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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군인아저씨가 패션 리더?

2013-12-20


언젠가부터 흔히 '야상'이라고 불려지는 춘추복이 유행이다. 봄•가을이 아닌 한겨울에도 솜이나 오리털 등을 보충제로 넣은 점퍼들 역시 '야상 패딩점퍼'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청소년부터 삼사십대에 이르는 연령까지, 이제 누구나 한 벌쯤은 소지하고 있을 것이라 믿어도 무방할 스테디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군복의 친구쯤 되어 보이는 야상의 색상과 디자인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살펴보자.

글 ㅣ 윤예진 패션디자이너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요즘 흔히 '야상'이라 불려지는 패션 아이템은 원래 '야전 상의(野戰上衣, Field Jacket)'라는 이름의 군복에서 유래되었다. 야전 상의는 미군에서 제작한 대중적인 군복 중 하나로, 이름 그대로 들판에서의 전투를 위한 윗옷이다. 제 2차 세계대전부터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군이 널리 입었는데, 남베트남의 중부 고원 지방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유용하게 쓰였으며, 스콜 뒤에 오는 추운 날씨로부터 병사의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역할도 했다.

기본적인 야상은 내피와 외피로 구분되어 있어서 봄•가을에는 외피만, 겨울에는 내피를 넣어서 입기 때문에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착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한겨울에는 몸판의 길이가 길고 모자에 라쿤, 밍크, 폭스 퍼(Fur) 등을 트리밍(Trimming)한 야상들이 선보여지고 있으며, 색상 역시 일반 군복 색상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

이 재킷 디자인의 특징은 앞부분의 가슴과 엉덩이 근처에 큰 포켓과, 뒷목 부분의 두건 따위를 넣을 수 있는 지퍼 달린 포켓이다. 처음엔 우리가 흔히 국방색이나 카키색으로 부르는 '올리브 그린'색상으로 제작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다양한 이름의 패턴으로 디자인되고 있다. 몇 가지 나열해보자면, 흔히 한국에서 개구리 군복이라고 불리는 우드랜드(Woodland) 위장, 황토색이 주가 된 초콜릿칩 데저트(Chocolate chip desert) 위장, 타이거 스트라이프(Tiger stripe),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 모양을 딴 데저트 디지털 위장, 우드랜드 디지털 위장, 시티(City) 위장, 호주 디스럽티브 패턴 위장(Australia disruptive camouflage) 등 다양한 위장 패턴과 그 외에도 검정, 네이비 블루의 솔리드 컬러를 사용하여 생산하고 있다.

야상이 일반 복식화 된 계기 중에는 1970년대 '30년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베트남 전쟁(1차 인도차이나전쟁: 1946~1956년까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와 프랑스의 전쟁, 2차 인도차이나전쟁: 1960~1975년까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와 미국의 전쟁)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주도로 일어난 반전 운동을 들 수 있다.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을 나누고 서로 어느 편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갖춰 입는, 실제 군복을 입고 활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 입는 의복을 일반 서민들이 입음으로써 편을 나누고 아군과 적을 알아보기 위한 군복의 상징을 무너뜨림으로 전쟁을 무력화하려던 반전 세력의 의도였다.

1960년대 파리의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디자이너인 앙드레 쿠레주(Andée Courrèges)와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프랑스가 겪은 베트남전 직후 군복의 견장이나 금색 버튼을 활용한 군복 패션을 발표하였고, 1970년대 후반 티에리 뮈글러(Thirry Mugler),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 등의 디자이너들이 패션계에 군복을 활용한 고급 디자인을 선보이며 소위 '밀리터리 패션'이 이어져 오게 되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도 사랑 받는 또 하나의 아이템인 트렌치 코트(Trench coat) 역시 야전 상의의 한 종류이다. 말 그대로 트렌치는 참호(야전에서 몸을 숨기면서 적과 싸우기 위하여 방어선을 따라 판 구덩이)라는 뜻으로 제 1차 세계 대전 때 영국 병사가 참호 안에서 입었던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현재 트렌치 코트는 그 유래와는 달리 특히 가을이 주는 분위기 있는 멋이나, 낭만, 로맨스를 떠올리는 느낌을 가진 아이템으로 이미지화 되었으며, 여성용 트렌치 코트의 경우 남성적인 기본 트렌치 라인을 응용하여 오히려 여성미가 드러나는 다양한 연출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패셔너블한 것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트렌치 코트의 마니아 중엔 여학교 앞을 떠도는 '바바리 맨'이 있다. 그를 묘사하자면 알몸에 트렌치 코트만을 걸치고 활동하는데, 그가 '트렌치 맨'이 아닌 '바바리 맨'이라 불리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트렌치 코트를 개발하였기 때문에 트렌치 코트를 일명 버버리(Burberry) 코트로도 부르기 시작한 점과, 또한 1800년도 말 개화파에 의해 한국에 서양 옷들이 들어와 입혀지기 시작 할 당시 트렌치보다 쉽고 발음하기 좋은 버버리가 그 발음이 바바리로 변형되어 불려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군복이 패셔너블한 의복 아이템이 되거나 일반 복식화 된 사례는 근, 현대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중세 중기, 13세기를 특징 짓는 의복으로 남녀 모두 입었던 쉬르코(Surcot) 역시 처음엔 십자군의 군복 아이템이었다. 소매가 없는 현대의 점퍼 스커트(Jumper skirt)와 흡사한 쉬르코는 십자군이 비와 먼지로부터 갑옷을 보호하고 갑옷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깨 넓이의 긴 사각형 천으로 갑옷 가리개를 입은 데서 유래한다.

국방의 의무로 한국의 건강한 남성이라면 한번은 다녀와야 하는 군대에 관한 우스갯소리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배우자 선호도를 조사했더니 군인이 선호도 2위 남성으로 뽑혔단다. 기뻐하던 군인들이 환호하다가 선호도 1위 남성은 누구인지 궁금해 물으니, 배우자 선호도 1위는 민간인 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도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을 군인아저씨들이 들으면 참으로 서운할 농담이지만 그만큼 군인들은 일반인들의 생활과 동떨어져 사회, 문화 등의 모든 면에서 혜택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군인들의 복식은 길게는 8세기 전부터 일반인의 의복을 앞서가는 패션 리더의 역할을 해왔음을 살펴 보았다.

요즘 한국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라. 진지한 군인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부터 코믹한 군인들의 드라마까지, 대중매체에서도 '밀리터리'가 대세이다. 적으로부터 혹은 타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이 의무인 현실에서 '밀리터리'의 의미, 그것은 상상 속에서조차 존재 유지되기 힘든 완벽한 유토피아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인류에게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들 중 하나다.
야상이나 트렌치 코트, 다양한 밀리터리 위장 패턴들, 견장이나 훈장, 군번 줄 모양의 액세서리 등, 패션에서의 밀리터리 역시 어느 한 시즌의 유행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닌 더욱더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밀리터리 시크' 스타일로 이어지며 인류가 남아있는 한 패션계에 늘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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