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5
‘슥삭슥삭……’ 일러스트레이터 천소,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런 소리가 들린다. 어떠한 무거운 생각도 깊은 뜻도 담으려고 애를 쓰지 않아 가벼워진 손이 종이와 맞닿으면서 내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쇠뭉치가 가슴에 들어 앉은 날, 그녀의 그림을 만났다. 무던하게 유영하고 있는 그림 속의 많은 것들은 그 쇠뭉치를 슬쩍 들고 나가주었다. 어떠한 관념도 이상도 감정도 과하지 않은 그림들을 그린 그녀가 궁금해진다.
취재| 이동숙 기자 (dslee@jungle.co.kr)
수화기 너머의 새침한 목소리도 작업실 가득 채운 플레이 모빌도 작업실이 떠나갈 듯 웃어재낄 수 있는 그 순수함도 모두 그녀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본능적 재능을 담담하게 인정하며 밥 먹듯 볼 일 보듯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난 그녀가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 녹음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보니 그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내가 들은 그 많은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 들은 거지? 혹 녹음이 잘못되었나? 하면서 그녀의 그림들을 살펴보는 순간 예리한(?) 이기자 알아버렸다. 그녀의 그림이 쉼 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는 것을.
미술 심리학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녀의 그림은 솔직한 그녀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림은 꽃과 별 그녀가 좋아하는 색들로 가득하고 우울한 날에는 기분 좋은 것을 떠올리며 종이 가득 채워 넣는다. 우리가 말로 글로 이야기를 풀 듯 그녀는 그림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너무도 선명하고 분명하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방법으로 표현되기에 더욱 달콤, 담백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그릴 수 있는 모든 그림을 그리면서 천천히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겠다는 그녀의 그림은 정말 다양하다. ‘이게 천소 스타일이야? 아님 저거?’ 라며 혼란이 생길 정도로 서로 다른 느낌의 그림들을 쏟아낸다. 재밌는 것은 무엇이든 모아요! 아니 그려요! 라며 그리는 것에 열중하는 사이 그녀 주변엔 잡다하고 별스러운 것들이 사랑스럽게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녀의 작업실도 마찬가지. 그녀의 손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지극히 사랑해 마지 않는 플레이 모빌은 작업실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며, 갖가지 인형들이 빼곡히 한자리씩 차지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천소는 너무 행복하다.
그녀의 작업실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어릿광대 플레이 모빌이 웃으며 반겨준다. 벽면 한 가득 그녀가 그린 그림이 둘러싸고 그 아래에는 플레이 모빌들이 서로 다른 공간과 세상을 만들며 오밀조밀 모여 있다. 곳곳에 그녀가 그려 넣은 것들과 그녀의 정성스런 손길이 느껴지는 플레이 모빌들이 가득한 이 곳이 바로 천소의 작업실이다. 상상의 나래가 맘껏 펼쳐 질 것 같은 그런 공간이다.
천소의 작업실은 일 하는 공간이라기 보다 놀이 공간이다. 조그만 플레이 모빌들을 쳐다보고 만지작거리고 또 쳐다보고 시간 나면 다른 인형들도 만지작거리고 쭐레쭐레 온 작업실의 것들과 놀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작업실 근처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 인형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끝내 작업실로 데려온다. 이 공간이야 말로 그녀의 손을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숨구멍을 뻥-하고 크게 뚫어놓고 그 구멍 사이로 시원한 바람 불어 코를 간질이면 그녀는 작업을 시작한다. 작은 친구들이 준 무한한 상상의 부산물들은 고스란히 그림으로 옮겨진다. 쥐어짜낸 듯한 상상이 아닌 원래 그게 정상인 듯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주 그리게 되는 것이 있냐는 질문에 물고기와 새를 많이 그리게 된다고 했다. 그것도 하늘을 날고 있는 물고기와 물 속에서 헤엄치는 새를 말이다. 어찌 보면 절대 살 수 없는 공간과 연결시켜놓은 잔인한 설정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림 속에서 그들은 전혀 갈 수 없는 곳에서 너무도 자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림에서 만난 그녀의 물고기들은 그 커다란 몸 통에 뭔가 하나씩 아니면 여러 개를 담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꽉꽉 채워 터질듯한 물고기, 단 하나의 마음이 들어 앉은 물고기, 그렇게 꽉꽉 채우고 유유히 하늘을 나는 그들이란!
그녀 고집도 있다. 자기와 맞지 않는 작업은 애초에 수락을 하지 않는단다. 박복한 페이와 줄어드는 일거리에 점점 설 곳이 위태로워 진다는 이 땅의 프리랜서 디자이너임에 틀림없는데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돈 많이 벌었나 보다는 얘기도 듣지만 단지 행복하고 즐겁게 그리고 싶을 뿐이다. 돈에 얽매여 머리에 똥만 차는 날이 그녀가 더 이상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날이 될 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작업물들은 동화책부터 학습지, 자녀를 위해 부모가 보는 책들이 대부분인 듯 했다. 제일 좋아하는 부분을 보여달랬더니 그녀는 당근과 인삼, 땅에 뿌리를 내리고 꿈틀거리는 페이지를 자랑스럽게 펼친다. 뿌리가닥의 꿈틀거림은 그녀의 장난끼가 다분히 들어가 있었고 정성껏 표현한 그녀의 노력이 느껴졌다. 또한 그림이 단지 멋 부리기만은 아니란 것을 말해준다.
Jungle : 지금 하는 일
책, 학습지 표지, 잡지 등 일러스트 프리랜서 작업 계속 하고 있다.
Jungle : ‘천소’ 이름에 대해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인 바이러스 헤드의 사장님이 지어주셨다.
천재 소녀를 줄인 말로 일을 잘한다기 보다 손이 빨라서 사장님이 천재소녀라고 놀리다가 천소가 되었다. 원래 사용하던 멋있는(!) 이름은 묻혀버렸다.
Jungle : 애니메이션 과를 들어간 이유
그림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시각 디자인과는 너무 딱딱할 것 같았고 회화과는 너무 거한 느낌이 들어 싫었다. 일러스트 학과가 당시 2년제밖에 없어서 애니메이션과가 떨어지면 2년제 일러스트 학과를 가려고 했다. 다양하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Jungle : 프리랜서는 어떻게
4~5년 정도 바이러스 헤드에서 일했다. 캐릭터,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광고 등등 잡다한 일을 많이 했다. 그 뒤 자연스럽게 홀로 나와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Jungle : 작업 스타일에 대해
온리 포토샵 작업으로 모든 그림을 소화해 낸다.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오직 포토샵뿐!^^
홈페이지 오시는 분들이 ‘페인터를 잘 쓰시네요’ 하는데, 페인터 작업은 없다. 손 그림은 일적으로 할 땐 안 그린다. 요즘은 작업하기 편하기 때문에 손 그림 느낌의 컴퓨터 작업을 선호한다.
Jungle : 가장 자주 그리거나 그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
물고기를 많이 그리는 듯. 하지만 하늘을 나는 물고기 바다 속에 있는 새를 그린다. 너무 잔인한가? 하하 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을 많이 그리는데 언젠가 심리학 분석 쪽에서 찾아보니 앉아 있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쉬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Jungle : 자주 사용하게 되는 색
누리끼리한 색. 노란색, 주황색 계통이 많이 쓴다. 딱히 주황색을 쓰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용하는 것들이 이런 색들이 많다.
Jungle : 자신만의 스타일에 대한 고민
지금은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놓고 고집하지 않으려 한다. 여러 가지 다양하게 많이 그리고 싶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스타일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Jungle : 인형을 만드는 작업과 플레이 모빌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레고와 비슷한 듯 하지만 퀄리티나 디자인 면에서 월등하다고 느낀 후 그 뒤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알아보다가 국내 동호회가 없단 걸 알고 카페를 만들게 되고 수입하던 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직접 수입까지 하게 되었다.
하나의 판형이 색깔만 바꾼다거나 하는 것이 절대 없이 하나하나 다른 디자인에 따라 각개의 판형에 따라 제작하고 컬러나 재질 등이 훌륭하다. 일반 사람들이 많이 알고 사랑해 주면 좋겠다.
Jungle : 내 속 구조도, 자세히 보니 여러 가지 뭔가 많이 들어 있다
일은 해야겠고 놀고 싶은데 핑계만 늘고 돈만 밝히니 머리에 똥(!)만 차는 이야기가 저 물고기 속에 다 들어있다.
Jungle : 홈피를 보면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행복해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천소에게 그림이란
내 그림 중에 어떤 애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 만화책보고 티비보고 ‘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 아 심심해 죽겠다 만화나 그려야지..’ 하고 하는 게 있었다. 그런 거 같다.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런 것은 일부러 그려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는 약간은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어릴 때도 벽에 하도 그림을 그려서 벽에 붙여놓은 종이를 매일 바꿔 줘야 할 정도로 많이 그려댔다고 한다. 얼굴 예쁜 거 타고나듯이 그림을 그리려는 재능을 타고 난 듯. 그 후 재능을 썩히느냐 발전시키느냐는 자기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