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03
처음 흑백 TV가 보급되던 시절, 온 동네를 뒤져도 TV를 갖고 있는 집은 고작 한두 곳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의 박치기를 보며 환호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화질 좋은 LCD, PDP 화면에, 적게는 30인치부터 대형TV까지 영화관의 스크린 못지않은 TV를 보유하고 있는 집들이 늘고 있다. 흑백브라운관 TV에서부터 LCD, PDP TV까지 TV가 변화해온 길을 짚어보았다.
글│ 정선미
자료제공│ LG전자, KBS 방송박물관
결혼 혼수품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대형 TV다. 40~50인치 TV의 매출이 2002년 월드컵 이후 급속히 상승하고 있어 앞으로도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TV는 움직이는 물체를 자연 그대로 생생하게 표현해야 특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TV 구입 시 가장 고려하는 부분이 바로 화질이다. 자연색을 그대로 표현하는 능력을 색 재현력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방송방식(NTSC)으로 전송된 화면의 색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100%로 볼 때 PDP는 94%, 브라운관인 CRT는 75%, LCD TV는 78~78% 수준으로 색 재현력은 PDP가 가장 자연과 가까운 색을 재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브라운관과 PDP, LCD 등 각각의 TV 화면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TV는 금성전자(현 LG전자)에서 1966년 출시한 19인치 TV 수상기 VD-191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TV 방송이 발족한 1956년 5월, 당시는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TV를 부유층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66년 출시할 때만 해도 국산 TV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판매에 어려움이 있었다. 최초 상업 TV 방송이 됐던 1956년 당시 가시청지역은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6~24km였고 개국 초에는 시내의 주요상점에 RCA 21인치 수상기를 설치해 놓음으로써 일반 대중에게 TV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높이기도 했다.
KBS 방송박물관에 따르면 당시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흑백 TV VD-191을 생산했지만 전자제품은 사치품이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근본 생각과 상당수의 언론인, 정치인, 지식층까지 TV국산화를 ‘사치풍조를 조장한다’고 반대하던 시절이었다. 이때까지 외제 TV제품에 익숙해 있던 시청자들에게 처음으로 대하는 국산 TV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대통령의 월급이 7만8천 원일 때 19인치 국산 TV가격은 6만8천 원을 시작으로 8만7천 원의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달려 추첨을 통해 판매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VD-191이란 모델 이름은 진공관식 19인치 TV 제 1호를 의미한다. 그 이후 탄생한 것이 트랜지스터식 흑백 TV 수상기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개발, 생산한 IC 트랜지스터식 19인치 흑백 TV 수상기는 회로의 IC화에 따라 소비전력이 절감되는 동시에 TV 수상기의 신뢰성도 한층 향상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TV는 뚱뚱하고 곡면이 도드라진 브라운관 TV 일색이었다. 그러나 평면 TV와 LCD, PDP TV가 보급되면서 브라운관 TV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어 최근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브라운관 TV를 ‘구형’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LCD와 PDP TV 등 평판TV의 등장으로 퇴출당할 것 같았던 ‘배불뚝이’ 브라운관 TV가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슬림화를 통해 다시 시장의 사랑을 되찾고 있다. 이에 따라 TV 업계도 최근 경쟁적으로 슬림 브라운관 TV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SDI와 LG필립스디스플레이는 최근 해외 생산 라인을 확충하거나 올해 생산목표를 작년의 2배 이상 높이는 등 슬림 브라운관 생산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삼성SDI는 말레이시아 법인에서 21인치 빅슬림 양산을 시작했으며 울트라 빅슬림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슬림 브라운관의 생산 거점을 부산과 중국, 멕시코, 헝가리에 이어 말레이시아까지 확대해 글로벌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삼성SDI는 올해 브라질 공장에도 빅슬림 라인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2005년 10월부터 두께 35.2㎝의 21인치 빅슬림 브라운관을 양산하기 시작했고 작년 6월에는 두께를 29.9㎝까지 줄인 울트라 빅슬림을 개발해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와 삼성SDI는 올해 빅슬림 TV를 1천만 대 이상 판매하기로 목표를 설정하는 등 협력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LG필립스디스플레이도 최근 올해 슈퍼슬림(두께 35㎝)과 울트라슬림(두께 29.6㎝) 등 슬림 브라운관 생산목표를 작년 400만 대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천만 대로 올려 잡았다. 회사 관계자는 “슬림 브라운관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함에 따라 슬림 브라운관의 판매를 올해 1천만 대에서 2010년에는 2천만 대 수준까지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TV 업계가 슬림 브라운관 생산을 늘리는 것은 슬림 브라운관 TV가 ‘슬림’이라는 현재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가면서도 가격 면에서는 같은 사이즈의 LCD TV에 비해 약 40% 이상 저렴하고 화질 면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운관 TV는 가정의 거실에 LCD TV 등 평판TV가 들어가면서 자리를 잃는 듯 했지만 두께를 30㎝ 이하까지 줄이는 기술 혁신을 통해 안방이나 서재 등에서 세컨드 TV로 쓰이면서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또 탁월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동과 아시아 등 신흥 시장과 북미 시장 등에서도 평판TV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브라운관 TV업계는 전 세계 슬림 TV의 수요가 올해 2천400만 대에서 2010년에는 2배에 가까운 4천800만 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브라운관이 슬림하게 변화하며 소비자들을 찾고 있지만 여전히 LCD나 PDP TV를 선호하는 이들은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각각의 제품들은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나. 일반 브라운관 TV는 두께의 한계가 있지만 화질면에서는 단연 선두다. 그 어떤 방식도 브라운관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리고 모든 방송이나 게임 등은 브라운관이 주는 색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 고화질의 화면을 제공한다. 이런 이유로 일본의 소니사는 아직도 고급형의 대형 브라운관 TV를 새로이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형화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공기관이나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프로젝션 TV는 가격대비 크기에서는 최고를 자랑한다. 과거 브라운관 프로젝션은 화질이 매우 떨어지고 시야각이 좁아 조금만 옆에서 봐도 화면이 보이지 않고 휘도가 낮기 때문에 화면이 어두워 낮에는 시청을 포기하거나 커튼을 쳐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LCD, DLP 프로젝션 TV가 선보여 화면이 밝아지고 시야각이 넓어져 TV 시청에 무리가 없다. LCD TV 화면은 아주 밝고 가벼워 벽걸이 TV로 좋다. 때문에 색감이 화려한 자연다큐멘터리를 많이 방영하고 있다. TV 매장에서 꽃을 다룬 작품, 코발트빛 바다 속을 헤엄치는 여자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LCD TV의 최대 강점인 똑 떨어지는 선명도를 드러내기에 적당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특히 LCD TV로 고화질(HD)급으로 방영되는 요즘 드라마를 보면 그 화사함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이 선명도가 약점이 되기도 한다. 실제보다 더 밝게 표현되는 것 자체가 화질을 왜곡하는 것으로, 밝은 회색이 흰색으로, 어두운 회색이 검정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LCD는 응답속도가 느린 편이기 때문에 화면 잔상이 있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PDP는 대형화면을 위해 새로 개발된 방식의 벽걸이 TV이다. LCD에 비해 무게감이 있고 전력 소모가 많지만 LCD의 단점을 그대로 충족해 주는 방식이다. 같은 화면 면적을 비교할 경우 LCD에 비해서 PDP가 더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요즘 일반 가정에서 구입할 수 있는 크기는 LCD는 40인치가 최대인 반면 PDP는 50인치까지도 구매가 가능하다. 대형 화면 중 가장 CRT(브라운관)에 가까운 화질을 자랑하고 시야각도 넓으며, 화면 밝기도 밝은 편이다. 하지만 LCD와 직접 비교한다면 LCD가 화질이 더 좋아 보인다는 것은 PDP의 최대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TV 시장은 지난해와 같이 LCD TV와 PDP TV 등 평판 TV가 대세를 이루며 전체 TV 시장에서 브라운관 TV를 밀어내고 평판 TV가 50%에 육박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프리미엄 제품인 Full HDTV가 본격적인 시장을 형성하며 업체에 수익성 제고라는 열매를 안겨 줄 것으로 예상된다. 월드컵 특수와 같은 큰 이벤트는 없지만 평판 TV의 성장세가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시장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 하반기에는 Full HD LCD TV가 시장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인치별로는 지난해 주력인 32인치 LCD TV에서 올해에는 40인치대가 성장을 이끌고 PDP TV는 50인치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LCD TV 진영의 대형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PDP TV 진영과 50인치대 시장을 놓고 격돌이 예상된다. 세계시장에서 지난해 시장 1위에 올라선 삼성전자와 선두자리를 빼앗긴 소니의 주도권 싸움도 본격화될 예정이다. 삼성과 소니 등이 LCD TV만으로 올해 1,000만 대를 판매하겠다고 목표를 밝힌 바 있고 LG전자 등도 올해 LCD TV에 주력할 방침이어서 TV 시장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이 펼쳐질 전망이다.
40인치대 시장에서 LCD TV가 판정승을 거두었다면 50인치 TV 시장에서 LCD와 PDP의 경쟁이 올해 최고의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40인치 이상의 대형 TV 시장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상했던 PDP가 지난해 LCD의 가격하락과 기술진보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40인치 이상 TV 시장을 기준으로 2005년 50.3%이던 PDP TV 시장규모가 2006년에는 49%대로 낮아졌다. 하락폭이 크지는 않지만 LCD TV가 선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LCD TV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지난해 세계 TV 시장에서 LCD의 시장점유율은 30.4%에 달하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PDP TV 와 LCD TV 간의 점유율 격차의 감소는 LCD TV 용 모듈가격하락으로 LCD TV의 가격이 하락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42인치급 TV의 경우, 310달러 수준이던 PDP TV 용 모듈과 LCD TV용 모듈의 가격 차이는 최근 150달러까지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에도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될 예정이다.
HDTV의 급성장과 함께 Full HDTV 시장도 급속하게 커질 것으로 보인다. Full HD는 HDTV의 해상도의 두 배 수준인 1080p의 고해상도를 자랑한다. 1080p의 고해상도를 지원하는 Full HD 패널은 2005년 1/4분기 21만7,000대에서 지난해 4/4분기에는 136만2,000대로 늘어났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도 Full HDTV의 비중이 급속하게 빨라지고 있다. 전체 TV 시장에서 1%에 불과했던 Full HDTV가 연평균 140%씩 고속 성장하고 있으며 올해 2.5%에서 2010년에는 21.6%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패널업체들의 Full HD로의 전환과 블루레이 등 차세대 DVD의 대중화가 Full HDTV시대를 앞당기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Full HD화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HDTV 시장에서 매출액 기준 19%의 시장을 차지하여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PDP TV도 올해 상반기부터 63인치 Full HD 제품이 출시될 예정으로 대형 TV 시장에서 Full HD 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질 전망이다. 지난 2004년 55인치 Full HDTV를 출시하면서 앞서가기 시작한 LG전자도 지난해 47인치 Full HDTV에 이어 37인치, 42인치 제품도 출시하는 등 Full HDTV 라인업을 통해 체제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