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죽음의 심볼도 패션 앞에서는 '쏘 큐트(so cute!)'

윤예진 패션디자이너 | 2015-08-19


몇 년 전 김연아 선수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쇼트프로그램 출전에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교향곡 '죽음의 무도'. 출전 당시 김연아 선수는 죽음의 춤에 어울리는 검은 색상의 의상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이후로 오랫동안 김연아 선수의 피날레의 액션은 다양하게 패러디 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었다.

글 ㅣ 윤예진 패션디자이너  

재미있게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무도'라고 하면 곡의 작곡자인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 ~1921)나, 중세 죽음의 무도가 지닌 역사적 배경보다는 피겨스케이터 김연아 선수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우리에겐 당시 김연아 선수가 압도적인 점수로 1위를 차지하였기에 더욱 기억되는 음악이지만, 사실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Op.40)'는 이미 19세기, 좀더 자세히는 1874년에 작곡이 끝나 1875년 1월 24일 파리에서 초연이 이루어진 작품이며, 생상스의 여러 교향곡 가운데 당대 사람들에게 가장 성공적인 평가와 대중적 환호를 받은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죽음의 무도의 원제 '다스 마카브레(Danse macabre)'에서 'danse'가 춤을 의미하는 단어임은 대부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macabre'가 의미하는 것은 ‘죽음’인 것일까?

'마카브레'는 중세에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허구적 관념 대신 실제의 죽음, 즉 악취를 풍기며 구더기에 뜯어 먹히는 흉측한 시체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작된 개념인데, 오늘날에 와서 사전적인 '마카브레'의 정의는 ‘죽음이나 다른 무서운 것과 관련되어 섬뜩하고 으스스한’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무도, 즉 죽음의 춤에서 말하는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비(非)형상적인 죽음이 아닌 형상을 가진 존재 '죽음'이다. 다시 말하자면 죽음의 춤이란 춤을 추고 있는 죽음을 뜻하는데, 이 춤을 추는 '죽음'은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일종의 저승사자이다.  

13세기부터 이른바 죽음을 노래하는 ‘바도 모리(vado mori)’라는 시(時)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시의 내용인즉슨 각각의 사회적 신분의 대표자들이 자신들이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 한탄하는 것이다. '죽음'은 가난한 사람들, 거지나 불구자, 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젊은이들은 공격하지 않는 반면, 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에게 사정없이 화살을 쏘고 낫을 휘두르는데, 이런 아이러니와 부조리가 당시 예술에서 표현되는 ‘죽음의 승리(서양의 중세 말기 이후 성행한 ‘죽음’을 주제로 한 일군의 작품들의 호칭)’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당시 유럽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는 '죽음의 춤'의 역사는 매년 반복되는 기근, 영양실조, 흉작, 백년전쟁, 1347년부터 1353년까지 이어진 페스트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희생되었다. 페스트에 걸린 환자들은 자신의 집에서 외부와 격리되었고, 심지어 산채로 매장되었으며, 마녀 화형식은 빈번히 행해졌다. 당시에 충격적이며 파괴적인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해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인명을 앗아간 재난을 기억하기 위해 탄생된 '죽음의 춤'은 전 유럽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춤추는 죽음을 그린 그림에서는 '죽음'만이 춤을 추고 있으며 '인간'들은 뻣뻣하게, 혹은 몸을 돌리고 가만히 서 있거나 죽음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당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불안은 종교적인 참회의 열망뿐만 아니라 과도한 향락에 대한 욕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죽음의 춤'은 이 두 가지 열망을 연결시켜 보여주고 있다. 즉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기시키고 언제나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설파하는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런 '죽음의 춤'은 주로 교회나 성당에 그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죽음'은 무의미하게 인간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예기치 않는 폭군이나 음흉한 난봉꾼이 아니며 오히려 죽음은 천상의 사자(使者)이자 하느님의 위탁으로 죽음을 향한 음악을 연주하는 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은 파괴자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후 세계를 설교하는 신의 전령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잘났거나 못났거나 모든 인간은 결국 죽어야만 한다는 진리를 가르치고, 스스로 심판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일깨우기 위함으로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자, 각설하고.
해골 형상의 사자(使者) ‘춤추는 죽음’의 등장은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비롯한 패션 화보 등에서도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벌써 십여 년 전, 패셔너블한 모티브로 유행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이 당연하게 패션 스타일링 소재 대열에 합세한 '해골'. 사실 동시대 유행을 따르는 대중들로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다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해골 문양이 프린트되어있는 스카프를 목에 두르며 마카브레니 죽음이 은유하는 인생의 교훈이니 그런 것 따위는 생각치 않는다. 그리고 스카프를 두르고 외출해 지인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어머! 그 해골무늬 너무 귀엽다!'

그렇다. 오늘날 패션에서 더 이상 해골은 대놓고 거친 록커들이나 폭주족들의 상징이 아니다. '죽음'을 은유하는 해골을 사용한 패션 디자이너 중 특히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여러 디자인에 모티프로 사용된 해골은 현재 죽음의 상징을 패셔너블한 오브제로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 중 그의 해골 스카프는 아마 약간이라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법한 유명 패션 아이템이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정말로 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그의 해골 스카프를 패션 소품으로 착용했으며, 그런 모습들은 대중들에게 해골 스카프를 두른 스타일을 워너비 패션으로 칭송하게 만들었다. 벌써 그 해골의 유행이란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해골을 보고 이렇게 표현한다. 핫(Hot)하다, 멋스럽다, 간지난다 등. 즉, 패셔너블 하다고 말이다.  

사람이 죽어 시간이 지나고, 그 시체가 썩어 살점이 다 없어져야만 드러나는 백골 해골이, 생명이 끊어진 죽음, 그 후에 제 형상까지 잃어버린 뒤 드러나는 그 끔찍하고 무서운 오브제가, 내 몸 위에 의상의 패턴으로, 액세서리로, 각종 디테일한 패션 도구로 각광받게 된 것. 그러나 한번 진지하게 상상해보라. 해골이라는 것, 과연 '귀여울' 수 있을까?

죽음. 그것을 암시하는 해골. 이 이야기를 읽은 여러분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어쨌든 확실한 한가지는 백골도 '쏘 큐트(So cute!)'하게 만들 수 있는 엄청난 '패션의 파워'로 인해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 해골은 우리를 멋쟁이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facebook twitter

#패션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