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01
곧고 굽은 선들이 강약을 조절하며 종이 위에 제자리를 잡는다. 이윽고 완성된 하나의 이미지는 대상의 특징을 전달하는 동시에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상과 거리가 멀고 거창하게 느껴지는 그림보다, 조금은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이 좋아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택한 서율은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있는 ‘그림쟁이’로 자신을 소개한다.
에디터 │ 이지영(jylee@jungle.co.kr)
일상에서는 ‘서효민’으로 불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서율’은 원래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운을 뗀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다양한 방식의 그림 자체를 즐겼단다. 그녀는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서는 도예를 전공했는데, 이 모든 시간이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특별히 제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탐색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덧붙인다. 결국 일러스트레이터를 선택한 그녀는 색이나 면 또는 배경 등으로 꽉 채운 그림보다는 간결한 드로잉을 선호한다. 기본적인 드로잉에 콜라주 기법을 더한 것이 특징이고 또 그녀가 추구하는 스타일기도 한데, 다행히 반응도 좋은 편이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현재 호흡이 빠른 각종 매거진 작업은 물론, 비교적 자유롭게 감성을 풀어내는 단행본이나 개인 작업까지 다채로운 영역을 활발히 소화해내고 있다.
이런 그녀를 그림쟁이, ‘서율’로 살게 하는 공간이 바로 작업실이다. 홍대 부근에 자리잡은 이곳은 아담한 외모의 그녀를 닮아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조금씩 다른 분야이기는 하지만 각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 둘이 어렵사리 찾아낸 이 곳에 페인트칠을 도와주러 들렀다가 운 좋게 합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예술고등학교 동창들로 각자 게임 캐릭터 또는 포스터나 브로셔 디자인 등에 재능을 발휘하며 독립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정이 두터운 사이인데다 서로의 다른 장점을 배우기도 하고 서로에게 자극이나 도움을 주고 받으며 지내요.” 가운데 놓인 난로와 소파뿐 아니라 손재주가 있는 친구가 직접 만든 커튼과 옷걸이 등이 어쩐지 더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같다.
사소한 이유일 수도 있으나 작업실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화방이 아주 가까이에 위치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가 재료가 떨어지면 마치 슈퍼에 우유 사러 가듯 휙 다녀올 수 있어서 좋아요. 또한 디자인 서적 등이 종류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 즐겨 찾는 ‘영진 서적’등을 비롯, 해외 잡지나 희귀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공간도 비교적 근방에 있어 도움이 많이 되고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거나 나태해지는 기분이 들 때는 골목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방’ 분위기의 카페로 나서곤 한다.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렇게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 만으로 기분 전환이 되고, 동네 특성 상 디자이너나 작가 등 비슷한 일을 하는 이웃들도 쉽게 만날 수 있어 종종 이용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전시나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곤 해요. ‘인맥’이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고, 그저 지역 주민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며 기분 좋게 생각해요. 그런 때는 여기가 마치 예술가 마을이라도 된 듯하거든요.”
차분히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뒤로 문득 한지에 그린 일러스트들이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두껍고 빳빳한 한지에 그린 작품이 꽤 많이 있다. “이상하게 한지를 펼쳐놓고 작업을 시작할 때면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 지더라고요. 그 느낌이 좋아서 즐겨 사용하고 있어요. 재료 자체의 특성상 유화 물감이나 마카로 특유의 번지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화선지를 여러 겹 붙여 만든 장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 더 깊이 연구해봐야 할 재료예요.”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하루 3시간 이상, 매일 빠짐없이 개인 작업을 하겠다는 결심을 이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렇게 작업한 글과 그림을 묶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드는 목표도 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개인전을 열고픈 욕심도 있어요. 작년 가을 더 갤러리에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업에 대해서는 “사람을 그리는 것, 그 중에서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 및 생각을 상상해볼 수 있는 얼굴을 그리는 것이 흥미롭다”는 말로 넌지시 힌트를 준다. 갑자기 그녀가 지금처럼 꾸준히 그림쟁이로 살면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글쎄요… 나무와 정원이 있는 한옥 작업실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이 꿈인데, 10년 후면 가능하겠죠?” 물론 대답은 긍정적이다. 그 때도 여전히 그림쟁이로서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그려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