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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셀·피·다·반·사

월간 사진 | 2017-08-22

 

 

셀피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렘브란트, 고흐,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을 그렸고, 신디 셔먼, 낸 골딘은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예술가들이 셀프 포트레이트를 통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해왔다면 오늘날 대중에게 셀피는 어떤 의미일까. 21세기를 대표하는 문화현상이 된 셀피에 관한 짧은 단상.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Vincent Van Gogh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Vincent Van Gogh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나르시시즘과 정체성 탐구 사이

2013년 셀피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출판사에 의해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지 4년이 흘렀다. 예술계에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모습을 예술의 소재로 삼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오늘날 자기표현 방식의 최전선에 있는 셀피 문화를 과연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진 집단적 정신 증후군으로 치부해야만 할까.

따지고 보면 셀피의 역사는 예술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섬세함이 돋보이는 자화상을 그렸고, 빛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는 평생 10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37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다 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불우했던 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Frida Kahlo),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극사실주의 화가 척 클로스(Chuck Close) 역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자화상으로 표출시킨 작가다. 

〈22544_CLOSE〉, 하이퍼리얼리즘의 대표작가 척 클로스의 자화상.

〈22544_CLOSE〉, 하이퍼리얼리즘의 대표작가 척 클로스의 자화상.


영국 아티스트 마크 퀸(Marc Quinn)은 〈Self〉 시리즈로 현대미술사에 가장 큰 충격을 던진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91년 5년 동안 모은 자신의 혈액 4.5L를 이용해 두상을 만들었다. 이 시리즈는 5년마다 제작되며 현재까지 총 다섯 작품이 완성되었다. 작가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서 보관해야 하는 이 까다로운 작업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 생명의 나약함과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셀피라는 단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진 역사 속 셀프 포트레이트는 어떤 모습일까. 로버트 코닐리어스(Robert Cornelius)는 카메라를 이용해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은 최초의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78년 전인 1839년, 무표정한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섰다. 수백 년이 지난 후 셀피가 일상이 될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 순간이다. 1840년 이폴리트 바야르(Hippolyte Bayard)가 촬영한 ‘비탄에 젖은 자화상’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 최초의 셀프 포트레이트로 기억된다. 사진 발명이라는 엄청난 공을 루이스 다게르(Louis Daguerre)에게 빼앗긴 것을 비관해 비통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시신처럼 연출해서 기록한 작품이다. 

그 후로도 셀프 포트레이트를 통해 예술적 감수성을 표출한 사진가는 수없이 많다. 남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선 클로드 카운(Claude Cahun),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마음껏 펼친 만 레이(Man Ray),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기록한 일스 빙(Ilse Bing), 세상과 직접적으로 소통을 거부했지만 카메라 앞에서만은 자유로웠던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등이 셀프 포트레이트의 매력에 일찌감치 눈 뜬 사진가들이다.

현대미술로 눈을 돌려보면 사진을 읽는 재미는 배가 된다. 〈무제 영화 스틸〉 시리즈를 시작으로 현대미술 담론의 중심에 선 신디 셔먼(Cindy Sherman)을 비롯해, 남자 친구에게 폭행을 당해 시퍼렇게 멍든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기록한 낸 골딘(Nan Goldin), 저명한 아티스트 혹은 자신의 가족으로 분장한 다음 카메라 앞에 선 질리안 웨어링(Gillian Wearing), 살아있는 조각이란 개념을 내세워 스스로를 작업의 전면에 내세운 듀오 아티스트 길버트 & 조지(Gilbert & George), 자전적인 이야기를 예술의 소재로 사용한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등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트레이시 에민은 자전적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주로 사용해온 작가다. 지폐와 동전을 온 몸으로 움켜쥐고 있는 파격적 이미지의 작업 〈I have got it all〉.

트레이시 에민은 자전적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주로 사용해온 작가다. 지폐와 동전을 온 몸으로 움켜쥐고 있는 파격적 이미지의 작업 〈I have got it all〉.


그들이 사진이란 매체를 사용한 것은 공통적이지만 표현 방식과 작품 속에 담아낸 이야기는 저마다 다르다. 주목할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셀프 포트레이트를 이용해 작품을 남긴 작가 중 유독 여성 사진가가 많다는 점이다. 그들이 전부 남성이 중심이 된 사회가 규정한 여성상을 비판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국내 작가로는 작업 초기 셀프 포트레이트를 중심으로 과감한 사진적 실험을 진행한 구본창, 뉴욕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인종 사이에서 촬영한 작업을 통해 정체성을 탐구한 니키 리, 아찔한 높이의 빌딩 끝에서 촬영한 셀프 포트레이트로 위태로운 청춘의 심경을 대변한 안준,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감각적인 셀프 포트레이트로 가시화한 윤아미,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셀프 포트레이트를 통해 보여준 재일교포 사진가 김인숙 등이 있다. 


셀프 포트레이트를 대하는 예술가의 자세

셀피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예술계가 셀피라는 전 지구적 사회 현상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지난 봄 영국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 셀피를 주제로 한 대규모 그룹전 〈From Selfie to Self-Expression〉이 열렸다. 21세기 주요 화두로 떠오른 셀피를 예술사 전반에 걸쳐 되돌아볼 수 있도록 기획한 대형 전시였다. 

렘브란트와 반 고흐 같은 세기의 아티스트가 남긴 자화상부터 신디 셔먼, 트레이시 에민 같은 동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조니 브리그, 사이몬 로버트, 주노 칼립소 등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영국 사진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총망라한 아티스트들이 자신을 작품 속에서 어떻게 대상화하고 표현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전시로 화제를 모았다. 

전시에 참여한 조니 브리그(Jonny Briggs)는 작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젊은 아티스트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작업을 통해서 가족 간의 관계, 유년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 진짜와 가짜의 경계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이 모든 작업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고 밝혔다.

〈Box framed in black with photo mount〉,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대상으로 다채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영국 아티스트 조니 브라그의 사진 작업.

〈Box framed in black with photo mount〉,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대상으로 다채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영국 아티스트 조니 브라그의 사진 작업.


아울러 셀피를 주제로 한 사진공모전을 향한 반응도 뜨거웠다. 총 113개국에서 1만4천여 장의 셀피가 응모되었을 정도다. 특히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셀피를 주제로 다양한 관점과 형식의 작품을 보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SNS에 범람하는 보여주기 식 셀피와는 차별화된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셀피를 주제로 한 전시가 인기를 끌고 있다. 8월 4일까지 사비나 갤러리에서 열리는 〈#셀피-나를 찍는 사람들〉전은 강은구, 고상우, 한경우, 김가람 등 국내외 작가들이 셀피를 주제로 완성한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고 온라인 퍼포먼스를 진행해 화제를 모은 아말리아 울만(Amalia Ulman)의 사진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아말리아 울만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진,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사진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미술관에서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조명을 갖춘 김가람 작가의 설치 작품,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놓은 물나무 사진관의 ‘자화상 사진관’ 프로젝트, 셀피용 카메라를 전시장 입구에서 대여해주고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마음껏 촬영할 수 있도록 배려한 카시오 카메라 이벤트 등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마련되었다. 

덕분에 전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10대 청소년부터 4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작품을 즐기며 스스럼 없이 현장에서 셀피를 찍었다.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셀피가 지적이지만 난해하고, 평등한 듯 보이지만 권위적으로만 느껴졌던 미술관을 새로운 놀이터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그렇다면 일반 사람들은 셀피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셀피를 찍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셀피를 대하는 대중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듯 하다. 셀피란 단어와 함께 연상되는 단어는 바로 나르시시즘(Narcissisim)이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 미소년 나르키소스에서 유래된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실제로 자기애가 강한 이들을 거론할 때 주로 사용된다. 

힐러리 클린턴을 배경삼아 셀피를 찍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셀피에 열광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을 배경삼아 셀피를 찍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셀피에 열광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2016년 캐나다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의하면, 셀피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타인이 촬영해 준 사진보다 자신이 직접 찍은 셀피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다고 한다. 그들은 촬영한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히 삭제하고 다시 카메라 앞에서 원하는 표정과 포즈를 짓는다.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셀피 전용 앱과 포토샵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되었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가 완성되면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일종의 자기 과시와 허세 욕구가 셀피 속에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셀피의 주요 소비층이 20~30대 젊은 여성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여행을 가거나 값비싼 레스토랑 혹은 힙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새로 산 옷과 명품 가방을 자랑하는 용도로 셀피를 이용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온라인상에 자기만족을 넘어선 일종의 보여주기 식 셀피가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SNS에 올린 셀피를 통해 셀스타(셀피와 인스타그램의 합성어)에 등극하는 일반인도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망 또는 무의식이 말을 통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만약 21세기에 살았다면 인간의 욕망이 셀피를 통해 표출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셀피가 젊은 여성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40~50대 중년층도 셀카봉을 들고 자연스럽게 셀피를 찍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20세기형 가족사진 촬영의 전형이었다면, 21세기형 가족은 셀카봉을 들고 ‘김치’를 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유명인들의 셀피가 갖는 파급력은 상당하다. 2014년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국 영화배우 엘렌 드제너러스는 삼성이 제공한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줄리아 로버트, 케빈 스페이스, 메릴 스트립 등 거물급 할리우드 스타를 한 화면에 담은 그룹 셀피를 촬영했다. 이 사진은 단 하루만에 2천8백만 리트윗 되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스마트폰을 제공한 삼성은 어마어마한 광고 효과에 만족해 엘렌 드제너러스가 선정한 자선단체에 상당히 큰 액수의 후원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비행사 아키 호시드가 촬영한 셀피 역시 인상적이다. 아키 호시드는 강렬하게 빛나는 태양을 배경삼아 우주 공간에서 셀피를 촬영했다. 그의 헬멧에 비춰진 지구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

반면 셀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른 인사도 있다.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2013년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헬레 토르팅-슈미트 덴마크 총리와 함께 찍은 셀피로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엄숙해야 할 영결식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셀피를 찍고 있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셀피를 찍고 있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국내에서도 셀피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선 연예인이 있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 설리는 노브래지어 차림의 셀피, 연인과 함께 찍은 셀피 혹은 엽기적인 포즈로 촬영한 셀피를 SNS에 올리면서 과감한 자기 표현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설리의 SNS를 팔로잉하고, 그녀의 셀피에 관한 기사를 클릭하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유명 연예인의 셀피가 대중이 갖고 있는 집단적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셀피로 인해 발생한 법적 분쟁 사례도 흥미롭다.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 정글에서 한 장난꾸러기 원숭이가 사진가 데이비드 슬레이터(David Slater)가 촬영 중이던 카메라를 빼앗아서 셀피를 남겼다. 위키피디아는 이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했고 사진가 데이비드 슬레이터는 자신의 저작물을 위키피디아가 침해했다며 저작권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저작권 등록 대상은 저작자가 인간인 저작물에 한정된다.’는 이유로 위키피디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뉴스에 등장하는 셀피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분별한 셀피가 원인이 되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2011년 미국에서는 세 명의 청소년이 달려오는 기차를 배경삼아 셀피를 찍다 사망했고, 2015년 러시아에서는 젊은 여성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포즈로 셀피를 찍는 도중 실수로 발사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셀피의 현재 그리고 미래

과연 셀피를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봐야 할까? 영화 속 셀피 촬영 장면을 떠올려본다. 여성 버디 무비의 걸작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속에는 두 여성 주인공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이용해 셀피를 찍는 장면이 등장한다. 고단한 일상에서 탈출한 주인공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찍은 이 사진은 영화 포스터에 사용되었을 정도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The Last Word)〉 속에 등장하는 셀피 촬영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광고 에이전시 대표인 주인공은 까칠한 완벽주의자다. 그녀는 신문에 실리게 될 자신의 부고 기사를 미리 컨펌하기 위해 전문 기자를 고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사적인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아픔과 고민을 갖고 있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되고 행복을 느끼는 순간 어김없이 셀피를 찍는다. 두 영화 외에도 행복한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셀피로 증명하는 영화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보여주기 식 셀피와 공해로까지 느껴지는 광고가 SNS를 장악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SNS 속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온라인 상에서 소비되고 있는 셀피 이미지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피의 인기는 여전히 건재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셀피(Selfie)란 단어를 검색(2017년 7월 10일 기준) 하면 307,564,109란 어마어마한 숫자의 이미지가 나타나고, 셀피용 스마트폰 앱과 셀피에 최적화된 카메라가 끊임없이 출시되고 있다.

프리다 칼로에게 자기 자신은 가장 좋은 작품의 소재였다.

프리다 칼로에게 자기 자신은 가장 좋은 작품의 소재였다.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은 ‘자기애는 인간 심리의 기본적인 잠재력으로 성장 발달에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라고 보았다. 셀피를 통해 증명되고 있는 현대인의 자기애 표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렘브란트는 “알고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그러면 모르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고, 프리다 칼로는 “자주 혼자이고 가장 잘 아는 대상이므로 나는 나를 그린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셀피를 무기삼아 예술계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에디터_ 김민정
디자인_ 전종균

이미지 제공_ 영국 사치 갤러리(www.saatchigallery.com), 사비나 미술관(02-736-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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