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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한글 글꼴의 아버지를 아시나요?

2016-10-18

 

 

한글의 아버지가 세종대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글의 모양, ‘글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리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한글 글꼴을 설계한 사람은 최정호와 최정순이다. 지금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이들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금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지금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최정호, 최정순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 - 원도, 두 글씨장이 이야기'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원도가 글자가 되기까지

글꼴 제작의 필요성이 대두하기 시작한 건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이 끝난 1950년대 들어서다. 당시엔 글꼴을 만들려면 원도 설계가 필수였다. ‘원도(Typeface Original Drawing)’는 활자를 만들기 위해 그린 글자꼴의 씨그림으로, 기계로 활자를 만들기 전, 한 변의 길이가 4∼5㎝인 정사각형 안에 쓰는 글자를 지칭한다. 그리고 이 원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활자를 원도 활자라고 한다.

 

원도 활자가 도입되고 나서부터 활자 제작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실제 크기의 씨글자를 활자 조각가가 도장을 파듯 새겨서 만들었다면, 이제는 원도 설계자가 자, 컴퍼스, 붓, 잉크 등과 같은 레터링 도구를 이용해 한 글자씩 원도를 설계하면 이 설계된 원도를 바탕으로 자모 조각기가 활자를 깎았다. 이때부터 활자의 완성도는 활자를 조각하는 사람이 아닌 원도 설계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졌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한글 글꼴의 아버지, 글꼴 디자이너 1세대인 최정호와 최정순이다. 

 

전시장 내부 모습

전시장 내부 모습

 

바탕체와 돋움체를 완성한 최정호

최정호는 오늘날 본문 글꼴의 대표격인 바탕체와 돋움체를 완성한 원도 설계자이다. 최정호의 한글 원도는 1957년 ‘동아출판사체’부터 시작한다. 동아출판사의 <새백과사전>은 표제어는 돋움체로, 뜻풀이는 바탕체로 인쇄하여 두 글꼴이 함께 조판되었을 때의 의미 구분을 명확하게 해준다. 또한 <세계문학전집>은 가로짜기와 세로짜기가 혼용되어 같은 서체라도 조판에 따라 글씨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삼화인쇄, 보진재 등 다른 인쇄소의 원도 개발 의뢰가 이어졌다. 

 

모리사와사 원도 중명조/활자체, 111×97, 종이, 1972/1979, 모리사와사 소장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모리사와사 원도 중명조/활자체, 111×97, 종이, 1972/1979, 모리사와사 소장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1970년대에는 일본에서 도입된 사진식자기가 자모 조각기를 이용한 활판인쇄를 대체했다. 사진식자는 사진기와 타자기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변형이 자유로워 활판인쇄보다 능률적이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했다. 샤켄과 모리사와 등 일본 회사들은 한국에 사진식자기를 팔기 위해 최정호에게 한글 원도를 의뢰하여 한글 식자판을 제작했다. 이때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다양한 모양의 최정호 원도를 탑재한 사진식자기가 국내에 널리 보급되어 활판인쇄를 대체하게 된다.  

 

일본의 샤켄사에서 제작한 사진식자용 유리판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일본의 샤켄사에서 제작한 사진식자용 유리판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호의 마지막 원도는 1988년 당시 안상수 교수의 의뢰를 받아 설계한 최정호체 원도이다. 최정호가 설계한 많은 글꼴 중 그의 이름을 딴 것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최정호체’라 이름 붙였다. 줄기의 시작과 맺음, 꺾임 등의 세부 묘사가 섬세하고 또렷하며, 가로짜기를 고려한 구조적 변화로서 첫닿자가 크고 기존 글꼴보다 너비가 미세하게 좁은 점이 눈에 띈다. 

 

잡지 <마당>의 제호. 받침 없는 글자

잡지 <마당>의 제호. 받침 없는 글자 '마'와 받침 글자 '당' 사이에 무리한 조형을 시도하지 않는 정공법으로 그 어울림을 잘 표현했다.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교과서와 신문 활자를 개발한 최정순

최정순은 교과서 활자와 신문 활자의 근간을 이룬 원도 설계자이다. 일본에서 활자 제작 기술을 연수한 최정순은 국정교과서를 위한 활자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때 제작된 활자는 ‘ㄴ, ㄹ’ 등의 이음줄기가 급격히 올라가 있고, 받침의 맺음이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 있어 세로쓰기 활자의 균형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에서 발행한 국정교과서 <국어>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에서 발행한 국정교과서 <국어>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이후 최정순은 신문용 본문 활자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5년 중앙일보 창간에 맞춰 3년에 걸쳐 신문용 활자를 제작하여 전량 납품했다. 한정된 지면에 세로짜기로 많은 양을 담기 위해 납작한 글자 형태로 인쇄하였으며, 크게 보이도록 속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이를 계기로 최정순은 한국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등 여러 신문사의 활자 개량을 도맡았다.

 

표제어는 돋움체로, 뜻풀이는 바탕체로 인쇄된 을유문화사 <큰사전>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표제어는 돋움체로, 뜻풀이는 바탕체로 인쇄된 을유문화사 <큰사전>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순은 일흔이 넘어서도 글꼴 다듬기를 쉬지 않았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교과서용 문화체육부 글꼴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1991년 완성한 문화체육부 바탕체는 부드러운 느낌이 들며, 기존 교과서체에 비해 가독성이 크게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2년에는 2,500개의 원도를 그려 총 11,172개의 문화체육부 돋움체를 개발했다. 돌기가 없는 돋움체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줄기 시작과 끝의 굵기를 조절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가미해, 아름다우면서도 가독성이 높다. 

 

 

최정호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호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순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순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호와 최정순은 6.25 동란 이후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사명감으로 한글 글꼴을 설계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편히 사용하는 글꼴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전시는 11월 17일까지.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

자료제공_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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