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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다, 렌윅미술관

이소영 워싱턴 통신원 | 2018-06-20

 


 

미국의 정치도시, 워싱턴 D.C.의 또 다른 이름은 ‘박물관 도시’이다. 백여 개에 이르는 박물관이 도심 한가운데 몰려있기 때문이데,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고스란히 품은 박물관들은 워싱턴 D.C.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루브르 박물관(The American Louvre)’이라 불리는 렌윅미술관(Renwick Gallery)은 계절별로 참신한 특별전을 기획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FoldHaus Art Collective, Shrumen Lumen, 2016

FoldHaus Art Collective, Shrumen Lumen, 2016

 

=Aaron Tayler Kuffner, Gameltron

Aaron Tayler Kuffner, Gameltron

 

 

‘No Spectators: The Art of Burning Man’ in D.C.

현재 렌윅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특별전은 ‘No Spectators: The Art of Burning Man’. 내년 1월 21일까지 이어지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이 전시회는 네바다 주 블랙 락 사막(Black Rock Desert)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의 작품 일부분을 미술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원래 샌프란시스코 베이커 비치에서 사람 모형을 한 거대 나무 조각상을 태우는 것에서 유래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안전상의 문제로 시 정부에서 재제를 했고, 행사 주최자는 네바다 사막으로 장소를 이동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태우는 연례 행사를 계속해왔다. 매년 약 75,000명이 행사에 참여했다.    

 

전시물은 사람 키의 두 배를 훌쩍 넘길 만큼 대규모인데, 동그란 버섯 머리가 부풀었다 납작해졌다를 반복하면서 시각적인 재미를 준다. 작품 안에 설치된 LED 조명은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색으로 변한다. 미래의 인공적인 도시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불타는 인간(Burning Man)’은 완전히 디지털화한 시점의 인간관계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단어이다. 

 

워싱턴 D.C. 도심 한복판에서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네바다 주 사막에서의 신명 나는 축제를 경험해보자. 


감상과 체험의 경계를 넘나들다

이번 렌윅미술관 특별전 작품들의 공통점은 규모가 압도적이라는 점과 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작품 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안전선이 둘러쳐진 여느 미술관의 풍경과는 대조적이다. 볼 수만 있었던 기존 예술작품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작가와 관람객의 틈을 좁혔다. 렌윅미술관은 미술관 내부 사진 촬영을 그저 허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사진 찍기를 권장합니다(Photography Encourged)”라는 표지판에는 ‘#RenwickGallery’라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용 해시테그까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Michael Garlington and Natalia Bertotti, Paper Arch, 2018

Michael Garlington and Natalia Bertotti, Paper Arch, 2018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종이로 만든 문은 가까이서 보면 얼룩말, 여우, 곰 같은 동물들을 반복적으로 배치했다. 안쪽에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거대한 눈동자가 관람객들을 놀라게 한다. 책을 읽을 때 프롤로그를 펼쳐보면 이 책이 앞으로 얼마나 어마어마한 서사로 전개될지 짐작할 수 있다. 렌윅미술관 1층 출입구 앞에 설치된 종이문은 이번 특별전의 프롤로그인 셈이다.    

 

David Best, Temple, 2018

David Best, Temple, 2018

 

 

대형 강의실 크기의 전시실에는 설치미술가 데이비드 베스트(David Best)가 디자인 한 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조각으로 조립된 사원은 복잡한 여러 층의 천장을 통해 햇빛을 투영한다. 사원이란 본디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곳. 렌윅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 또한 자신의 염원을 담은 종이를 이 사원에 남기고 신의 가호를 기원한다. 

 

네바다 주 블랙 락 사막에서 열리는 실제 버닝맨 축제에서는 전시가 끝난 후 사원과 인간 모형, 종이 문 등 조형물들을 모두 태워버린다. 하지만 렌윅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은 축제의 일부분만을 옮겨온 만큼 불을 붙여 태우는 퍼포먼스는 생략한다.   

 

Steven Young Lee, Vase with Landscape and Dinosaurs, 2014, porcelain with pigment and glaze

Steven Young Lee, Vase with Landscape and Dinosaurs, 2014, porcelain with pigment and glaze

 

Steven Young Lee, Peonies and Butterflies, 2013, porcelain, cobalt inlay, gold luster decals

Steven Young Lee, Peonies and Butterflies, 2013, porcelain, cobalt inlay, gold luster decals

 

 

고정관념을 깬 ‘Deconstructed Ceramics’

한국계 미국인 스티븐 영 리(Steven Young Lee) 작가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불량 도자기가 미술관으로 잘못 온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뉴욕주립대학의 알프레드 대학(Alfred University)에서 도예를 전공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할 초기만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실용적인 도자기와 청화백자가 주를 이뤘다. 이후 도자기를 인위적으로 찌그러트린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해 현재는 파괴된 도자기(Deconstructed Ceramics)가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스티블 영 리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선입관이나 신념 체계에 도전하는 것을 즐거워한다”면서 “관람객들이 그들만의 관점과 경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 형태로 감상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의 작품이 도자기에 대한 전통적인 기대를 뒤엎는 순간,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기존 도자기들과는 차별화된 예술이 되었다. 도자기는 대칭과 균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는 철저하게 비대칭, 불균형의 도자기를 작품으로 내놓음으로써 관람객들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마주하는 익숙한 재료인 도자기를 참신하게 비튼 작가의 창의성에 박수를 보낸다. 

 

LeonVillareal, Volume

LeonVillareal, Volume

 

Karen LaMonte, Reclining Dress Impression with Drapery, 2009, glass

Karen LaMonte, Reclining Dress Impression with Drapery, 2009, glass

 

Marco Cochrane, Truth is beauty, 2017

Marco Cochrane, Truth is beauty, 2017

 

렌윅미술관

렌윅미술관

 

 

렌윅미술관은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의 모체로서,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이다. 미국 원주민이자 저명한 은행가인 윌리엄 윌슨 코코란(William Wilson Corcoran)은 산업 발전만으로는 미국의 힘을 보여주기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문화예술 분야 투자에 주력했다. 코코란은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성(Smithsonian’s Castle)과 뉴욕의 성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을 디자인한 건축가 제임스 렌윅 주니어(James Renwick Jr.)와 함께 1858년, 자신이 평생 모은 미술 소장품을 전시할 공공 박물관을 설계했다.

 

렌윅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영감을 얻어 프랑스의 맨사드 지붕과 이중 기둥 양식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다. 19세기 당시 미국 건축물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이었다. 유럽을 연상시키는 건축양식 때문에 렌윅미술관은 ‘미국의 루브르 박물관’이라 불렸다.   

 

미국 최초의 미술 박물관이라는 역사적인 의미와 더불어 건물 곳곳에서 프랑스 건축 양식의 흔적을 찾아보는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위치: Pennsylvania Avenue at 17th Street NW, Washington D.C., U.S.A.

시간: 10:00 a.m.~5:30 p.m. 연중무휴

관람료: 무료

 

글_ 이소영 워싱턴 통신원(evesy0220@gmail.com)

사진출처_ americanart.si.edu/exhibitions/burni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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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워싱턴 #렌윅미술관 

이소영 통신원
워싱턴 D.C.에 거주하며 여러 매체에 인문, 문화, 예술 칼럼을 쓰고 있다. 실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다 쉽고 재미있는 소식으로 디자인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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