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7
지난 2005년 신사동에 문을 연 세컨호텔은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꼭 방문해야 할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마치 오랫동안 이런 공간을 기다려왔다는 듯. 세컨호텔은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직접 디자인해 자체 생산한 소파, 가구, 인테리어, 패션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전시(디스플레이가 곧 전시다) 판매하는 것을 기본으로 네덜란드의 드룩 디자인, 일본의 100% 등 전 세계의 흥미로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물론 색다른 물건을 파는 멋진 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실은 이곳은 디자이너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드는 소문난 아지트다.
세컨호텔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디자이너와 협업해 작품을 전시•판매하고 그들과 연계해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일종의 ‘드림 소사이어티’ 같은 공간이다. “순수하게 접근하면 다 같이 그런 마음이 되는 것 같다”라는 박소영 실장의 말처럼 순수하게 즐거운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 그것에 굶주려 있는 디자이너들이 세컨호텔에 보내는 뜨거운 호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처음에는 쇼핑하려고 손님으로 찾아갔다가 세컨호텔과 눈이 맞은 디자이너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함께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사이가 되는 식이다.
다양한 디자이너들을 만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디자이너 프로모션의 장이자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고, 세컨호텔과 디자이너의 네트워크는 종종 상업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디자이너 헤드헌터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특히 역량 있는 디자이너 소개와 더불어 신진 디자이너의 테스트 마켓 역할도 톡톡히 해낸 결과 대기업에서 몰래 시장 조사를 나올 정도로 입지를 굳혔다. 세컨호텔과 디자이너의 협업은 2006년 W호텔에서 ‘웰컴 파티’를 열었을 때, 30개 팀 이상의 많은 디자이너가 참여할 정도로 스케일이 커졌다. 매번 다른 콘셉트와 스타일을 추구하는 즐거운 프로젝트와 파티, 디자이너 간의 교류는 세컨호텔이란 아지트에서 디자이너와 디자이너가 만나 만들어낸 화학 작용의 결과물이다.
디자이너들에게 세컨호텔의 공간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단순히 제품을 전시, 판매하는 숍의 성격보다는 디자이너들이 모이는 소통의 공간이다. 처음에는 나와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모였다. 개성 넘치는 디자이너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재미난 아이디어가 불쑥불쑥 떠오르더라. 한마디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에너지의 원천과도 같은 공간이다.
디자이너들이 모여 일으킨 시너지는, 예를 들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나? 우선 세컨호텔과 뜻을 함께하는 역량 있는 디자이너들과 여러 가지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노트와 달력, 조명 등을 만들기도 했고, 2006년에는 W호텔에서 디자인 종합선물세트 ‘웰컴 파티’를 열었다. 또 내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전문회사 ‘투래빗’이 진행한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도 했다. 참, 간간이 벼룩시장도 연다. 360사운드(DJ 그룹)가 좋은 음악을 틀어주고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물건을 갖고 나와 판매하는데, 이는 또 다른 교류의 장이다.
디자이너와 협업해 제품 생산 및 판매로 이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디자이너의 제품을 위탁 판매하는 경우도 있고, 공동 기획해 생산에서 판매까지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예로는 세컨호텔과 그래픽 디자이너 이찬호가 공동 기획한 화투 시리즈가 있다. 판매량이 가장 많은 히트 상품이었다. 이 외에 여러 명의 디자이너에게 똑같은 조명 등을 주고 디자인하게 한 ‘nice2meet2’란 프로젝트가 있는데, 에밀 고가 디자인한 ‘미스 사이공’이 가장 제품화 가능성이 높아 판매를 시작했으며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소량 생산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 중단되는 경우가 잦다. 사실 세컨호텔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수익성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디자이너들 모여 프로젝트를 해본다는 데서 더 큰 의의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좋다.
기존의 디자이너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목적 의식이 너무 뚜렷했기 때문 아닐까? 반대로 세컨호텔은 뚜렷한 목적이 없어서 성공한 것 같다. 유명해져서 스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다. 세컨호텔은 위압감을 주는 전시 형태를 띠기보다는 소비의 한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접근이 용이 한 것 같다.
사람들이 세컨 호텔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초창기에는 ‘디자인 투어’라는 걸 했다. 단어 자체는 거창하지만 매우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진행했다. 모든 제품에는 아이디어가 있고 스토리도 존재한다. 그래서 그걸 모두 설명하자면 때론 2시간 넘게 걸리기도 했다. 디자이너건, 학생이건, 주부건 디자인 투어를 마친 후 모두 뿌듯해하며 돌아갔다. 제품에 담긴 스토리와 디자이너를 소개하려는 노력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던 것 같다.
지금까지 파티, 벼룩시장, 이벤트 등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했다. 세컨호텔을 통해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것은 없나? 나는 항상 ‘왜 디자이너 헤드헌터는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괜찮은 디자이너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데, 디자이너 헤드헌터 역할도 한번 해보고 싶다. 우리와 눈빛을 맞춘 디자이너를 소개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점에선 그 비슷한 역할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세컨호텔이란 이름으로 디자이너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위탁 판매
이기섭
<스마일 서커스>
박진우 조명 디자인
장민승 테이블 디자인
김해란 하이네켄과 와인병을 잘라서 만든 컵과 재떨이 디자인
공동기획
이찬호 화투 디자인
에밀 고 조명 디자인 ‘미스 사이공’
기사제공 | 월간디자인
기획·진행/ 전은경 기자, 권혜빈, 사진/ 이우경 기자, 박건주 기자, 스프링 스튜디오, 729스튜디오
스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