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6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동화의 배경은 옛날 옛적 언젠가로 시작되곤 한다. 머나먼 옛날 어느 왕국의 공주가 주인공인 동화 속 유명한 여럿 공주들은 20세기에 들어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Walt Disney Productions)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재탄생 되면서 텍스트의 묘사가 아닌 애니메이션 이미지로 각인되게 되었다. 이미지 속 공주들의 모습은 각기 특색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공주의 이목구비 보다는 아무래도 드레스와 헤어스타일 등 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주의 패션을 보면 그 공주가 살았던 머나먼 옛날이 어떤 시대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글 ㅣ 윤예진 패션 디자이너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잠자는 숲 속의 미녀, Sleeping Beauty)'의 이야기는 1679년 프랑스의 동화작가이자 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비평가인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의 동화집 '옛날 이야기(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를 통해 처음 출판 되었다. 이후 그림형제(Brüder Grimm)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Kinder-und Hausmarchen)'에 '작은 들장미(Little Briar Rose)'로 수록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1959년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Walt Disney Productions)에 의해 1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된다.
옛날 옛적(샤를 페로의 원작에서는 14세기경으로 기록되어 있기는 하다.) 어느 나라에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던 왕과 왕비에게서 공주가 태어나게 되고 여섯 명의 요정이 초대된다. 그러나 초대받지 못한 마녀가 나타나서 공주가 16세가 되기 전에 물레에 손가락을 찔려 죽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걸게 되고, 공주는 죽지는 않았지만 100년 동안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100년이 지났을 즈음 그곳을 지나가던 왕자는 성 안에 아름다운 공주가 잠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성 안으로 들어가 키스로 공주를 깨운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은 행복하게 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줄거리는 일반적으로 이렇다. 원작을 참고해서 시기를 짐작해보면, 공주 오로라가 태어났던 시기는 14세기이며, 100년 동안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공주가 잠에서 깨어나 왕자를 만난 시점은 15세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공주는 그 시대에 걸맞은 패셔니스타로 이미지화 된 것이 맞을까?
중세는 로마제국이 395년 동서로 분리되고 5세기 말에 서로마가 멸망한 시기부터 동로마가 멸망한 15세기까지 약 천 년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천 년의 세월을 흔히 중세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곤 하는데 오로라 공주가 등장한 14세기와 15세기는 중세 후기에 속한다. 100년 단위로 구분 지었을 때 사실 당시 사람들이 딱 한가지 형태의 의복만을 입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역사적 복식 고증은 당대 사회와 문화, 예술 등과 관련되어 많이 입혀지고 유행되어 많은 자료가 남아있는 것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복식으로 남게 되며, 약간의 국가별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왕족, 귀족 등의 지위와 계급이 놓은 사람들의 복식들이 한 세기의 복식의 특징을 결정하게 된다.
15세기 초반에는 14세기와 큰 변화는 없는 복식형태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15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성복식 경우 시대별로 특징을 결정하게 되는 부분은 네크라인과 소매의 형태, 스커트의 부푼 정도, 허리선의 높낮이 정도가 있다. 15세기 후반에는 특히 네크라인의 변화가 있었는데 영국은 대개 높은 네크라인이나 스탠딩 칼라가 달렸고, 독일은 둥근 네크라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V자형의 네크라인이 지배적이었다. 깊게 파인 V형 네크라인의 경우, 대담한 연출이 시도되긴 하였으나 여자의 목이나 가슴의 노출은 중세를 통해서 오랫동안 금기로 되어온 것이었으므로, 얇은 천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안에 받쳐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5세기가 이르러 여성 복식의 네크라인은 목둘레가 점점 많이 파여서 어깨가 다 드러날 지경이 된다.
14세기의 헤어스타일 특징은 머리망을 사용하여 머리에 말아 양쪽 귀 옆에 고정시키거나 머리 전체를 터번형태로 감싸 덮는 것이었다. 이후 15세기 헤어스타일의 경우 양쪽으로 솟아난 뿔 형태, 하트(심장) 형태, 고깔 형태의 모자들이 유행하였는데, 대부분 이 헤드 드레스의 경우 얇은 천을 늘어뜨리거나 베일처럼 머리를 덮어 씌우는 디테일이 함께 가미되었다. 특히 고깔 형태 모자에 비단을 씌워 늘어뜨린 형태의 헤닌은 15세기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 중에 하나이다.
100년 동안 잠들었던 오로라 공주는 당시 유행하던 헤어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길게 늘어뜨린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어 베스트 패셔니스타 자리는 차지하기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전반적 인물들의 드레스의 형태나 파티에 초대되어 온 귀족들의 헤어스타일, 요정의 고깔모자, 마녀의 뿔 모양 헤드 드레스, 왕자의 슬래시(slash, 겉 원단을 칼집 내어 안의 원단이 보이게 하는 디자인)가 들어간 부푼 어깨 등의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15세기 후반의 복식 형태를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디즈니가 재탄생 시킨 숲 속의 잠자는 공주 오로라의 이미지는 15세기 후반에 프랑스 또는 이탈리아 태생일 경우의 수가 높은 공주임을 복식사적 고증의 도움으로 추론해본 셈이다.
디즈니가 새롭게 디자인한 공주들은 오로라 이외에도 십 수명에 달한다. 그 공주들은 대부분 누구나 예외 없이 머나먼 옛날 옛적 어느 왕국에서 살곤 했는데, 공주들의 패션을 통해(물론 디즈니사의 디자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공주가 살았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당대의 역사와 복식 디자인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애니메이션 감상 이상의 재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