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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융합의 시대, 소통의 인재

2013-04-23


“‘염소'라는 단어를 보고 문과생은 ‘음메~’를 떠올리는데 반해, 이과생은 ‘Cl(원소기호)’를 생각한다”. SNS에서 떠돌던 ‘문과생과 이과생의 차이’라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다. 단순한 유머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시대의 키워드를 읽을 수 있는 힌트가 숨겨져 있다. 똑같은 질문이지만 내는 답은 판이하게 다른 이들. 만약 ‘음메~’를 떠올리는 이과생, ‘Cl’를 생각하는 문과생이라면 어떨까. 보다 창의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보여주지 않을까. 바로 지금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융합형 인재'로서 말이다. 떠올려보면 (故)스티브잡스 또한 실은 철학과를 중퇴한 인문학도 아니었는가.

언제부터인가 여기 저기서 ‘융합의 시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놓곤 한다.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학문 분야들이 뭉치면서 내는 시너지 효과가 창의적 미래 사회를 이끌어가는데, 커다란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 보니, 앞서 말한 융합에 어울리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노력들도 다양하다. 초중고에서는 융합인재교육(STEAM)이 도입되고 있으며, 얼마 전 삼성 그룹에서는 인문계 출신을 뽑아 엔지니어로 키우겠다는 채용 계획을 발표, 이슈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은 디자인계라고 다르지 않다. 그 대표적 예가 2010년 시작된 ‘융합형디자인대학육성사업'. 지식경제부가 실시한 이 사업의 목적은 디자인에 기술과 경영의 역량을 더한 인재를 육성하는 것으로 지난 3년간 14개 대학에 총 83억원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국내 디자인 교육이 디자이너의 기술적 능력 위주로 치우쳐 있다는 비판 속에 등장한 ‘융합형디자인대학육성사업'. 정글에서는 참여 대학 중 하나인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이하 IDAS)의 나건 교수로부터 융합의 시대, 디자인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자료제공 | IDAS


Jungle : IDAS 융합교육에 대한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융합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디자인계에서도 이미 과제로 다가온 이슈였고요. 쉽게 말하면 서로 갈라져 있던 학문들이 뭉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자는 것이 융합인데, 그렇다면 과연 그것을 누가 주도를 할 것인가. 여기서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자연스레 그런 고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거죠. 그러다 지식경제부가 꺼내든 카드가 교육이었어요. 결국 근본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죠. 제대로 된 융합형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느낀 겁니다. 그 계기로 지난 2010년부터 지식경제부 지원으로 ‘융합형디자인대학육성사업’이 시작되었어요. 이제 3년 정도 되었고, 그간 이 사업에 14개 대학이 참여했고요. IDAS는 첫해부터 같이 해왔고, 유일하게 학부가 아닌 대학원 과정에서 다루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IDAS의 융합교육을 설명하자면, 우선 교육의 접근법 자체가 크게 달라져요. 그간 디자인에서의 융합 교육이 디자인 안에서 공학을 가르치고, 경영을 가르치는 맛보기 수준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공학 대학 교수, 경영 대학 교수들이 직접 디자인을 위한 과목이나 교재를 개발해서 참여한다는 겁니다. 디자인에 갇혀 다른 학문을 이해하려 했던 울타리안 교육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죠.


Jungle : 융합의 시대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현재 융합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디자인이 융합을 어떻게 풀 것이냐라는 문제에 앞서 사회의 키워드를 들여다 봐야 해요. 2000년대 들어서 디지털(Digital), 디자인(Design), 디앤에이(DNA), 이렇게 신3D 업종이다 해서 한창 화두가 됐었어요. 디지털은 기술, 디앤에이는 과학, 그리고 디자인은 그 둘을 융합하는 연결 고리로 크게 주목 받았죠. 디자인경영도 이때부터 뜨기 시작했고요. 그러다가 ‘감성'이 이들을 대체하는 코드로 떠올랐고, 그 다음으로는 ‘창의', ‘창의경영' 등이었죠. 그리고 이어진게 ‘융합'이고요. 다시 디자인을 보자면, 융합 코드 이전에는 디자인이 분명한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앞서 말했 듯 3D일때는 디자인이 중요한 연결고리였고, ‘감성’ 코드에서도 예술과 함께 디자인은 두각을 드러냈죠. ‘창의'는 예술, 디자인에 교육이 덧붙여졌다고 보면 되고요. 그런데 문제는 융합 시대에 들어오면서 디자인이 리더십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융합'이라는 판이 만들어지면서 공학이나 경영 등이 중심으로 올라서고 디자인은 보조하는 역할 정도로 밀려버리게 된 겁니다. 판 자체의 파이는 금액으로 치면 ‘0’이 하나 더 붙여질 정도로 커졌는데, 오히려 디자인의 존재감은 전보다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어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디자인을 전공한 한 학생이 어느 대형 법률사무소에 취업을 했어요. 디자인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한 것이 겉으로는 융합적 측면으로 바라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거든요. 법률사무소가 필요한 것은 디자이너가 아닌 테크니션이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법률사무소들이 서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어떻게 하면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건드린게 디자인이었던 거죠. 똑똑한 변호사들이 이런 저런 최고경영자과정을 들으면서 디자인을 써먹는 방법을 익힌거에요. 디자이너를 활용해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어보니, 일을 가져오기가 더 쉬웠단 겁니다. 이와 달리 20년 전 쯤인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느 디자인회사가 법률회사와 협업한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법률회사가 사건의 모든 자료와 시나리오를 디자인회사에 넘겨주고, 이걸 가지고 디자인회사가 변호사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냈죠. 지금의 사용자경험 디자인처럼 배심원들을 움직일만한 디자인으로요. 물론 법정에서 승소했고요. 만약 우리 사회에서도 디자인이 리더십이 있었다면, 이처럼 디자인회사와 법률회사가 협업을 한다든가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건데, 그러지 못하니 지금은 디자이너를 테크니션으로 쓰고 있을 뿐이죠. 하나의 예를 들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거의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과학, 기술, 경영. 여러 분야가 디자인을 조금씩 뜯어먹고 있는 형상이지, 디자인 자체의 가치와 영역은 전보다 높아진게 없는 셈이죠. 활용도만 높아졌지.


Jungle : 디자인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가장 큰 이유는 소통에 있어요. 대부분의 우리 디자이너들을 보면 비주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이라는 좋은 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통을 잘 못해요. 상대와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만들어낸 작업물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시켜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논리가 부족하거든요. 상대를 설득할 시각적인 결과물은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데, 논리적인 접근에서 약하다는 것이죠. 이는 디자인 교육의 문제라고 봐요. 스킬(Skill)을 향상시키는 교육은 잘 되어 있는데, 논리를 만들어내는 교육은 많이 부족하거든요. A와 B라는 학생이 있다고 해보죠. 어떠한 문제가 주어졌을 때, A는 문제를 다 읽고 공식, 즉 수학적 모델은 만들어 낼 수 있어요. 하지만 답을 내지는 못해요. 반면에 B는 수학적 모델은 만들지는 못하지만 만들어진 공식에 대해서는 금방 답을 내놔요. 융합시대에서 B는 완전 테크니션인거죠. 지금까지 우리는 B를 양성하고 있었던 겁니다. 얼마든지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리더십을 갖지 못하니까 우리 디자인 인재들이 결국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인접학문에 의해 테크니션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테크니션은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교육에서 좀 더 논리적인 측면이 강화된다면, A와 B 두 학생의 장점을 모두 갖춘, 사회적 리더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Jungle : 융합교육을 통해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디자인이 미래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 이 말은 비주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여 보여준다는 디자인의 강점을 어떻게 사회에 파급 시킬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융합교육은 꼭 필요합니다. 가까운 학문의 사람들끼리 모여 구성되는 게 이전의 사회라면, 이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전혀 다른 분야와의 교류가 확장되고 있는 세상이잖아요. 그러니 다양한 분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그들에게 배우기도 하는 그런 기회들이 많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죠. 그래서 융합교육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융합교육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죠. 서로 다른 분야가 모여야 하는데, 그게 결코 쉽지 만은 않아요. 물론 ‘돈'이라는 이슈가 끼어든다면, 아무리 생판 모르는 분야의 사람들이라 해도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협력하겠죠. 그런데 이게 학문으로 들어가다 보면, 경제성의 논리를 따지기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어요. 대신에 경제적 이익의 가치 만큼의 비전이나 밸류(value)가 있다고 한다면 다양한 분야의 참여가 가능해질 수 있겠죠. 지금 융합교육의 이슈이기도 해요. 과연 스테이크 홀더들에게 어떠한 공통의 가치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되는 것이죠.


Jungle : 융합교육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궁금해지는데요. IDAS 융합교육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나요?.

교육 프로그램으로 보자면 크게 세가지 과정이 있어요. ‘산학협력 융합프로젝트’, ‘융합세미나', ‘융합워크숍'. ‘산학협력 융합프로젝트’는 기업과 연계해서 미래형 컨셉디자인을 도출하는 프로그램인데, 한 프로젝트 진행할 때마다 디자인, 공학, 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모여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기업이 가진 기술에 디자인적인 것들을 덧붙이기도 하고, 아니면 새로운 콘셉트를 만들어보거나 하는 식이죠. 산학협력 프로젝트의 목적은 사실 수준 높은 아웃풋을 내보자, 이것 만은 아니에요. 그러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서로 이런 저런 고민을 함께 나누고, 문제를 발견하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져가는 경험이 오히려 진짜 목적이자 프로젝트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죠. ‘융합세미나'는 매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셔다 융합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로, ‘융합워크숍'은 MIT와 같은 해외 유수대학의 학생들이나 디자이너, 기타 디자인 인사들과 함께 실습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Jungle : 디자인계에서 융합교육은 초기라고 볼 수 있을텐데, 현재 고민거리가 있다면요?

일단 시작부터 지식경제부 지원사업이었고, 그게 5년차 계획이에요. 사업 기간이 끝나고 서도 지원이 이루어질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죠. 정말 제대로 된 융합교육이 되려면 지금의 지원으로는 부족한 면도 있고요. 결국 항상 고민으로 남는 것은 자립의 문제에요. 우리나라 산업은 정부 정책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아요. 지금 시대의 핫이슈가 디자인이라 이런 저런 지원도 받고, 커나갈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기지만, 어느 순간 바뀔 수도 있잖아요. 그 말은 곧 융합교육이 원하는 방향대로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죠.


Jungle : IDAS 융합교육,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디자인계는 지금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에요. 창의적인 젊은 스타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안돼요. 오히려 젊은 스타가 나오려 하면 위에서 막으려 하는 것도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융합이라는 이슈는 긍정적이에요. 공학이나 경영하는 사람들이 융합이라고 하는 판을 벌려 놨으니, 디자인은 거기 들어가서 자기 몫을 챙기면 되는 거죠. 한편으로는 융합이라는 키워드로 시장의 파이를 크게 만들어준 것에 대해 다른 학문 사람들에게 고맙기도 해요. 단지 디자인의 몫을 얼마나 챙길 수 있느냐가 문제죠. 이는 물론 디자인계 스스로 고민해야 할 문제고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오히려 도전적인 기회가 될 수 있을테죠. 더 잘할 거 에요. 젊은 사람들이. 융합교육의 목표라고 한다면 그런 왕성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여기서 제 역할은 학생들에게 소통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을 만들어 주는 것 정도고요. 이 융합교육이라는 통로를 통해 다른 학교,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사회에 나가기 전 미리 알고 지낼 수 있다면, 그것도 굉장한 수확이라고 봐요. 또 한 가지, 이번 사업을 통해 융합교육 프로그램을 잘 꾸려나갈 수 있다면, 나중에 이 교육 모델을 전략적으로 수출할 수도 있다고 봐요.


Jungle :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융합형 인재라 함은 어떤 모습일까요?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소통의 인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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