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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재래시장, 그 일상의 재발견

2012-01-18


백화점과 인터넷 등에 밀려 시대의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는 도심의 재래시장. 찾지 않는 손님들과 떠나가는 상인들로 인해 예전의 활기참은 아련한 기억으로 남겨지고 있는 지금의 시장풍경. 그 비어가는 공간 속에서 예술의 꽃을 피우고자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신당창작아케이드’. 서울시가 도심 재생 프로젝트 일환으로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을 마련해주는 사업인 ‘서울시창작공간’ 중 하나인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신당동 재래시장 지하상가의 빈 점포를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용도를 바꾼 곳이다.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자료제공 | 서울디자인재단

십 수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재래시장 상인들과 예술가들의 색다른 동거는 입주작가들에게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모티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프로젝트D.I.T (Do it Together)_함께 창작하기’(이하 프로젝트 D.I.T)라는 프로그램으로 발현된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작가인 ‘이웃상회’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시장상인과 예술가들, 그들의 생업과 창작의 일상이 공존하는 이 곳만의 문화적 상생방식에 대한 고민이자 제안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 ‘프로젝트D.I.T’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전시, ‘신당생활사박물관’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디자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박물관 ‘소장품’ 형식으로 소개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신당창작아케이드 인근 지역, 특히 재래시장의 일상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소재들의 재발견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곳에서 흔하고 평범했던 소재들은 다양한 입주작가들의 손을 거치고 지역상인들과 공유되는 과정을 통해 지역 일상의 숨은 가치를 발하는 매개체로 드러나게 된다.

전시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전에 이웃상회의 ‘프로젝트 D.I.T’를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나만의’ 생활용품이나 가구 등을 스스로 제작한다는 뜻의 ‘D.I.Y (Do It Yourself)’에서 ‘나’의 의미가 ‘우리’로 확장된 ‘프로젝트 D.I.T’는 지역생활탐구와 인터랙티브한 관객참여형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먼저 지역생활탐구형은 신당창작아케이드가 자리한 지역의 장소 특정적 요소를 배경으로 시장상인들의 지혜가 담긴 일상의 물건들을 발굴하고, 그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이다. 신당중앙시장에서 주변 을지로, 청계천, 동대문까지 이 지역은 도심 상권 중심으로서의 보존과 개발의 논리가 충돌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인터랙티브한 관객참여형은 입주 작가가 시장 상인들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창작실험으로 상인들을 창작 주체로 이끄는 하나의 예술매개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프로젝트 D.I.T’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신당생활사박물관’은 소장품展을 중심으로 오브제설치, 평면조형, 드로잉설치, 퍼포먼스 등으로 재구성된다. 메인 전시라고 볼 수 있는 소장품展에는 신당창작아케이드 2기 입주작가들과 지역상인들이 참여한 총 20여개의 작품이 소개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유리와 도자를 소재로 한 세 작가의 작품이다. 재래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알루미늄 호일로 갓을 씌운 시장표 전등을 거울 유리로 재구성한 유리드로잉 작가 유정아. 재래시장의 천막천 무늬를 찻잔세트에 표현한 도예작가 최주희. 칠성사이다 공병을 장신구 세트로 재해석한 유리조형작가 이윤철이 그들이다.

섬유조형작가 임혜원과 전시를 기획한 이웃상회는 지역 상인들과의 공동작업을 선보인다. 섬유 커팅 기법과 횟감 뜨기 등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생산된 다양한 결과물들을 소장품으로 내놓은 임혜원과 동해횟집 주인. 대성사(재봉), 청실수예 등 주변 지역상인들로부터 받은 소장품들을 전시 이웃상회. 이들의 전시 소장품들은 ‘프로젝트 D.I.T’ 관객참여형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반복되는 지루한 생업의 일상에서 벗어난 상인들의 내재된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이웃상회는 또한 재래시장에서 손님 맞이 의자 등에 사용되는 저가의 바닥재인 노란색 민속장판을 특정 브랜드 명품가방의 원단으로 신분 상승 시킨 소장품 시리즈를 전시장 한 가운데에 들여 놓기도 한다.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과도한 소비성향과 경제일방주의를 꼬집는 것이다.

전시장 한 곳에는 재래시장의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펼쳐진다. 추영애 작가의 작품으로 청바지나 낡은 옷 등을 해체, 재조합하는 과정으로 통해 재래시장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시선과 호기심을 평면조형으로 드러낸다. 동화적 감수성으로 일러스트, 회화 등의 평면작업을 진행 중인 이은원 작가는 작가의 드로잉 원본 (i can, we can, you can)을 스티커로 제작해 대량 생산한 후 시장 골목 수도관에 붙여진 수많은 광고용 스티커 사이에 덧붙인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퍼포먼스에는 ‘예술가표 선경이빵’의 한선경 작가가 나섰다. 선경이빵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빵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행위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영세상인들과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노점상의 형식으로 환유한다.

그 밖의 부대행사로 2011 서울문화기업 우수사업모델 육성지원 선정사업인 ‘Art in 자판기’의 쇼케이스가 전시 기간 동안 소개된다. 'Art in 자판기'는 전철이나 역 등 공공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판기'를 예술가들의 아트상품 매장으로 활용해 일반인들에게는 예술품 향유의 기회, 예술가에게는 수익창출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이웃상회의 첫 아트마켓사업모델이다.

‘신당생활사박물관’ 전시는 2월 2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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