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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패션 디자이너의 감성

2010-03-12


파리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옷을 만드는 마누엘 에 기욤(Manuelle et Guillaume)의 황혜정 디자이너는 좋아하는 것이 ‘너무너무’ 많다. 일곱 가지만 꼽기에는 너무나 풍성하고 다채로워 고르기 힘들 정도.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제 2의 고향 같은 낭만의 도시, 파리(Paris)가 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옷에 대한 열정과 생활인으로서 삶을 사랑하는 태도가 뿌리깊은 것은 물론이다.

에디터 │ 이지영(jylee@jungle.co.kr)
글, 사진 │ 황혜정

건이
본래 동물을 좋아합니다. 고양이도 개도 모두 좋아하고요. 워낙 털이 짧은 견종을 선호하는데 파리에서 알게 된 사냥견인 잭러셀테리어 종에 특히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04년 2월 파리 샤틀레의 한 애완동물 가게에서 태어난 지 2달쯤 된 건이를 만났습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는 ‘족보’까지 있는 아이에게 촌스러운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후로는 제 비밀스런 추억 속에 늘 함께였습니다. 남편과 파리에서 처음 만나고 연애하면서 무작정 떠났던 자동차 여행길에도, 14시간 차를 몰고 가 또 하룻밤을 배타고 바다건너 들어간 섬에서 며칠 동안 텐트치고 고생하던 캠핑에도 항상 함께 있었지요. 셋이 함께 한 추억이 너무 많아 (당연히) 건이를 데리고 귀국했고, 현재는 홍대 어귀에 거주하며 주말이면 마누엘에기욤 샵으로 출근 시킵니다. 건이는 더 이상 매력 있는 견종 잭러셀테리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이도 많고 군살도 늘어 본래의 사냥견 다운 몸매가 사라진 지 오래인 노견도 아니고, 귀하고 버릇없이 자라 사회성이 떨어지는 문제견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건이는 그냥 건이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꽃 시장
추운 계절엔 꽃보다는 화초 류를 선호하지만 따뜻한 계절이 오면 꽤 정기적으로 꽃을 사러 다닙니다. 시장에서 꽃을 잔뜩 사면 황토색의 두꺼운 포장재로 둘둘 말아서 안쪽의 꽃과는 다른 느낌의 노끈으로 마감을 해주시는데, 그 길고 묵직한 것을 받아 들고 행여나 꺾어질까, 시들까 하는 마음으로 차 뒷좌석에 고이 누인 뒤 무척 신이 나서 쇼룸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장미와 카네이션을 제외한 모든 꽃을 좋아하는데, 꽃 시장에 가면 일반 가게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꽃들을 접할 수 있어 좋습니다. 특히 플라워데코 쪽에서 일명 ‘소재집’이라고 부르는 곳에 들르면 각종 이름 모를 나무들이나 허브 과의 식물들을 쉽게 구할 수 있지요. 요즈음엔 굵직하고 시원시원한 실루엣의 버드나무 가지나, 작고 흰 꽃이 예쁜 조팝나무, 좋아하는 민트 향이 가득한 유칼립투스, 제주도가 생각나는 유채꽃 등에 ‘꽂혀’ 있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아하는 꽃을 잔뜩 사다가 쇼룸 여기저기에 ‘툭’하고 꽂아둘 생각입니다.

에스프레소
커피중독! 드롭커피, 믹스커피, 그냥 인스턴트 커피의 알갱이만 타서 마시는 블랙커피, 설탕 맛이 강한 터키식 커피, 심지어는 커피 알갱이만 손가락으로 조금씩 집어 먹기도 할 정도로 커피를 매우 좋아합니다. 연유의 단맛을 별로 즐기지 않아 베트남식 커피는 제외하고요. 물론 나름대로의 T.P.O가 있어, 밤낮없이 마셔대는 에스프레소를 빼고는 상황에 맞춰 마시는 편입니다. 하루에 서너 번 넘게 에스프레소를 뽑아 내다보니, 한 달에 두어 번 부암동 ‘클럽에스프레소’에 가서 원두를 두툼히 분쇄해 옵니다. 아무리 진하게 마셔도 잠이 안 오거나 속 쓰린 일이 없으니 저와는 궁합이 너무 잘 맞는 기호식품이라고 생각할 밖에요.

Sudoku
약 5년 전, 파리 지하철 안 옆자리에서 수트 차림의 젊은 남자가 매우 집중한 표정으로 몽당 연필을 들고 가로세로 낱말 맞추기 형태의 사각 도표 안에 뭔가를 자꾸 써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낱말 맞추기처럼 전통적인 퀴즈 게임 등을 좋아하는 그네들이기에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지만, 젊은이들이 즐기는 것은 별로 본적이 없는 터라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말쑥하게 멋을 낸 그 친구가 그 텅텅 빈 자잘한 네모 칸들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가면서, 그것도 한 쪽 다리까지 떨어가며 채우고 있는 터라 궁금해진 것이지요. 그때부터 빠져들기 시작한 Sudoku는 혼자 있는 상황에 가장 잘 되는 터라 잦은 여행길에 꼭 챙기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늘 가방 한 쪽에 샤프펜슬과 함께 자리하고 있을 정도지요. 외국 여행을 가게 되면 그 도시에서 주간용으로 발행되는 얇고 작은 사이즈의 Sudoku 책을 구입하러 가판대를 기웃거리는 버릇도 생겼고요. 요즘엔 아이폰 안에 넣어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Tango
우연히 듣게 된 탱고음악에 빠져 보지도 못한 영화 의 O.S.T를 구입한 후 CD가 닳도록 듣고 또 들었습니다. 파리에 가기 전 불어를 공부하면서나 그곳에 가서도 계속 들었는데, 지금도 가끔 쇼룸에서도 그 CD를 틀어보곤 합니다. 2008년 가을 파리 출장 길에는 우연히 본 아르헨티나 극단의 포스터 덕분에 시간을 쪼개어 처음으로 탱고를 직접 보고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며칠씩이나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직접 배우거나 춰본 적은 없고 또 앞으로 그럴 계획도 없지만, 가슴 깊은 곳에 언제나 ‘로망’으로 자리잡고 있기에 어디선가 탱고음악이 들려오면 또 가슴이 뛰겠지요.

실용서적
책을 조금씩이라도 자주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디자인을 하고 브랜드를 운영 하다 보면 자기만의 세상 속에 사느라 바깥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눈이 감기기 쉬운 듯해요.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경제, 경영이나 심리학 그리고 예술, 인문학 등 여러 분야의 실용서적들인 것 같습니다. 영웅담이나 위인전 등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선호하고, 가끔은 관계처세술을 다룬 책을 심각하게 읽기도 합니다. 고교시절부터도 적성검사에서는 예능 분야로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물리나 수학 과목에 더 흥미를 느끼는 이과 학생이었기에 그런지 여고생치고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이런 책들이 간혹 어려운 경우에는 속도를 늦추고 아주 천천히 읽습니다. 어찌 보면 사실을 작가의 주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면이 강한 책들이므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 중화시켜가며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읽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염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어떤 리뷰를 보고 궁금해서 펼쳐보고 아주 천천히 소화하며 읽고 있습니다.

Paris
앞서 꼽은 대부분의 것들이 있기 전에 제게는 파리가 있습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마누엘 에 기욤’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곳이기도 하고, 늘 함께하는 저의 반쪽도 파리에서 만났네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지만, 제게도 파리는 흔히들 이야기하듯 ‘제 2의 고향’이자 화수분 같은 존재입니다. 에펠탑이나 패션의 도시로 대변되는 이미지보다도 살던 동네 모퉁이의 시가 냄새 밴 카페, 축축하게 밤 안개가 내려앉은 센느강 어귀를 셋이서 산책하던 일, 누우면 나무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던 공원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또한 파리 보그 편집장 카린의 일명 ‘엣지’있는 스타일보다도, 많이 꾸미지 않아도 매력이 넘치는 파리의 마드모아젤과 마담들의 ‘내추럴 시크’가 먼저 생각납니다. 물론, 수많은 편집 매장과 멋진 앤티크 및 빈티지 샵에 대한 욕망은 지금도 끊임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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