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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한국의 빅 프로젝트 수행한 외국디자이너, car design

2008-06-03

한국 자동차 산업과 역사를 같이한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


1999년 라스베이거스에 모인 전 세계 120명 이상의 저널리스트들은 ‘세기의 디자이너’로 그 수많은 이름을 뒤로하고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를 선정했다. 2001년 12명의 저명한 자동차 산업계 인물과 함께 ‘불멸의 인물’에도 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 <백투더퓨처> 에서 미래 자동차 들로리안을 디자인한 것도 그이며, 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100종이 넘는 디자인을 왕성하게 뱉어낸 것도 그다.

그는 카로체리아 ‘이탈디자인’의 수장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런 그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1975년 현대가 개발한 최초의 한국 고유 모델 포니가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주지아로의 전문분야인 해치백과 ‘종이접기’라 불린 에지 스타일이 여지없이 그의 디자인임을 증명한다. 이후 그가 디자인했던(혹은 참여했던) 한국 자동차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만든 두번째 고유 모델 스텔라,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엑셀, 강력한 브랜드가 된 쏘나타의 초기 모델, 국내 최초로 여성 자동차 콘셉트를 실현한 라노스, 대한민국 경차의 표준인 마티즈, 광고가 더 유명했던 레간자 이외에 젠트라, 라세티, 렉스턴 등 주지아로의 리스트에는 30년 조금 넘은 국내 자동차 역사에 획을 그은 작품이 줄줄이 올라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현대를 시작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지만, ‘에스페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우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

그중 1999년 출시한 대우 매그너스는 IMF 여파로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명작으로 꼽힌다. 공격적으로 보이는 독특한 라인이 매력적인 이 차는 당시 ‘EF쏘나타’의 네임밸류를 넘지 못했다. 1960년대 일본에서의 작업에 이어 1970년대에 한국과 일을 시작한 주지아로는 “당시에는 일본과 독일 엔지니어와 작업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엔지니어링을 수출하고 있다”며 격세지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꼈다는 얘기다. 폭스바겐 골프, 마세라티, 피아트, 페라리 등이 그의 손끝에서 창조됐다.

국내용은 실패, 수출용은 먹힌 디자인
피닌파리나


대우가 2000년 새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야심 차게 여성용 미니밴 레조를 내놓았다. 7인승 미니밴으로 탄생한 이 차는 승합차 스타일에서 과감히 탈피, 세련된 감각의 보디 옆면 몰딩과 라운드 처리한 후면부로 곡선미를 강조한다. ‘안이 즐거운 차’라는 마케팅을 선보였던 레조를 디자인한 것은 바로 피닌파리나(Pininfarina).

대부분의 페라리를 디자인한 피닌파리나는 자동차를 예술품으로 끌어올린 매혹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회사다. 피닌파리나는 이후 2002년 현대와 손잡고 라비타를 출시했다. 아반테XD를 베이스로 만들었던 이 차는 승용차 시장에 이어 RV(Recreational Vehicle) 시장 석권을 꿈꾼 현대가 국내 처음으로 시도한 복합 기능세단이다.

세련된 디자인에 실용적 레저 감각까지 갖춘 미니밴 타입의 라비타는 ‘작은 차체와 넓은 실내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절제된 면과 선으로 일궈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2006년 후반 단종됐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아직도 잘 팔리는 제품이다.


무쏘의 전설을 만든 영국 디자이너
켄 그린리


쌍용은 국내 처음으로 왜건 타입 4륜 구동인 지프차 코란도로 국내 시장 점유율을 유지했지만, 1991년 도전장을 내민 강력한 라이벌 갤로퍼에 의해 코란도 라인업 전체가 잠식당하게 된다. 이때 미래형 지프차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탈리아 디자인을 사 오거나 일본 모델 라이선스를 주로 하던 국내 메이커들의 패턴에서 벗어나 영국왕립예술학교(RCA)의 교수 켄 그린리(Ken Greenley)에게 모델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때 나온 것이 힘이 좋은 무쏘다.

관행처럼 여겨지던 일본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벤츠 엔진이란 타이틀로 출시 당시 꽤나 시끄러웠던 이 차는 출고 정체를 빚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날렵한 도시형 SUV(Sports Utility Vehicle)로 무쏘의 후속이었던 카이런 역시 켄 그린리의 손에서 태어났다. 투박한 지프차가 기능적이지만 화려한 디자인으로 손질한 것. 쌍용은 무쏘의 전설을 잇고자 카이런과 액티언으로 켄 그린리와의 인연을 최근까지 이어갔지만 무쏘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쌍용은 1997년 벤츠 디자인을 담당했던 갈리첸도르프가 상당 부분 관여한 초기 체어맨 디자인에 이어 최근 선보인 체어맨 더블유에도 벤츠 엔진을 장착해 독일과의 인연을 잇고 있다.



시대를 너무 앞섰던 에스페로
베르토네


1976년 이후 현대가 포니 시리즈로 국내 소형차 시장을 장악했하다가, 1986년 대우 패션성이 강한 월드카 르망을 출시하면서 현대와 대우의 치열한 자리 다툼이 시작됐다. 이후 1987년 ‘작지만 단단한 차, 프라이드’로 기아가 합세하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은 치열한 3파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 대우가 중형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며 내놓은 첫 독자 개발 모델이 미래지향적인 날렵한 스타일의 ‘에스페로’다. 이차를 위해 대우는 볼보와 람보르기니 등을 디자인한 베르토네(Bertone)와 손잡았다. 베르토네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며 프랑코 스칼리오네, 조르제토 주지아로, 마르첼로 간디니 등을 배출한 디자이너 사관학교와도 같은 회사다.

이런 베르토네 스타일을 이어받은 ‘에스페로’는 한국 자동차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모델로 평가받는다. 프런트에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앤 공기역학적 스타일링은 이전에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해외시장보다는 국내용으로, 디자인에 비해 연비와 완성도가 떨어져 아쉽게도 경쟁 차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글/ 임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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