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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예술촌 사는 디자이너들의 사정

나태양(tyna@jungle.co.kr) | 2015-09-23


더는 낯설지 않은 이름, 문래. 낡은 저층 건물들이 즐비한 철공 단지에 예술가들이 둥지를 트는가 싶더니, 2010년 창작지원센터 ‘문래예술공장’이 개관하면서 문래동에는 ‘예술 거리’, 예술촌’, ‘창작촌’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한다. 그러나 노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신의 한 수도 인제 와서는 자충수가 됐다. ‘철공소와 예술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동네’라는 기표는 매스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문래를 ‘도시 명물’화했을지언정,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담론을 끌어안지 못하는 까닭이다. 누군가에게 문래동은 ‘문래동’이기 앞서 삶의 터전이며, 그 생태계 또한 기술자나 예술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여기, 예술촌이라는 프레임의 경계에서 조금은 다른 목소리를 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구 디자이너 송기두(송기두 디자인 스튜디오)와 건축 디자이너 신해철(Critical Mass Lab), 오 수(무아건축), 최무규(건축사사무소 SF LAB)다.

에디터 | 나태양(tyna@jungle.co.kr)
 

문래동에 보금자리를 내리며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기도 했지만, 오다가다 ‘건축 기반으로 작업하는 디자이너가 또 있더라’고 말만 들은 사이도 있었다. 일 년 반에서 길게는 이 년, 점조직처럼 활동하고 있던 네 명의 디자이너를 한 데 앉혀놓은 계기는 올해 초 ‘예술공간 세이’에서 열린 〈오프-시즌(Off-season)〉 전시였다. 문래동에서는 건축 디자이너라고만 해도 보기 드문 조합일진대, 알고 보니 자잘한 공통점이 많았다. 네 명 전부 독립한 자영업자에 동갑내기, 사수자리, 집안에서는 막내란다. 작업실도 가깝겠다, 화제가 끊일 일이 없다 보니 물 흐르듯 왕래가 잦아졌다. 때로는 실없고 때로는 치열했던 대화들은 마음속에 어른거리던 모종의 욕구, 문래동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채울 수 없었던 허기를 공감이라는 형태로 솟아나게 했다.

“문래동 안에서도 우리가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디자이너로서의 미감을 가지고 전시에도 참여해 봤지만 영 ‘내 것’ 같지가 않았다. 나쁘게 얘기하면 들러리 같은 느낌도 들었다. 문래동 신(scene)에서 주류를 이루는 파인 아트 전시는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전격적으로 표명할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거창하게는 아니라도 좋으니 그들 자신을 한 번 소개해보자는 모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들 네 명이 누구이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인지를 드러내고 싶다는 갈증,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가 보자는 의식적인 에너지는 〈Designer’s Cut〉이라는 공동 전시를 추동했다. 문래동에 위치한 건축사사무소 SF LAB 1층을 ‘space Rdc’라는 디자인 갤러리로 계획하고 있던 최무규 디자이너는 〈Designer’s Cut〉을 첫 번째 독립 기획전으로 선보이자고 결정했다.

“하나의 디자인이 완결되기까지 디자이너는 많은 고민을 한다. …… 더욱 합리적이고 아름다우며 사용하기 편리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디자인은 세상에 태어난다. 그런데 이 결과물은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기획 의도는 전시 소개 글 첫 문단서부터 명백하게 드러난다. 〈Designer’s Cut〉은 결과물로서의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 프로세스에 방점을 찍은 전시다. 프로세스라 하면 기계적인 과정을 연상하기 쉽지만, ‘디자인 프로세스’라는 용어가 품은 미묘한 뉘앙스는 체계화된 공정은 물론이고 디자이너의 개인적인 작업 방식까지도 아우른다. 〈Designer’s Cut〉에서 디자인 프로세스라 하면 테크니컬한 소동보다는 ‘인간적인 고민’에 근접한 의미다. 이들은 디자이너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되, 완결된 전시물을 통해 보이기보다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로 이해되는 방식을 택했다. 드로잉, 스케치, 모형, 사진 등으로 남겨진 과도기적 자취들이 이번 전시에서 낱낱이 공개되는 이유다.

〈Designer’s Cut〉의 전시 공간은 독특하게도 갤러리 밖에서 출발한다. 최 디자이너가 애당초 안팎 경계가 없는 갤러리를 구상했던 만큼, 전시 기간에는 갤러리 문을 떼어내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이 연결되는 콘셉트에 힘을 싣는다. 오프닝 한정이지만 갤러리 앞 골목에 설치되는 바(Bar)가 전시의 시작이다. 신해철 디자이너가 독립 후 처음으로 맡았던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이자 바텐더, ‘벡(Beck)’이 이동식 바 ‘모바일-벡’을 갤러리 앞에 끌고 와 밤새도록 칵테일을 제공하기로 했다. 디자인 프로세스의 산 표본이 전시되는 셈이다.

갤러리 1층에는 송기두 디자이너의 〈스며들다〉가 스며들어 있다. 송 디자이너는 으레 가구 디자인의 덕목으로 꼽히는 합리성과 기능성보다도 감성과 이미지를 추구하는 작가다. 몇 년 전만 해도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했던 그는 가구를 만들 때도 공간의 관계를 생각한다. 〈스며들다〉에서는 공간에 함몰되지도 공간을 압도하지도 않는 가구, 공간과 가구의 조화에 대한 열망을 원목이 아닌 새로운 물성에 표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한지와 먹을 활용한 ‘수묵화’ 모티프가 등장한다. 여백과 대상의 수묵화적 관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송 디자이너는 공간이라는 ‘여백’과 가구라는 ‘대상’이 이루는 대화와 긴장을 구현하고자 했다. 수묵화의 ‘대기원근법’을 응용, 농담이 들어간 한지 레이어를 입체적으로 쌓아 완성한 〈스며들다〉는 가구에서 공간으로 확장된다. 작품 오른편에는 한지, 패브릭, 휴지 등 다양한 소재에 먹의 번짐 효과를 실험한 테스트 오브제와 함께 구상 스케치를 전시했다.

작업을 통해 사람-사람, 사람-공간, 주체-객체를 매개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를 탐색하고 있는 신해철 디자이너는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을 전시 공간으로 선택했다. 기능 중심에서 인터랙티브 디자인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만큼, 신 작가의 작업은 건축과 인테리어, 가구, 조형물 등 다양한 장르에 발을 담그고 있다. 그는 단기간에 떠올린 밀도 있는 생각들을 드로잉으로 빠르게 표현하고, 발생한 경우의 수를 줄여나감으로써 결과물을 도출하는 디자이너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터디 과정에서 나온 대안과 배리에이션들을 드로잉 및 모형으로 펼쳐놓고 제시한다. 감수분열한 것처럼 증식한 폼보드 스터디 모델도 재미있지만, 신 디자이너가 문래동에서 익힌 용접 기술로 제작한 구로 철판 모형은 그 물성만으로도 독특한 감흥을 준다.

〈Designer’s Cut〉의 세 번째 시퀀스는 세 권의 책으로 장식된다. 최무규 디자이너의 〈세 권의 사연〉은 세 개의 프로젝트가 남긴 객관적인 기록들을 주관적인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편집 디자인 작업이다. 1권에는 건축사사무소 SF LAB을 리노베이션하며 겪었던 참사(?)와 우여곡절이, 2권에는 클라이언트가 변화하는 모습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던 문래동 ‘상상채굴단’ 프로젝트가 담겨있다. 그러나 클라이언트와 지지부진한 분쟁을 겪었던 〈춘천 세 자매 집〉 프로젝트를 다룬 3권에 이르면 연대기 순으로 자료를 배열하는 방식을 한 번 뒤튼다. 클라이언트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삽입해 텍스트적 요소를 첨가한 최 디자이너는 3권에서 이미지를 시간순으로, 편지는 시간 역순으로 제시한다. 건물 이미지가 구체화할수록 대화는 기초적인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이러니에는 ‘어찌 보면 프로젝트의 실마리가 초반에 나눴던 얘기들에 숨어있지 않았을까’라는 최 디자이너의 고민이 담겨 있다.

가구에서 가구와 건축, 그리고 더욱 전형적인 건축 모델로 흐름을 좁혀 가던 전시는 마지막 섹션에 와서 다시 자유로운 예술 장르로 확장된다. 디자인과 예술을 경계 짓지 않는 오 수 디자이너는 두 가지 작업을 전시에 가져 왔다. 독립하기 전,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업무 프로세스에 익숙해져 있던 그는 해외 비영리 예술 단체 활동을 계기로 ‘디자인하는 즐거움’을 회복한다. 이탈리아 레지던시에 남기고 온 100% 자연 소재의 아지트(나무집)를 소재로 한 〈아지트 인 지네스트렐레〉와 베니스 현지에서 모은 폐품으로 게잡이 통발을 제작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베니스 게잡이〉는 그의 직관이 가장 고조되었던 경험에 대한 기록이다. 리서치와 테스트 및 제작, 결과를 공유하는 사후 과정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는 텍스트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이미지와 소품들로만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이드라인 없이 이미지를 자유롭게 뒤적거리는 과정에서 관객의 기억과 작가의 기억이 뒤섞이며 새로운 감정과 기억이 생성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의 경계가 사라져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문래동에 뿌리를 내려 ‘자영업’도 하고 ‘작업’도 하는 이 네 디자이너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디자이너는 무엇인가? 나는 디자이너인가? 무엇이 디자인과 예술을 구분하는가?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도 ‘지적 행위의 이타성으로서의 디자인’이라는 지극히 비세속적인 기조 아래 모인 네 디자이너를 만나 봤다.

Jungle : 문래동이라는 지역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신해철 디자이너(이하 신): 호주 체류 당시 작가끼리 쉐어하는 작업실을 보면서 막연한 로망이 생겼던 거 같다. 지인에게 작가들이 모여있는 동네라며 추천받을 당시만 해도 문래동이 철공 단지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교류할 길을 찾아서 흘러들어와 보니 환경이 이랬던 거다. 그런데 외부 활동이 적다 보니 철공소 사장님들과의 관계가 오히려 시너지로 작용했다.

최무규 디자이너(이하 최): 신 작가는 여기 와서 먹고 살 길이 열린 케이스다. 밥벌이로 용접을 한다. ‘하급 기술자’다(웃음).

오 수 디자이너(이하 오): 저거(구로 철판 모델)도 아무나 못 한다. 돈 주고 맡기지.

: 강의가 부업, 용접이 주업이 됐다(웃음). 가난해서 시작한 것도 사실이지만, 철을 다루게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작업의 범위가 크게 확장됐다. 전적으로 환경이 만들어준 거다.

: 서울에 살았지만, 문래동에는 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오히려 문래동을 스쳐 지나면서 “빨리 재개발돼야지”라고 말하는 유의 사람이었다.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자리를 찾던 중 지인의 소개로 문래동에 들어왔는데, 쇠 냄새나 도시의 남루함이 맘에 들더라. 신 작가처럼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해서 선택한 건 아니었지만, 작가 교류 측면에서는 확실히 장점이 크다. 강남이나 홍대처럼 상업화된 지역이었다면 이런 관계가 형성되기는 힘들었을 거다.

: 엔지니어링에 대한 관심이 결정적이었다. 건축 작업에 응용하려고 원목을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금속에 호기심이 생겼고, 이런 이유로 사무실 터를 구하면서도 공업단지 중심으로 알아보던 중이었다. 말로만 듣던 예술가들의 존재는 나중에서야 발견했다. 전시에 초대받고, 그 전시가 다른 전시로 연결되는 흔치 않은 경험은 우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송기두 디자이너(이하 송): 이전에는 어렴풋이 예술가들이 있는 재개발 예정 지역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여기서 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회사 동기가 문래동에 작업실을 구한다기에 따라왔던 게 계기가 됐다. 신 작가와는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이다.
예술가 커뮤니티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를 보면 자유롭게 자기 예술관을 토론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그런데 막상 모임이나 전시에 참여하다 보니 나랑은 좀 다른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중 최 작가와 오 작가를 만난 것이다.

Jungle : 실제로 살아보니 철공소와 작가들의 커뮤니티 분위기는 어떤가?

: 호불호가 명확하다. 호의적인 분들도 있는 반면, 어떤 사장님들은 대놓고 욕을 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벽화나 조형물이 생기기 전에도 부족함 없이 삶을 잘 영위하고 있던 분들이다.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단지 풍경 상 낙후되어 보인다는 이유로 문래동에 뭔가가 생기기 시작한 거다. 이런 움직임을 환경미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고 찾아온다거나 하는 근래의 변화에 거부감을 가진 사장님들도 분명히 있다.

: 사실 다달이 월세 낼 고민은 우리가 하지, 철공소 아저씨들은 벤츠 몰고 다닌다(웃음). 지내다 보니 철공 기술자라고 해서 무조건 순수하고 순박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들도 욕망을 가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철공소 사장님들 눈에는 작가들이 그림 그린다고 앉아서 고민하고 자빠져 자는 잉여 인간처럼 비치는 모양이다. 그런 괴리감 때문인지 작가들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펜은 철공소 아저씨들이 쓰는 그라인더나 마찬가지다. 땀을 흘리면서 쇠를 자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삶의 치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도 목숨 걸고 일한다.

Jungle : 개인 스튜디오나 건축사무소로 독립하기 전부터 개인 작업을 추구하는 편이었나?

: 내 영역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작업에 끌어오고 싶다는 열망은 어떤 디자이너에게나 있지 않을까. 나 같은 경우 개인 작업의 기회가 주어지면 깊은 고민 없이 ‘당연히 해야지’ 하는 주의였다. 요즘은 생각이 좀 더 분명해졌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건축 디자이너로서 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건축가로서의 작업도 예술로 읽힐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디자이너에서 아티스트로 변한다기보다는, 표현이 읽히는 방식의 차이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 회사에 다니던 시절 예술작업은 ‘가오’ 같은 거였다. “나는 작업하는 건축 디자이너야”라는 식으로(웃음). 그 열망도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를 굳이 꼽자면 회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아 비영리 예술 단체에서 활동했던 시기다. 당시에는 작업을 해야겠다거나 말아야겠다는 의식 자체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게 작업인지도 몰랐다. 물론 지금도 내 작품이 거창한 예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작업이라 해도 내게는 건축설계와 별반 차이가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Jungle : 전체를 100이라 놓고,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와 개인 작업의 비중은 어느 정도 될까?

: 장담하건대 우리 모두 클라이언트가 100명 나타나면 100명 다 받는다(웃음).

: 때려 치워, 때려 치워(웃음). 나의 경우 모든 프로젝트가 작업으로 연장된다. SF LAB 공사 과정이 〈그래도 비는 샌다〉라는 작업으로 나오기도 했고, 〈세 권의 사연〉에서도 세 개의 프로젝트를 편집 디자인으로 작업화했다. 개인적으론 건축가의 역할이 지나치게 협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space Rdc나 〈Designer’s Cut〉은 건축가가 발휘하는 ‘광의의 직능’을 보여줄 기회라 더 특별하다. 그래서 이런저런 프로젝트로 무척 바쁜 와중에 돈도 안 되는 거 가지고 이러고 있다(웃음). 오히려 오 작가가 일 때문에 전시를 좀 소홀히 하는 경향이…….

: 저 말은 요즘 돈은 돈대로 못 벌고 욕도 먹고 있다는 뜻이다(웃음). 내게 프로젝트와 개인 작업은 보완 관계다. 내 돈 써서 전시하는데도 엄청나게 괴로운 작업도 있고, 클라이언트와 즐겁게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프로젝트도 있다. 그런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좋은데 돈이 없는 클라이언트도 있고, 악독하지만 돈은 많이 주는 클라이언트도 있고.

Jungle : 전시 준비를 프로젝트 작업과 비교하자면 어느 쪽이 더 편한가.

: 프로젝트는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준다. ‘내가 정말로 ‘쓰이는 물건’을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전시는 내 머릿속에 떠다니던 개념들을 자유롭게 표출할 기회지만, 사용될지 아닐지조차 불분명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해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디자이너로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바는 예술성을 띤 가구지, 가구의 형태를 띤 예술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며들다〉를 작업하는 과정에서도 한 번 부수고 새롭게 만드는 해프닝이 있었다. 예술품으로서는 몰라도 디자인적 관점으로는 지나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디자이너는 많은 변수를 조정해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베스트가 안 된다면 대안을 찾아낸다. 하지만 전시에서는 변수가 너무 많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으니 이게 안전하고 괜찮은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 상황은 결국 ‘정말 내 감각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사람들이 안 좋아하거나 전혀 다르게 읽을까봐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성장의 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 뒤엔 ‘먹히겠지, 괜찮겠지’하는 일말의 자신감도 있고.

: 내겐 관객도 클라이언트다. 화가들이 작품을 할 때 고민하는 이유는 언젠가 그것이 세상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관객들이 작품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 자유롭게 느껴야 하는 부분을 내가 지나치게 유도하지는 않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건축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이 금액과 이 공간에 이렇게 해주는 게 맞을까? 내 품을 좀 뺀다 해도 그림이 좋으니까’라는 식으로 일의 한계치를 끊임없이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다.

Jungle : 그럼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보자. 클라이언트는 원하는 조건을 정확히 정해준다. 하지만 전시에는 관객이라는 익명의 클라이언트가 무수히 존재하는 셈이다. 어떤 상황을 더 선호하나.

: 제약 조건 없이 설계를 하라면 쉬울 거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사실 건축의 많은 부분이 법규나 기술, 대지 형상 등의 제약 조건에서 출발한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네 마음대로 해봐’ 하면 되레 쭈뼛해지는 거다. 객관적 데이터로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건 쉽지만, 그것이 어떻게 보이기를 원하는지 주관이 섞이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없을 줄 알았던 제약 조건들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

: 전시 소개 글을 보면 ‘디자인의 결과물은 인간을 위한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는 문장이 있다. 프로젝트에서는 클라이언트의 개성에 맞춰 작업의 범위를 축소할 수 있지만, 전시에서는 ‘인간을 위한 보편성’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뽑아낼 게 없다. 불특정 다수의 보편성에 부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자유로워서 생기는 큰 제약이다.

: 개인적으론 둘 다 어렵다. 실질적인 건축 프로젝트에 논리적 프로세스가 요구된다면, 작업에는 감정이나 직관이 작용한다. 클라이언트와 일하면 제약조건이 많아서 어려운데, 전시 준비는 내가 해왔던 프로세스와 달라서 어렵다. 하지만 전시든 프로젝트든 기능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임한다. 전시에서 실험적인 성취를 했다면 그것을 프로젝트에도 가져오고 싶다. 그러다 보니 돈 안 되는 프로젝트나 남들이 안 하는 시도들을 해서 힘들기도 하지만(웃음).

Jungle : 소개 글에서 디자이너의 공통점으로 ‘지적 행위의 이타성’을 꼽았다. 송 디자이너의 〈스며들다〉는 사용성 측면에서 편안한 의자는 아닌데.

: 내게 사용성은 기능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좋은 디자인에는 기능성 외에도 대상에서 느껴지는 비물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불편해도 의자에 앉음으로써 느끼는 감흥이 있다면 그 또한 일종의 사용성이 아닐까. 나 같은 경우 비물질적인 가치에 많은 비중을 드는 디자이너다. 물론 클라이언트를 위한 의자라면 좀 더 기능적이되 내가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최대한 반영하는 식으로 비중을 조절할 것이다. 하지만 전시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개념을 극대할 수 있다. 그 자유로움에서 전시의 재미를 찾는다.

Jungle : 오 디자이너는 이번 전시에서 건축 작업을 배제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 얘들하고 섞일까 봐(웃음). 그냥 이 주제에는 이 작업들을 이런 방식으로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기술이 의미가 없어지는 직관의 영역, 즐거운 감정 상태에서 발생한 작업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지트 인 지네스테렐레〉와 〈베니스 게잡이〉는 나의 직관이 가장 고조되었던 경험으로 남아 있다. 이후에 건축 작업을 꺼내놔야 할 시기가 온다면 책이나 모형으로 보여주면 된다.

Jungle : 송 디자이너는 작업을 중간에 한 번 엎었다. 다들 이렇게 수정 변경을 많이 하는 편인가.

: 그런 과정 때문에 더 시간에 쫓기는 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라면 다듬어지지 않은 뭔가를 잘 못 보는 성향 탓이라 하겠다. 한편으로는 정성스러운 작품을 봤을 때 내가 받는 감흥처럼, 내 정성이 들어간 작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다. 빠르게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도 있겠지만, 나는 내 손재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 난 없었다.

: 하면 할수록 ‘이거구나!’ 싶었어?

: 대단하다. 작업하면서 “그래, 이거였어” 했나 보다(웃음).

: (무시)나 같은 경우 작품을 보여주는 형식은 그대로 갔다. 올해로 독립한 지 3년째다. 프로젝트가 많이 축적돼있지 않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입장이나 이해관계도 있어서 이런 조건을 고려해 작품을 준비했다. 개중에는 심지어 20만원짜리 프로젝트도 있지만, 실험적인 뭔가를 추구하고 구현했다면 보여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 성향 얘기를 하자면, 다른 세 명의 작가가 나를 ‘냉정한 놈’이라고 표현한다. 디자인 프로세스도 그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많은 대안을 빠르게 서칭해 그 가짓수를 줄여나가고, 한 번 하겠다고 결심하면 그렇게 굳기 때문에 내 프로세스에서는 변칙적인 요소가 적다. 결과물이 계산한 대로 나온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래서 지평이 좁아지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일부러 예술 전시나 공동 작업에 참여해 불확정적 요소를 실험해보려고 하는 편이다.

: 일단 〈Designer’s Cut〉에서는 충분히 보여주고 싶은 방식대로 갔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가끔 내가 설계하고 공사까지 마쳐 놓고도 황당한 결과물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럼 난 미안하다고,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고 뜯는다. 사비를 들여서라도 재작업한다.

Jungle : 네 명은 앞으로도 함께 활동할 생각인가? 향후 계획이 있다면.

: ‘우리가 프로젝트 그룹으로서 하나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결론은 ‘불가능하다’ 였다. 저마다 디자인 철학과 작업 방향이 있으니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을 때 또 한 번 시너지를 만들어보자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말 그대로 ‘프로젝트 그룹’이다. 프로젝트 그룹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사는 문래동이라는 도시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 속에서 디자이너가 가질 수 있는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고민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될 것이다. 그 외엔 다들 돈이나 잘 벌었으면…(웃음).

지난 9월 18일 저녁 8시, space Rdc에서는 〈Designer’s Cut〉의 오프닝 파티가 열렸다. 계획했던 대로 바텐더 ‘벡’의 이동식 바가 갤러리 맞은 편에 설치되고, 작가들은 ‘스몰 토크’라는 토크 세션을 통해 본인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관객과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동네 친구 같은 문래동 지인들과 전시에 초대 받은 손님들이 자리를 채웠고, 보기 드문 소란에 전시장 주변을 기웃거리는 행인들도 볼 수 있었다. 그라인더 소리가 사라진 문래동의 밤 골목 풍경이 조명과 술, 음악으로 들썩거리는 가운데, 네 디자이너는 못다한 사연들을 밤새도록 이어 나갔다.


전시명_ 〈Designer’s Cut〉
참여 작가_ 송기두, 신해철, 오 수, 최무규
전시 장소_ space Rdc(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2가 14-63, SF LAB 1층)
전시 기간_ 2015. 09. 18(금)~2015. 10. 02(금)
운영 시간_ 오후 12시~오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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