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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그의 배려하는 디자인

2009-08-11


서울대 응용미술과 공업디자인을 전공하여 미술학사가 된 이후 정경원 본부장의 디자이너로서의 본격적인 삶은 시작된다. 동대학원에서 미술학석사를 받고 미국 시라큐스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과를 석사로 졸업한 뒤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교 LAS를 졸업하며 디자인과 박사학위를 받는다. 79년 서울대 졸업과 동시에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주임연구원으로 재직했던 그는 84년부터 현재까지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에 재직 중이며 그 과정에서 세계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 이사,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 교환교수,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 KAIST 대외협력처장, 현대카드 사외이사 등을 역임한다. 그리고 올해 6월 초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으로 취임하여 서울을 디자인하고 있다.

에디터ㅣ 이찬희(chlee@jungle.co.kr), 사진ㅣ 스튜디오salt

익은 벼가 머리 숙인다는 말을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 정경원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을 만나면서 느낄 수 있었다. KAIST 교수직을 잠시 뒤로한 채 서울을 디자인하고 있는 정경원 본부장, 지난 7월 20일 서울시청 별관에서 만난 그는 좋은 디자인을 위해 지금도 사회초년생 디자이너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과연 나는 그와 같은 나이가 되어서도 그와 같이 정열과 겸손함으로 일할 수 있을까를 반문하며 자숙한다. 그와 같은 성숙하고 지혜로운 디자이너가 앞으로 2년간 서울을 디자인할 chief 디자이너임에 감사함을 느낀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선 서울시의 비전인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의 구현을 위해 서울 디자인의 힘을 키우는 데 있습니다. 디자인의 힘은 훌륭하게 디자인된 공공시설물이 갖는 가치와 굿디자인을 개발해 경쟁력을 높이는 디자인산업의 역량으로 구분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 공공 시설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반을 조성했다고 한다면 이제 산업디자인에 활력을 불어 넣어 서울시의 디자인경영이 도시 디자인과 디자인산업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가속화를 이루도록 할 생각입니다. 여기에 더해 디자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해 맑고 매력있는 세계 도시 서울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데 전력을 다할 예정입니다. 워낙 디자인서울총괄본부가 추진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업무파악을 마치고 얼마 남지 않은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SDO : Seoul Design Olympiad 2009)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작년에 첫 행사를 치르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보완하고 시민고객 모두가 만족할 만한 축제의 장이 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서울시가 세계디자인수도(WDC : World Design Capital) 서울의 역할을 수행할 2010년을 앞두고 있는 막중한 시기에 중임을 맡아 커다란 책임감을 느낍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SDO와 같은 디자인축제를 즐기고 동참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왜 올림픽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 동안 서울은 서울디자인포럼,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 많은 디자인축제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친숙한 단어인 올림피아드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더 많은 시민참여를 위함입니다. 대부분의 시민고객께서 우리 시가 디자인시정을 펼친다고 했을 때 예산만 낭비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생각들을 많이 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에는 디자인을 안하고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는데 무엇 하러 이런 데에 많은 돈을 들이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고 계신 분들도 많았겠죠. 하지만 처음에는 반신반의하시던 분들도 거리가 바뀌고 간판이 정비되고 서울의 모습이 아름답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고 계십니다. 시민참여는 강요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디자인시정으로 좋아지는 서울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더 우리 시, 그리고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응원하는 시민고객이 많아 질것으로 생각하고 또, 실제로도 적극적으로 아이디어와 개선 의견을 주시는 분들이 점차 더 생겨나고 있습니다. 디자인시정이 시민고객의 삶을 더 풍요롭고 정말 살만한 공간으로서 서울을 만들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니 SDO에 많은 응원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공공디자인은 ‘삶의 질’을 높이는 매우 중요한 디자인 활동이지만 아직 명확한 개념 설정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름으로 공공디자인을 정의한다면 디자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공공대상은 건물, 간판, 광고물, 가로시설물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증명서, 공문서,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 등과 같은 아이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인공물들의 사용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서비스 디자인까지도 모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은 규모면에서는 이미 나름대로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쟁력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더구나 기술개발이나 생산력 향상 등과 같은 경제개발의 개념만으로는 그 한계가 있습니다. 디자인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계속해서 경쟁력 있는 도시로 아니 더 높은 경쟁력을 만들어 줄 훌륭한 전략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반이 되는 기술력이나 개발력은 이미 갖추고 있으므로 거기에 디자인이 더해지면 고품격이 생겨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도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디자인시정의 도입은 시대적 흐름이고 서울의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편리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주변환경과의 조화로 요약할 수 있겠죠. 서울은 이미 수려한 산과 강 등 타고난 아름다움을 지닌 도시입니다만,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도시의 많은 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황폐해진 도시를 하나 둘 비워내고, 다시 음미할 수 있는 도시로 꾸며 나가야 하며, 궁극적으로 서울만이 가진 도시 고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시민고객의 편리함을 충분히 고려하고, 자연과 환경을 최대한 배려한 그런 도시로 디자인해 나간다면 아마 모든 시민 고객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이상적인 도시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도시가 갖는 좋은 디자인이란 사람 즉, 시민고객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배려가 담긴 디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도시를 만드는 데는 오랜 기간의 일관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흔히 우리가 좋은 도시 디자인으로 꼽는 세계적인 도시들을 보면 수 십년 또는 수 백년 동안 갈고 다듬어온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잖아요. 서울은 이제 비로써 그런 노력을 체계적이며 일관성 있게 전개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서울은 남산을 비롯하여 수려한 산들과 한강이라는 풍부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으며, 조선왕조 6백년의 수도로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도시입니다. 놀랍도록 풍부한 디자인자산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시장님께서 취임사에서 “Design is Everything”이라고 표현하실 만큼 디자인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시고, 창의시정의 일환으로 디자인 시정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강점입니다. 단점이라면 경제 성장기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기능과 효율중심의 획일적인 도시가 되어 버린데다가 주변환경에 대한 고려나 공공성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분별한 난개발(難開發)로 역사나 문화로부터 단절된 도시환경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이런 점들을 차근차근 고치고 바꿔 나가는 게 지금까지 그리고 또 앞으로 우리 본부가 주요하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디자인뿐만 아니라 그린디자인과 유니버설디자인 등 디자인의 주요 이슈들이 서울시의 모든 시정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직접 시행하는 갖가지 사업은 물론 지자체나 투자 및 출자 기관들의 사업의 기획단계에서부터 환경보호와 사용자들의 편의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고,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도 발굴할 예정입니다. 이미 우리 본부 내에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하여 단기 계획부터 장단기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후에 우리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먹거리를 창출한다는 차원에서 그 가능성의 끝은 무한하다고 봅니다. 바로 시민고객 한 분 한 분이 우리 시의 고객이시고, 그리고 모든 시민고객께서 창의적인 상상을 멈추지 않은 이상 우리 시의 디자인 시정은 끊임없이 발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이 디자인시정을 기치로 건 이래 많은 다른 지자단체들도 앞다투어 조직을 만들고 디자인정책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계의 유수 도시들도 서울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로 서울시의 디자인 시정이 미래지향적인 도시 경영의 모델이라는 데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모두의 눈과 귀가 서울의 디자인시정에 쏠려있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보다 창의적인 디자인 시정을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있고,
또, 다른 도시들의 장점을 줄기차게 모니터링하여 우리의 실정에 맞게 도입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앞으로 시민고객 여러분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매력과 멋이 넘치는 디자인 서울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 입니다. 이를 위해 사용자 중심, 수해자 중심의 디자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아니라 불특정다수가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디자인하는 것이 디자이너들이거든요. 이제는 공급자 위주의 접근은 한계가 있습니다. 현지 주민들이 희망하고 원하는 쪽으로 제 기본적인 시선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과정을 거쳤어, 회의하고 의견수렴했잖아’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회의를 많이 하지 않아도 소통의 질이 중요한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중간발표를 하고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찰하는 시간이 아무리 급한 상황 속에서도 필요합니다.

시민고객을 배려하는 디자인서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시민 고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시민고객 우선 디자인이라는 의미인데요, 서울시의 디자인 시정의 중심에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시 디자인이 단지 눈에 보이는 가로 환경이나 시설물의 조형적인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시민 생활의 질적 수준을 높여주는 수단이라는 것을 많은 시민 고객들께서 이해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시민들의 디자인 안목이 디자인산업 발전의 지름길입니다. 궁극적으로 유치하거나 수준 낮은 디자인, 함량이 미달되는 디자인이 설 땅이 없어지면 기업들이 자연스레 좋은 디자인을 개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므로 굿 디자인이 생활화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배려하는 디자인, 말하자면 케어링 디자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케어한다. 그렇다면 누구를 케어하냐? 시티즌입니다. 서울시민을 돌보고 그들 삶의 윤택함을 위한다는 큰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일궈나가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저는 ‘시티즌 퍼스트’라는 슬로건을 세워 디자인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여 우리들 모두가 살기 좋은 도시디자인을 이루고 싶습니다. 삶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유니버설디자인, 좋은 공기 마시며 사는 그린디자인, 그것이 도시디자인을 이룰 때, 배려하는 디자인이 될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라는 것을 공통분모를 이룬다면 서울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될 것입니다. 저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는데 2년 동안 학생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은 무척 안타깝지만 디자이너가 사회에서 큰 영향력으로 일할 수 있다는 디자이너의 영역확장을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학생들에게 실전에서 얻고 배운 지식으로 더 좋은 배려하는 디자인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디자이너에게 묻는 질문 중 가장 어리석은 질문은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그들에게 디자인 말고 또 어떤 꿈과 미래가 있겠는가. 디자이너는 커피를 마실 때도 옷을 고르고 입을 때도 밥을 먹고 길을 걸을 때도 늘 디자인을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디자인을 생각하고 디자인을 한다.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기존보다 좀 더 나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아름다움을 위해서. 그로 인해 편리하고 편안해지기를 바라며. 결국 사람을 위함이다. 올해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이 된 정경원 본부장 역시 그렇다. 그는 KAIST 대학에 있든 서울시청 디자인본부에 있든 디자인을 한다.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마치 그와 같이, 서울시민이 도시에서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도시를 디자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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