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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정보는 오렌지색 - 주황색은 어떻게 1960~70년대 커뮤니케이션의 색이 되었나?

박진아 | 2018-06-25

 

[스토리X디자인 2]

 

1960~70년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유럽에서 디자인 산업은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시대를 맞았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상처와 폐허를 딛고 경제 재건이 무르익으면서 대중들의 생활은 나날이 윤택해졌다. 농촌에서 일자리와 도시생활을 찾아 올라온 인구들로 도시들은 나날이 커지고 활기차졌고, 국민들은 사실상 완전고용을 누리며 재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1970년대 디자인의 팝 미학이 응집된 ‘Pop 70’ 라디오. 독일 전자제품 제조업체 블라우푼크트(Blaupunkt) 생산,1969/70년 출시. Photo: ⓒ Miriam Raneburger

1970년대 디자인의 팝 미학이 응집된 ‘Pop 70’ 라디오. 독일 전자제품 제조업체 블라우푼크트(Blaupunkt) 생산,1969/70년 출시. Photo: ⓒ Miriam Raneburger

 

 

 

우주, 미래, 필굿(feel good)의 시대

1960년대 미국의 달 착륙 성공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들뜬 기분과 희망을 디자인 제품으로 표현했다. 미국 TV는 1966년부터 〈스타트렉(Star Trek)〉 시리즈를 방영하기 시작했고 거장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1968년에 미래 공상과학영화 〈2001 우주 오디세이〉 영화를 발표하며 미래 우주 세계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디자인도 그 같은 대중문화를 반영했다. 예컨대 필립스 전자의 ‘UFO’ 레코드플레이어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기념하여 디자인된 역사적 아이콘이다.

 

UFO POMPON 레코드플레이어. 디자이너 : Patrice Dupont, 1969년, 네덜란드 필립스 생산. Photo: ⓒ Miriam Raneburger

UFO POMPON 레코드플레이어. 디자이너 : Patrice Dupont, 1969년, 네덜란드 필립스 생산. Photo: ⓒ Miriam Raneburger

 

 

유럽의 크리에이티브들은 1960년대에 미국서 건너온 아폴로 달 착륙 성공을 목격하며 ‘우주 시대(Space Age)’ 미래주의 비전과 ‘플라워 파워’ 히피 문화의 자유, 개인주의, 환상적 분위기에 깊이 매료됐다. 1950~60년대 유럽 디자이너들이 제조업을 위한 대량생산과 기능성 위주의 산업디자인을 추구했다면, 1970년대는 미국에서 수입되어 온 팝 아트 미학으로부터 영향받아 한층 자유분방하고 개인적 창조력이 돋보이는 미학을 소비자 제품에 입혀 표현했던 다채로운 산업디자인의 시대였다고 평가받는다.

 

POP, 플라스틱, 감성 디자인의 시대

1960년대 전자 통신 분야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진보가 낳은 낙관적이고 신바람 나는 분위기는 유럽의 디자이너들에 의해 1970년대로 이어져 나갔다. 사무 노동자 수가 산업·제조업 노동자 수보다 많아지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났다. 이탈리아의 거장 디자이너 에토레 솟사스(Ettore Sottsass)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일상 디자인 용품이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단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에 익숙해졌다.

 

놓고 보고만 싶지 쓰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타자기. 크고 무거운 기존 타자기를 개선하여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으로 디자인되었다. 에토레 솟사스가 디자인한 타자기의 여왕 ‘발렌타인(Valentine)’ 타자기. 올리베티 사 생산, 1969년. Photo: ⓒ Miriam Raneburger

놓고 보고만 싶지 쓰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타자기. 크고 무거운 기존 타자기를 개선하여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으로 디자인되었다. 에토레 솟사스가 디자인한 타자기의 여왕 ‘발렌타인(Valentine)’ 타자기. 올리베티 사 생산, 1969년. Photo: ⓒ Miriam Raneburger

 

 

그런가 하면 1970년대는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도 매출 증대를 꾀하기 위한 전략으로써 이전 보다 한결 세련되고 이론화된 기법이 대중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널리 실험된 때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마케팅 전문가들은 학술지에 출판된 심리학 이론과 설문 데이터를 마케팅에 일상적으로 응용했다. 예컨대 맥도널드를 위시로 한 글로벌 체인 레스토랑들은 너도나도 갈색-주황색-노란색 일색의 로고를 쓰기 시작했는데 따뜻한 색이 식욕을 자극한다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독일 전자제품 제조업체 블라우푼크트(Blaupunkt)의 한스 바그트(Hans Vagt)와 페터 바네르트(PeterBannert)가 디자인한 ‘팝 70’ 라디오는 1970년대 초엽 대중 소비자용 가전제품 디자인의 전형의 하나로 꼽힌다. 형태는 1960년대 말 미국 팝 아트 비주얼을 표현했고, 소재는 저렴하고 조형이 쉽고 매력적인 20세기 신소재의 대명사 플라스틱을 썼다.

 

오렌지색 타자기는 올림피아(OLYMPIA) 사의 ‘트래블러 딜럭스(Traveller Deluxe)’ 휴대용 타자기, 1970-71년 독일 생산. Photo: ⓒ Jana Madzigon

오렌지색 타자기는 올림피아(OLYMPIA) 사의 ‘트래블러 딜럭스(Traveller Deluxe)’ 휴대용 타자기, 1970-71년 독일 생산. Photo: ⓒ Jana Madzigon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업디자인계는 스타일 면에서는 모던 하면서도 잘 작동하는 이탈리아식 기능주의를 추구하며 스타일리시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 예컨대 당시 독일의 가전제품 제조업체 브라운(Braun)에 버금가는 이탈리아의 가정용 가전제품 제조업체 브리온베가(Brionvega)는 마르코 자누소(Marco Zanuso)와 리쳐드 자퍼(Richard Sapper)의 디자인으로 ‘큐브 TS505’ 라디오를 선보여서 라디오 디자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두 개의 주사위처럼 생긴 큐브를 펼쳤다 접었다 할 수 있도록 고안된 클래식 휴대용 라디오 디자인이다.

 

1970년대의 팝 미학은 전 세계 공통의 글로벌 미학으로 평준화되어 일본의 대량 산업 소비재 및 전자제품 디자인에서도 등장하는 인류 공통 디자인 언어가 되었다. 1970년대에 일본에서 등장한 벨트론(Weltron)의 가전제품은 우주 판타지를 유희적으로 디자인에 반영시킨 대표적인 예다. 우주인 헬멧, 우주기지, 날으는 우주비행체 같은 오브제를 장난스러우면서도 감성적으로 스타일링하여 이때까지 서구 제품을 ‘베껴서 싸게 만들어 파는’ 나라란 오명을 씻어내렸다. 미국이나 유럽산 전자제품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며 서구 시장을 강타하며 일본 전자제품을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브리온베가 ‘라디오 큐브 TS505a’ 는 라디오 디자인의 영원한 클래식이 되었다. 1970년대 초 생산. Photo: ⓒ Miriam Raneburger

브리온베가 ‘라디오 큐브 TS505a’ 는 라디오 디자인의 영원한 클래식이 되었다. 1970년대 초 생산. Photo: ⓒ Miriam Raneburger

 

 

1970년대가 되자 1960년대를 수놓은 막연한 낙관주의와 밝고 가벼운 희희낙락함은 사그라들고 사람들은 한층 진지하고 엄숙해졌다. 시대를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반영하는 패션도 곧바로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다. 대중 패션은 어딘지 모르게 침체되고 차분한 ‘가을풍’ 색채를 띠었다. 가을 감각이 느껴지는 색상들 - 예컨대 진한 오렌지, 갈색, 적갈색 , 구리색, 황금색, 아보카도 그린 등 - 은 복잡하고 탈 많은 시대에 자연과 순수로의 회귀를 연상시키면서 대중에게 위안과 안심을 안겨주고자 했다.

 

‘오렌지 시대(The Orange Age)’ 전시회 중 다이얼식 전화기 디자인과 올림피아 휴대용 타자기의 모습. Photo: ⓒ Jana-Madzigon

‘오렌지 시대(The Orange Age)’ 전시회 중 다이얼식 전화기 디자인과 올림피아 휴대용 타자기의 모습. Photo: ⓒ Jana-Madzigon

 

 

1970년으로 접어들자마자 미국과 유럽에서는 히피 문화에서 영향받은 휩쓴 채도가 높은 ‘사이키델릭’하고 밝은 금속성 색상의 발랄하고 긍정적인 스타일링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여론의 반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전쟁은 발발한지 15년째를 접어들며 깊은 수렁 속에 빠져있었고, 반전 시위에 가담한 청년들은 가차없는 매와 감옥행을 면치 못했으며,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가들의 부패와 비리 스캔들을 보도했다. 

 

1970년대 말엽으로 치달으며 유럽의 소비자 제품들은 다채롭고 감성적인 색상을 버리고 백색, 은색, 검정색, 무연탄 색(회색) 조로 돌아섰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는 대중용 전화 현식이 일어난 때이기도 했다. 다이얼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돌려서 전화를 걸던 다이얼식 전화기는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 대신 번호가 찍힌 단추를 눌러 전화를 거는 버튼판식 전화기가 등장하여 사람들이 전화를 걸고 번호를 외우고 통화선을 성립시키는 교신 방식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때가 이 때다.

 

루돌포 보네토(Rodolfo Bonetto)가 디자인한 ‘복슨 1202(Voxson 1202)’ 텔레비전. 1972년 생산. Photo: ⓒ Miriam Raneburger

루돌포 보네토(Rodolfo Bonetto)가 디자인한 ‘복슨 1202(Voxson 1202)’ 텔레비전. 1972년 생산. Photo: ⓒ Miriam Raneburger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마셜 맥루헌(Marshall McLuhan)은 그의 책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1964년 출간)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유명한 말을 처음 소개했다. 당시 맥루헌은 인쇄매체와 TV 등 20세기 정보통신 매체가 인간의 존재와 인류 문명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견했다. 메시지란 ‘콘텐츠(content)’만이 아니라 콘텐츠가 전달되는 매체(medium) 그 자체의 본질과 성격도 전달한다. 

 

주황색은 이중적이다. 빨강과 노랑 두 색이 배합돼 탄생한다. 인생만사가 그러하듯 긍정과 부정,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은 공존하며 우리 일상에 혼재해 있다. 어쩌면 주황만큼 정보, 통신, 소통의 본질을 잘 상징해 주는 색이 또 있을까? 그리고 1960~70년대는 바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가볍고 발랄하게 대중에게 전달한 정보통신의 민주화를 예고한 시대였다.

 

글_ 박진아(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사진제공_ ‘The Orange Age’ 오스트리아 그라츠 &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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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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