혹은 걷기만 하는데도 어떤 감정인지가 느껴진다. 이렇게 사람들은 작가가 그린 선 안에서 지금까지 살면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을 발견하고, 삶을 깨닫는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의 그림을 지켜보다가 문득, 작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작가 성립은 시작하는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깊게 바라보며 진중하게 답을 했다. 역시, 그림은 작가를 닮는다.



주저앉는 동선, 2016.

주저앉는 동선, 2016.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보니 요즘 많이 바쁜 것 같아요.
최근에 갑자기 바빠졌어요. 그래도 다양한 일을 하니까 재미있어요. 작년 이쯤에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감회가 새로워요.

최근에 가수 샤이니의 영상을 작업하셨죠?
SM 엔터테인먼트의 의뢰로, 샤이니를 주제로 한 특별전시 ‘Shinee World’에 참여했습니다. 50초, 4분짜리 영상을 작업했어요.

매우 큰 클라이언트인데, 작업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남의 의견을 의식하면서 작업한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작가는 최대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모습을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저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다행히 작가의 역량을 믿고 맡겨서 제 의도를 많이 살릴 수 있었습니다.


전시 ‘SHINee CONCERT - SHINee WORLD V’ 티저 영상, 50”, 2016
 


최근 2년 사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교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면서 디자인을 복수 전공했어요. 디자인 분야로 취업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죠. 그래서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에, 고맙게도 제 그림을 좋게 봐주는 분들이 나타났어요. 덕분에 전시도 하고 작가로서 작업을 할 수 있었죠.

주로 사람들을 많이 그리시는데, 이유가 있나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인물 그리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어요. 과 동기들은 예중·예고 출신에, 모두 그림을 잘 그렸거든요. 그러다 보니 인물 드로잉에 콤플렉스가 생겼어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어 대학 2학년때부터 인물 드로잉을 시작했는데, 그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선이라는 요소는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그림을 그리다 보니 사람의 얼굴에서 선적인 요소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제가 선에 흥미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고요. 성향을 알게 되니, 다음에는 ‘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현재의 표현 방식을 찾게 되었죠.

선으로 작업하는 작가로서, 선의 매력을 말해주신다면?
선은 사람들의 삶과 많이 닮았어요. 무수한 점들을 연결해야 선이 되듯이, 우리의 삶도 순간, 순간이 연결되면서 만들어지죠. 이런 생각에 그림도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사소한 행동들-앉아 있거나 걸어가는 모습-을 그리게 되었어요.

 

뛰어내릴 준비, 2016

뛰어내릴 준비, 2016


서로가 예상치 못한 추락, 2016

서로가 예상치 못한 추락, 2016

 
작가님 그림은 형태도 뚜렷하지 않고, 일반적인 모습을 그리는데 그 안에서 모든 감정이 느껴지거든요. 혹시 영향 받은 작가가 있나요?
현대 개념미술 작가인 솔 르윗(Sol Lewitt)과 보레만스(Borremans)의 정서를 좋아해요. 단, 그림체나 형식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을 영향 받으려고 합니다.

드로잉 작업만큼 애니메이션 작업도 많이 하시는데, 언제부터 관심이 있으셨나요?

드로잉 작업을 하면서 항상 영상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한 번 실현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보통 1초에 15프레임으로 작업하는데, 모든 프레임을 일일이 그려서 스캔을 하죠. 이번에 작업한 샤이니 티저 영상은 거의 2,500장 정도 그린 것 같아요.

디지털 작업인 애니메이션에서 손 그림이라는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는 것이 좋아요. 종이와 펜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손으로 ‘직접’ 그렸다 점에 의의를 둬요. 선 하나, 하나를 손으로 그린 그림들은 똑같은 오브제를 그려도 다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에 한 장밖에 없는 그림이 되거든요. 제 영상들은 움직임이 작아서 각 프레임들이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다른 그림인거죠.


No 1, 1’51”, 2015



드로잉과 영상 작업 외에도 책 삽화 작업도 하셨죠. 책 〈시선〉은 내용과 그림이 서로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책 〈시선〉은 완성된 글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김민준 작가가 먼저 제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를 쓴 거예요. 또 제가 집필 중인 작가의 글을 보고 떠오르는 그림을 그려서 보내면, 작가는 또 그걸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고요. 서로 주고받으면서 글과 그림을 완성하는 바람에 작업 기간은 오래 걸렸지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드로잉 수업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졸업 후에 전문 작가로 나갈 계획을 하면서, 소속이 없다는 점이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을 만나고, 유대감을 느끼기 위해 드로잉 수업을 시작했어요. 주로 지인소개나 인스타그램으로 사람을 모집하는데, 지금은 한 서른 명 정도 되요.

드로잉 수업 시 강조하는 부분이 있나요?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아예 시작도 못 하거나, 정말 조금 그리고 못 그리겠다는 분들이 대다수예요. 사람들이 겁을 내는 이유는 머릿 속에 어떤 답을 가지고, 자기는 그 정도까지 그릴 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첫 수업 때 항상 자기 그림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해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만의 선이 있으니, 그 선을 사랑해야 한다고요.

졸업 이후 꾸준히 전시를 하셨는데요. 전시의 매력이 뭔가요?
전시장에서 제 그림을 직접 본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봤을 때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해요. 그림을 가까이서 마주하면, 나와 그림 사이에 어떤 접점이 생겨 와 닿는 것이 더 많아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최대한 전시를 자주 하려고 합니다.

 

 

 

전시 ‘폭발과 순환’ 포스터. 2016

전시 ‘폭발과 순환’ 포스터. 2016


전시 주제는 어떻게 정하세요?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아요. 지난 전시인 ‘폭발과 순환’은 발사한 로켓이 하늘로 올라가다가 폭발하는 영상을 보고 작업한 거예요. 원래 순환하기 위한 존재였던 로켓이 폭발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못하게 된다는 점이 인상에 강렬하게 남았거든요.

곧 전시를 한다고 들었어요.
9월 말부터 한 달 동안 대림창고에서 전시를 합니다. 대림창고에 있는 작은 방에서 드로잉 작품들을 전시하고, 매일 라이브 드로잉을 해요. 라이브로 그린 작품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판매도 하고요. 이번에는 노트 표지 등 다양한 곳에 그릴 생각이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과 제품을 동시에 가지게 되는 거죠.

책도 출간한다는데,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주세요.
글과 그림 모두 제가 그리고 썼어요. 평소에 드로잉 수업을 하면서 사람들이랑 나눴던 대화들이나 수업 내용들,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했던 생각들을 담은 에세이 집입니다.

성립 작가는 주로 연필과 목탄을 사용하는데, 그의 필통에는 연필이 종류별로 다 있었다. 하얀 책은 2012년부터 2년 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서 낸 독립출판물. 그림과 함께 작가가 되고자 했던 시기에 고민했던 생각들을 함께 넣었다.

성립 작가는 주로 연필과 목탄을 사용하는데, 그의 필통에는 연필이 종류별로 다 있었다. 하얀 책은 2012년부터 2년 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서 낸 독립출판물. 그림과 함께 작가가 되고자 했던 시기에 고민했던 생각들을 함께 넣었다.


성립 작가가 애용하는 노트. 들고 다니기 편하게 무인양품(MUJI) 노트를 사용한다.

성립 작가가 애용하는 노트. 들고 다니기 편하게 무인양품(MUJI) 노트를 사용한다.


지금까지도 그랬는데, 앞으로도 할 일이 많겠네요. 혹 더 큰 계획이 있나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 진학 준비도 하고 있고, 작업실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년에 개인전을 한 번 더 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전시 욕심이 많아서요. 다양한 일을 해서 행복하지만, 확실히 저에겐 전시가 최우선인 것 같아요.


에디터_ 허영은( yeheo@jungle.co.kr)
사진제공_ 성립( seongl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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