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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1990년대에서 2017년 찾기

2017-01-17

 

 

90년대의 패션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고, 리메이크된 90년대 노래가 음원 차트 상위에 오르고, 당시 인기 스타들이 방송에 나와 과거를 이야기한다. 2017년인데도 1990년을 사는 기분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이재용, ‘한 도시 이야기’, 2채널 비디오, 2016. 영화 〈여배우들〉, 〈죽여주는 여자〉를 연출한 이재용 감독이 1990년대 서울의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 1994년 서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이재용, ‘한 도시 이야기’, 2채널 비디오, 2016. 영화 〈여배우들〉, 〈죽여주는 여자〉를 연출한 이재용 감독이 1990년대 서울의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 1994년 서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누군가는 1990년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TV 드라마인 ‘응답하라’ 시리즈로 시작한,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1990년대로의 회귀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지나친 기술 발달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점점 나빠지는 경제 상황에 풍요로웠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세계가 1990년대에 빠져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1990년대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까? 특히 90년대에 태어나 20대라는 청춘을 보내고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90년대는 각종 매체에서 추억팔이로 보여주는 이미지로서, 소비를 조장하는데 이용될 뿐이다.

심지어 장르도 한정적이어서 대중문화와 패션을 제외한 다른 분야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X: 1990년대 한국미술’ 전에서는 1990년대의 한국 미술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당시 미술계에 막 발을 들인 X세대 작가들의 작품과 전시를 재현함으로써 90년대 한국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한다.

‘X: 1990년대 한국미술’ 전 포스터

‘X: 1990년대 한국미술’ 전 포스터


아쉽게도 전시는 작품을 나열하는 것에 그쳐, 팸플릿에서 말하는 1990년대 한국 미술만의 시대정신과 의의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 90년대 문화가 생소한 젊은 세대에게 당시의 작품을 직접 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과 그 안에서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전시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X: 1990년대 한국미술’ 전시전경. 90년대에 주목 받았던 전시를 그대로 재현한 섹션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제작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촬영: 김상태)

‘X: 1990년대 한국미술’ 전시전경. 90년대에 주목 받았던 전시를 그대로 재현한 섹션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제작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촬영: 김상태)


몇몇 작품은 1990년대 한국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Sasa[44]의 ‘1996 (문학의 해)’는 당시 신문기사와 잡지를 크게 확대·인쇄한 작품이다. 신문기사를 읽듯이 찬찬히 살펴보면 1990년대의 한국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모순되어 있으며, 부정부패가 넘치는 사회인지 알 수 있다. 이제서야 보이는 것이겠지만, 신문 기사의 내용은 마치 점괘처럼 2017년-현재를 예측하는 단서가 된다. 갑자기 세워진 역사가 없듯이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세워진 날들이다.

윤동천 작가의 ‘그림-문자-공공’은 1998년 일민미술관의 전시를 재현한 작품으로, 12장의 인쇄물에 12개의 문구가 적혀있다. 관람객은 그중 좋아하는 문구를 하나 선택하여, 이유를 설문지에 적음으로써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작가가 선정한 12개의 문구는 2017년에 사는 우리가 봐도 공감된다. 특히 ‘다시 뛰는 한국인, 뛰는 놈만 죽도록 뛰는 한국인‘이라는 문구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느끼게 해준다.

Sasa[44], ‘1996 (문학의 해)’, 347x1800cm, 2006, 2016년 재제작

Sasa[44], ‘1996 (문학의 해)’, 347x1800cm, 2006, 2016년 재제작


윤동천, ‘그림-문자-공공’, 가변크기, 1998, 2016년 재제작

윤동천, ‘그림-문자-공공’, 가변크기, 1998, 2016년 재제작


이와 함께 1990년대 한국 미술의 주요 특징인 소그룹의 작품과 전시가 재현되어 있다. 여러 작가가 하나의 주제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소그룹 활동으로 인해 다양한 매체 및 장르가 예술과 융합된다. 디자인도 그중 하나로, 안상수·이기섭·금누리 등 이제는 디자인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디자이너의 초창기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선배들의 작업은 새롭게 다가온다.

진달래(디자인 소그룹), 포스터 11종, 1995

진달래(디자인 소그룹), 포스터 11종, 1995


금누리, ‘내 .예 .술 .한 .잔 .받 .게’, 1997-2015, 캔버스 위 프린트 8점은 2016년 재제작

금누리, ‘내 .예 .술 .한 .잔 .받 .게’, 1997-2015, 캔버스 위 프린트 8점은 2016년 재제작


여성 작가로 구성된 30캐럿의 페미니즘 작품도 눈에 띈다. 성(性)을 넘어 한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고민하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고민했던 작품들은 지금 봐도 해석할 가치가 크다. 2016년의 한국은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이 쟁점이 되던 해였다. 이는 1990년대부터 시작한 여성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넘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이야기다.

염주경, ‘무제’, 300x300x250cm, 1994, 2016년 재제작.

염주경, ‘무제’, 300x300x250cm, 1994, 2016년 재제작.


하민수, ‘金氏가 李氏를 낳고, 李氏가 河氏를 낳고, 河氏가 申氏를 낳고...’, 500x260cm, 1994

하민수, ‘金氏가 李氏를 낳고, 李氏가 河氏를 낳고, 河氏가 申氏를 낳고...’, 500x260cm, 1994


이 밖의 다른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1990년대나, 2017년이나 거의 다를 바가 없다. ‘X: 1990년대 한국미술’ 전은 1990년대의 한국 미술을 고찰하기보다는, 우리가 딛고 서서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과거를 통해 돌아보게 하는 전시다.

70년대 생이든, 90년대 생이든,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 현재와 미래는 과거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거를 해석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누군가가 던져준 추억만을 보지 말고, 각자의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생각하면 된다. 그뿐이다.


에디터_ 허영은( yeheo@jungle.co.kr)
자료제공_ 서울시립미술관(SeMA, sema.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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