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8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우리는 이것이 자신의 모습이 맞는지 돌아보게 된다. 김대현 작가가 창조한 무나씨(Moonassi)라는 인물은 우리의 상상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의 가면을 무표정하게 들여다본다거나, 자신의 껍질을 벗겨 내는 행위 등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을 나타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마음 깊숙한 곳을 들킨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 편의 일기나 영화의 스틸 사진처럼 우리 마음의 한순간을 담아내는 김대현 작가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http://www.moonassi.com/
김대현 작가가 무나씨를 처음 그린 것은 대학교를 다니던 2008년이었다. 원래 동양화를 전공했던 그는 학교 수업이 싫지는 않았지만, 좀 더 자신에게 맞는 작업을 펼쳐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노트에 낙서처럼 그렸던 드로잉이 그의 마음에 와 닿았고, 이후 생각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나씨를 그리는 것이 즐거웠던 김대현 작가는 졸업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고, 브레인팩토리에서 열렸던 신진 작가 공모에 당선이 되어 첫 개인전을 하게 된다. 이후 지금까지 줄곧 무나씨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또 생각하고 있다.
그의 그림 속에는 흑과 백, 두 가지 컬러만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동양화를 전공했던 것 때문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는 그는 오히려 먹이나 한지 등의 재료와 그 정신을 지나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펜, 잉크, 마카 등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순간, 순간 표현하는 것이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별도의 작업실이 없었다. 작은 책상 하나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만 있다면 자신의 방이든, 해외 여행 중에 머문 친구의 방이나 잠시 머물렀던 고시원 어느 곳에서도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작업을 한다고 하기 위해서는, 작업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큰 100호가 넘어가는 그림을 그리지도 않고, 다양한 컬러를 필요로 하지 않기에 어느 곳이든 작업실로 만들 수 있었다.
작업을 대하는 간결하면서 소박한 태도는 김대현 작가가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일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서 작업 도구나 방법이 그에 맞춰진 것도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생계를 이유로 작업과 생계를 동시에 이어나가긴 하지만,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재로 어느 한 쪽을 포기하거나, 오랫동안 지속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대학을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일과 작업을 함께 해왔다. 그렇기에 지금의 작업 방식은 그의 삶과 경험이 더해진 김대현 작가만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우리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우리가 흔히 느낄법한 감정들이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대현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추상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비교적 명확한 이미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어렵고 난해한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려고 한 것이다. 평소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소심하고 눈치도 많이 보는 편이었던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느껴지는 감정들과 그와 함께 떠오르는 단어들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불현듯 떠오르는 감정의 느낌과 단어들은 작품의 제목이 되기도 하고, 제목을 짓는 아이디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김대현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별개로 제목 짓기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말한 바 있다. ‘없었던 것처럼 있고 싶다’, ‘인칭기계’, ‘있음을 치르다’와 같은 제목들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그 자체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제목들은 이처럼 단순히 그림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지와 텍스트는 서로의 의미를 보완해주기도 하면서 교감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한글과 영문 제목이 함께 살펴보면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문 제목을 한글 제목을 뜻에 맞게 변형하는데 그치지 않고, 비슷하거나 아예 다른 제목을 지으면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김대현 작가가 그려내는 이미지는 명확한 편이지만, 제목에서 살펴볼 수 있듯 작품 내, 외부에 해석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모든 사람이 제각각 느끼는 감정의 결이 다르듯 결말이 정해진 작품이란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그의 그림을 보면, 어떤 이야기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는 작가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다양하게 해석해내는 것이다. 김대현 작가는 이후 자신의 그림을 모아 이야기가 있는 책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개인 작업 이외에도 경험을 쌓고 있는 그는 최근 발매된 여성 싱어송라이터 한희정 2집 앨범의 커버 아트웍을 그리는 한편, 뉴욕 타임스에 등록된 아티스트로서 정기적으로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다. 협업을 한다는 것은 개인 작업과는 다른 맥락을 갖고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가능한 도전을 계속 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현 작가는 최근 YCN 프로페셔널 어워즈에서 일러스트 부분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 이전에도 해외 매체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꾸준히 소개되어왔다. 그의 작업은 해외의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무나씨라 이름 붙인 음악과 안무가 줄리아 코스트(Julia Cost)는 공연, 타투 등 언어나 국적이 다른 나라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소리, 나아가 신체 언어로서 표현이 된다는 점은 작가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공감’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텍스트 그대로 교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대현 작가의 작업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근하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의 감정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