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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맨인블랙 vs 워먼인블랙 워먼인블랙

2014-03-19


역사적으로의 남성 중심적이었던 사회적 상황에서 남성은 블랙 패션을 통해 여러 상징들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여성의 블랙 패션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블랙 패션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남성 블랙 패션에 반해 여성들의 블랙은 어떤 이미지와 상징들로 이어져 왔고 또 만들어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글 ㅣ 윤예진 패션디자이너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19세기까지 역사적으로 마치 남성들만의 패션이었던 듯 보이는 블랙은 스페인이 유럽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던 16세기 여성들에게 역시 입혀졌다. 당시 스페인의 왕권은 여왕(엘리자베스 1세, Elizabeth I)의 몫이었고 권력과 엄격함을 상징하던 스페인의 블랙은 당연히 여왕(여성)의 색이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당시 모든 사람들이 검은 옷만 입었나? 물론 아니다. 블랙은 귀족의 색이었고 힘을 가진 색이었으며 나라의 높은 사람들이 입었기 때문에 하위계층 사람들이 모방 하고 싶어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 외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교도적이고 금욕주의적인 경향이 확산되며 화사하거나 명랑한 색상의 의복을 피하게 되었고 화려한 염색가공이 되지 않은 칙칙하고 거무스름한 옷들을 입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블랙의 염색가공은 생각보다 쉽거나 저렴하지 않아서 정말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검은 옷감을 구하기란 보통 서민들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17~18세기에 귀족 여성들의 의복은 그 스타일에 변화무쌍함을 거치며 갖가지 새로운 드레스와 장식품을 이용하여 치장하기 시작했고, 블랙 이외에도 많은 매력적인 색감들이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드레스와 머리 장식을 떠올려보라. 어쩌면 당시에 여성들에게 블랙의 이미지나 그 상징적 의미란 남자들이 착용하는 딱딱한 색이거나 장례의복, 또는 하층민들이 걸치는 거무튀튀한 누더기에 불과하였을지도 모른다.

19세기에 들어서자 남성은 검은색, 여성은 흰색(밝고 환한 색)이라는 성별에 의해 나눠진 의복 규정이 생겼다. (이때 규정된 남성의 블랙과 여성의 화이트는 현재까지도 전해오는 남녀의 결혼 예복의 유래가 된다) 즉, 여성들이 블랙 패션을 할 때는 상중이나 애도를 위한 의복으로만 입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미망인의 경우 3년 혹은 5년에 걸친 애도의 시간을 가졌었기에 남편을 여읜 여성들은 오랫동안 블랙 패션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도 했다. 반면 여성의 새하얀 차림은 특히 귀족이나 왕족의 차림, 또는 예복으로 입혀졌다. 그러나 당시 여성의 새하얀 드레스 역시 특별히 차려 입은 복장으로 모든 여성들이 평소에 흰옷 만을 입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일반적으로 여성은 흰색에 가까운 연한 색감의 의복을 주로 착용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달라졌으나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그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늘 남성의 그림자, 또는 잘나가는 남성들이 내세우기 위한 아름다운 부속품으로 인식되어온 경우가 많았으며, 한국에도 가부장제도 라는 것이 오랜 시간 잠재되어 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부분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의 생활이 모든 것이던 여성들의 본격적 사회 진출이 시작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다. 세계 제 1,2차 세계대전 중에 대부분의 장성한 남성들은 전쟁을 치르느라 가정을 비워야 했고, 결국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한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바깥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은 여성들의 지위를 신장시켜주고, 경제권을 갖게 해주었으며, 스스로의 능력과 재능을 인정 받게 되는 계기를 얻게 해주었다.
20세기, 하얗고 풍성하며 펄럭이는 예쁜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는 더 이상 전문직을 가진 여성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 되었다. 여성들의 패션은 점점 더 간소해졌고, 마치 남성복식과 유사한 형태의 블랙 재킷을 걸치기도 했다.

여성의 블랙 패션에 관한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 면모를 보여준다. 첫 번째는 힘있는 남성들이 블랙을 착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관련된 블랙으로 '남성'이라는 성(性)이 가진 특유의 힘에 대한 모방과 블랙이 가진 힘이 합쳐져 권위 있는 여성, 능력 있고 신뢰감을 주는 전문적인 여성의 이미지다. 두 번째, 여성에게 블랙은 그 어떤 다른 색감보다 관능적인 이미지를 가져다 주었다. 예전 미망인들만이 입던 어둡고 슬픈 블랙 드레스는 사라졌고, 블랙은 이제 오히려 화려할 수 있는 색상이 되어 여성의 성적 매력을 보여주는 이미지까지 상징하게 되었다.

현재 남성복과는 달리 여성복식은 여전히 블랙 예찬 중이다. 현대의 이상적 남성상이 바뀌었듯이 이상적 여성상 역시 바뀌었다. 현대 사회는 살림과 육아만을 담당하는 순종적이며 다소곳한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집안일도 바깥일도 잘하는 원더 우먼을 원하며, 전문적 직업은 기본에 남들보다 잘난 아이를 키워내는 슈퍼맘을 원한다. 여성의 블랙 패션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사회적 여성상의 변화와도 분명히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성이 성공하면 '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라고 하고, 반면 여성이 성공하면 '와, 정말 독한 사람이구나'라고 한단다.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풍자를 담은 우스개 소리가 그렇듯 그 안에는 정곡을 찌르는 칼날이 있기 마련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해보자면, 현대 사회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고, 사회적 위치를 지니며, 전문적 직업군을 가진 여성은 몰아내고, 가냘프며 온실 속 꽃같고 깨지기 쉬운 예쁜 도자기 인형 같은 여성을 이상적 여성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 시대 여성의 블랙 패션은 계속 질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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