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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퀴어문학을 읻다

2018-02-02

 


 

한국에서 LGBT(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문화는 음지에 가려져 있다. LGBT라는 단어가 쓰인 것도 불가 얼마 전이 였을 뿐더러 동성애 코드가 삽입된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는 방영 내내 동성애 조장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조기 종영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다고 계속 어둠 속에 있을 수만은 없다. 작년 최초의 게이 매거진 〈뒤로(DUIRO)〉가 창간되고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다양한 디자인의 퀴어 제품이 펀딩에 성공하면서 더는 음지에서 활동하는 문화가 아닌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해야 할 문화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변화와 함께 읻다출판사에서 퀴어 문학 출판 브랜드 큐큐가 설립됐다. 

 

제아무리 많이 개방됐다고 하나 보수적인 한국에서 퀴어 문학 전문이라니? 지하에서 선비들이 거품 물고 일어날 일이다. 

 

#읻다는?


Jungle(이하 J) 퀴어 문학 전문 출판사 큐큐를 만든 읻다 출판사는 어떤 곳인가요?

읻다 기존 출판 시스템에서는 출간되기 힘들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2015년 3월, 12명의 출판노동자가 모여 만든 출판사입니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을 내어 노동과 자본을 공유하는 형태로 시작되었죠. 지난 2년간 괄호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일을 주도적으로 맡아서 진행할 사람들이 필요해져서 2017년부터 네 명이 상주하여 일하는 회사로 발전했습니다. 

작년에 '읻다 시인선'과 새로운 브랜드 '큐큐'를 런칭했으며, 저희가 내는 책을 읽고 공감해줄 독자를 더 많이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즐겁게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J 읻다라는 이름이 생소합니다. 담긴 의미가 있나요?

읻다 순우리말로 '좋다' '곱다' '아름답다'를 뜻하는 동시에 ‘잇다’ ‘있다’ 등의 의미로 확장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짓게 됐습니다. 

독자와 책을 잇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책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읻다 출판사의 낭독회 포스터

읻다 출판사의 낭독회 포스터


 

J 출판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낭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더라고요. 

읻다 낭독회는 읻다를 알리고 독자들과 가깝게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서 기획되었습니다. 매달 세 번째 목요일에 열리고 있죠.

참석자는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텍스트를 새롭게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들이 가져와 읽는 다양한 텍스트들은 독서의 다양한 형태를 엿볼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아카데미는 현 출판 시스템 안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책을 낼 수 있는 방편이자, 저자와 역자 및 독자와의 소통의 일환으로서 시행하게 됐습니다. 

현재는 인문학과 외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J 흑백이지만 추상적인 패턴의 괄호 시리즈가 눈에 띄었어요.

읻다 괄호 시리즈는 한 사람의 인생 전반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는 책,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번역으로 재조명되어야 하는 시와 소설, 철학 텍스트를 선별해 기획한 시리즈에요.

표지 작업은 최성경 디자이너가 시리즈 전체의 디렉팅을 맡아 김마리 디자이너와 함께 진행했죠. 전체 디렉팅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시리즈의 흐름 안에서 책의 특성이 살아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거였어요. 

괄호 시리즈는 분야나 주제를 넘어 새로운 고전의 세계를 열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전체적인 흐름을 잃지 않고 개성이 강한 책을 하나로 묶을 방법이 무엇일지를 많이 고민하고 작업했어요.

표지는 기능적인 판형과 단순하고 고전적인 그리드, 흑과 백의 대비로 시리즈의 흐름을 만들었고, 추상적이고 불규칙한 패턴으로 책의 개성과 정체성이 시각적으로 리듬감 있게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괄호 시리즈 표지

괄호 시리즈 표지 

 

 

J 시인선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읻다 괄호 시리즈 기획이 끝나면서 앞으로 읻다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할지, 그걸 가능하게 하는 책은 뭘지 고민했습니다. 

저작권 관련 현행법이 제정되면서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 나간 세계 시인선에 눈을 돌렸습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출판계에서는 외면 당하고 있지만, 이전까지 많은 한국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외국 시에 대한 편견과 언어의 경계를 지우고 함께 읽을 수 있는 시를 한국어로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기획하였습니다.

 

시인선 표지

시인선 표지


 

#퀴어 문학이요?


J 퀴어 문학 출판 브랜드 큐큐를 설립한 이유가 있을까요?

읻다 저희가 출간하는 도서들은 출판시장에서는 외면받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에요. 이런 작지만 특별한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고 바라고 책을 만들어 왔어요. 큐큐도 이런 연장선에 있어요. 퀴어의 목소리를 통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큐큐의 첫 책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큐큐의 첫 책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J 사실 한국에서 동성애 문제는 굉장히 민감하잖아요. 큐큐를 런칭하고 어려움은 없었나요?

읻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심각한 이슈는 없어요.

첫 책인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을 출간하고 온라인과 낭독회에서 퀴어 시선집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해준 독자, 본인이 퀴어라 퀴어 작가들의 시를 읽을 때 공감이 된다는 독자 등 긍정적으로 피드백을 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어요.

특별히 본인을 60대 게이로 소개한 분은 본인은 할 수 없던 일을 시작해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카펜터와 하트 크레인의 시가 특별히 좋았는데 번역된 다른 책이 없어서 혹시 낼 생각이 있냐고도 물어보시더라고요. 

또 저희 덕분에 힘이 난다고도 하셨는데, 오히려 그 응원의 말이 큰 힘이 되었어요.

 

J 퀴어 문학은 어떻게 선정되나요?

읻다 예술성과 문학성, 대중성 등을 갖춘 퀴어 문학을 선별해 큐큐 클래식 시리즈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알려지지 않은 문제작 〈텔레니〉와 〈레딩 감옥의 노래〉, 예술가들의 예술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자전적인 소설 〈Q.E.D / 세 개의 삶〉, 미시마 유키오의 〈금색〉, 올랜도의 실제 모델인 비타 색빌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의 서간집 〈비타와 버지니아〉, 〈올랜도〉 등 세계문학의 클래식으로서 지금까지도 동시대와 호흡하고 있는 작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러시아 최초의 퀴어문학인 미하일 쿠즈민의 〈날개〉, 세계 LGBTQI 추천 리스트에서 항상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리타 메이 브라운의 〈루비 프루트 정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자전소설 〈순수와 불순〉 등 우리에게 아직 낯설지만 퀴어 문학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기획되었습니다.

 

J 현재 크라우드 펀딩에 올라온 오스카 와일드 책을 보았습니다. 감각적인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읻다 괄호 시리즈를 작업한 최성경 디자이너가 작업한 거에요.

오스카 와일드의 정체성(작가, 유미주의자, 퀴어)을 드러내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가 생존했을 당시에 출간된 책들과 이미지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작업했습니다. 

특별히 비어즐리가 작업한 〈살로메〉는 공작 깃털 이미지를 패턴으로 차용한 책인데 오스카 와일드를 표현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현대적인 변주를 고민해 담았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텔레니〉와 〈레딩 감옥의 노래〉 표지

오스카 와일드의 〈텔레니〉와 〈레딩 감옥의 노래〉 표지


 

J 퀴어 문학 출간 말고 진행할 다른 퀴어 프로젝트가 있나요?

읻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큐큐의 퀴어문학 클래식은 퀴어 문학의 뿌리를 조명한다면, 6월 말경에 출간될 한국퀴어단편선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과 함께 현재의 퀴어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J 앞으로 읻다(큐큐)는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요?

읻다 단 한 명이라도 운동이나 행동강령이 아닌 감화의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곳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 2018년에는 총 10권의 도서를 출간할 예정이에요.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가치 있는 책, 읽을 만한 책을 만들고 그 책들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사진제공_ 읻다출판사(www.ittaproj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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