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05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늙어간다.
시간을 두고 시간이 만드는 스타를 알아주기 보다는 어디에선가 혜성처럼 나타난 ‘그’를 더 믿는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상영은 천천히 걸으려 한다. 나름의 소신과 믿음이 있기에.
그는 틀에 박힌 무엇을 매우 싫어한다. 새로운 시도 속에 찾아지는 즐거움을 맛보지 않은 자 누가 이해할까?
그래서 서상영은 늘 노력한다. 항상 노력하고 무언가를 추구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contemporary mind가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 옷을 만들면서 생각한다. 나와 같은 마인드를 갖은 사람들이 입어 줬으면 하는 바램.옷이라는 것을 사회적 신분의 상징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그저 삶을 즐기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한다.
모든 디자인에는 컨셉이나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함에 있어 소비자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비쥬얼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의 컬렉션에는 늘 주제가 있다.
올 해 4월에 있었던 그의 두 번째 컬렉션에서 그는 ‘거울’을 소비자와 의사 소통할 수 있는 도구로 삼았다. 거울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보듯이, 패션이 거울일 수 있다는 컨셉.
이번 10월 4일에 열릴 그의 세 번째 컬렉션의 주제는 무엇일까? 한결 가벼워진 무엇이지만, 아직은 밝힐 수 없다고. 무척이나 궁금하다.
신사동 가로수 길.
내가 몇 해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지나다니던 그 길.
한 달에도 몇 번씩 바뀌는 패션 샵, 철마다 바뀌는 요란한 쇼 윈도우.
그 가운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있었다.
한글과 영문이 뒤섞여 시끌거리고 오색 찬란한 옷들이 요란하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가운데, 아무런 간판도 없이, 이렇다 할 색도 없이 하얀 매장 색마냥 조용하지만 강하게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그 곳.
그 곳에 그가 있었다.
‘학부 전공이…’
‘한양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이런…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나름 준비를 하고 가는 나였지만, 전공은 당연히 디자인일 것이라 지레 짐작했던 나의 잘못된 생각.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렇지만, 매우 흥미로웠다.
인터뷰 | 호재희 정글에디터 (lake-jin@hanmail.net)
차마 부모님께 디자인을 하겠노라고 말을 할 수 없었던 착한 장남(?) 서상영이었지만, 가야 할 길은 꼭 가게 되는걸까? 그는 결국 디자이너 서상영이 되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서상영은 프랑스 파리의 스튜디오 베르소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겐조, 마틴 쉬퐁 등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작업에 프리랜서로 참여하는 등 프랑스에서 2년 동안 실무를 익히고 한국에 돌아와 2002년 그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런칭했다.
회사 생활도 해 보았지만 무엇보다 조직 내의 기계적인 모습이 몸에 맞지 않았다. 프로젝트의 흐름에 따라 한 부분만 자신의 손을 거쳐가는 것 보다는 작은 일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디자인은 지역성 특수성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상영은 한국인으로써 본인이 이해하는 이 곳, 한국이라는 나라를 바탕으로 디자인 하고 싶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보다 효율성이 높은 디자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패션 시장이 예전과는 달리 많이 오픈 되고 있었고, 사람들의 패션에 대한 인식 또한 높아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유통시장의 수준은 여전했다.
패션 쇼라는 것.
패션 디자이너가 새로 디자인 한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여러 관객에게 제안하는 일종의 발표회이다. 수수료나 영업적 측면이 주가 되기 보다는 새로운 다양한 ‘스타일’ 주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유통시장은 어떻게 하면 높은 수수료를 받고 많은 고객을 점유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생각에 좋은 MD라면 무엇보다 좋은 옷을 발견하는데 주력 해야 하며, 그 옷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수수료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넘쳐 나는 디자이너와 넘쳐 나는 시장들 속에 우리의 브랜드들은 가격 경쟁력마저 잃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지 않는다. 물론 시간은 걸리겠지만, 뜻이 있고 열정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리라 믿는 자세로 디자이너 서상영만의 경쟁력을 찾아 보려 한다.
2002년 오픈한 이곳은 컨셉부터 특이하다.
견출지의 비.어.있.음.
디자이너는 옷을 만들어 낼 뿐. 그것은 입는 사람에 의해 다시 디자인 된다. 다시 말해 옷은 입는 사람에 따라 다른 멋을 내고 디자이너는 단지 그것을 제안할 뿐이다. 똑같은 옷도 입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많다는 재미가 이 일에 대한 열정을 만들어 준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어떻게 옷을 만드느냐가 하나의 문제인 셈이다.
그러한 연유로 옷에 브랜드를 달아내는 것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한다. 견출지의 비어있음이 옷을 소화해내는 고객에게 어떠한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서상영의 고객층은 고등학생에서부터 30~40대까지, 전문직부터 예술인까지 그 범위가 상당하다.
패션이라는 것은 상호 작용이다.
내가 ‘아’라고 만들면 ‘아’라고 대답하든지 ‘야’라고 대답하든지 어떠한 답을 해줄 고객이 필요하다. 고객이 ‘나’라고 입으면 ‘나’든 ‘아’든 보고 답해줄 대상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패션을 시각적 상호작용보다는 소유의 문제로 생각하는데, 패션은 즐기는 것이지 소유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그이기 때문일까?
그는 핼무트 랭이라든가 벨기에 디자이너 마르지엘라를 좋아한다. 디자인 된 그 작품 자체도 맘에 들 뿐더러 디자인을 하는 방법이라든가 디자인에 임하는 태도가 특히 존경할 만 하다. 그들은 소비자를 제압하기 보다 소비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옷을 제안한다. 소비자를 조정하기보다 상생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내게 이 이상의 직업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디자이너 서상영은 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다닌다.
아직은 실험하고 공부하는 과정이지만 평생 디자이너로 살고 싶다고.
요즘엔 디자인이 아이디어 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훌륭한 디자인에는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적당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유행 싸이클이 아주 빨라진다. 무조건 트렌드를 무시하거나 쫓기 보다는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비단 트렌드 뿐이 아니다. 디자인이 발전되었다고 생각하는 나라를 무조건 따라가기만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디자인 후진국이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일본의 디자인을 보면 자기만의 것을 고집하기 보다는 외국의 것을 받아들이되 그 문화적 특성과 지역성을 반영하여 전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우리 또한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접근 없이는 어디에서도 살아 남기 힘들다.
학교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기술적인 것을 가르치기 보다는 디자이너로써의 자세를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기술적인 측면은 얼마든지 나중에 배워도 되지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겉멋든 얄팍한 디자이너가 되지 않기를 바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라는 직업 속에서 자신을 찾기 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자신 속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찾았으면 한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새로운 것들이 주는 새로운 의미에 대해 보다 능동적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많이 봤으면 좋겠다. 유학이라는 것을 굳이 갔다 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좋은 경험인 것 같다. 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디자인으로 나온다.
이세상에 ‘교과서’라는 것이 없다는 전제 하에 스스로가 필터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Profile
서상영.
한양대학교 불문과 졸업.
프랑스 파리 스튜디오 베르소 졸업.
현재 ‘서상영’ 실장
상명대학교 출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